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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모욕감을 준 기계

등록 2023-05-26 10:22 수정 2023-06-02 05:07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현재 챗지피티(ChatGPT)의 성능은 약간 과장됐다. 기계 생성 문장만으로 고품질의 논문이나 에세이를 쓸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문장에 담긴 정보가 고만고만한 것을 조합한 정도에 머무르고, 생성 인공지능(AI) 특유의 중언부언하는 특성 때문에 본인 이름을 걸고 책임지는 문서에 사용하기엔 쉽지 않다. 기계 생성 문장을 재편집하는 시간이 새로 쓰는 것보다 더 소요될 때도 있다. 이 경우 인간은 종전대로 기계의 도움 없이 쓰는 편이 낫다.

유학생이 포기한 글쓰기, 읽은 척하는 한국 학생

최근 만난 지인들은 챗지피티 유의 생성 AI 때문에 골치 아프다고 말한다. 한 예로 지역 대학에서 글쓰기 강사로 있는 A는 유학생들이 챗지피티로 리포트 내는 것을 막을 수 없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유학생의 특성상 한국어가 서툴기에 그것을 교정해주며 수업을 진행했는데, 챗지피티로 자국어나 영어로 최초 생성한 뒤 인공신경망 번역기로 한국어 번역을 할 경우 종전보다 매끄러운 문체로 리포트를 제출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상식 수준에서만 전개되는 내용의 흐름, 문장 사이 반복, 일부 문단 간 논리적 정합성 부재는 기계의 특성이 분명한데도 이들이 본인 한국어 실력 부족으로 핑계를 둘러대니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A는 본인의 힘으로 언어를 배우지 않고 생성하는 건 글쓰기 훈련 자체를 포기하는 일이고, 이게 하나의 유행이 되자 교실 분위기가 붕괴하는 상황을 막을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는 유학생뿐 아니라 한국 학생들에게도 드러난다. 본인 문장과 기계 생성 문장 사이 정교한 편집으로 교재 텍스트를 읽지 않고도 읽은 척하는 문장을 써서 선생이 이를 골라내느라 에너지를 배로 쓴다고 했다. 물론 그 색출 작업도 신통치 않다. 읽고 쓰는 일이 학습자의 진정성을 보증하는 방식으로 아예 통하지 않으면서, 무엇보다 글쓰기 장르의 교육노동자로서 자기 역할이 무용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B는 사용자가 색칠이 가능한 스케치 형태의 그림을 그려, 전세계 팬들에게 판매해 생계를 꾸리는 아티스트다. B는 몇 달 전부터 본인 그림의 판매율이 낮아지는 것을 느꼈다. 이유를 알아보니 상점 한쪽에서 AI로 그린 스케치를 시중의 10분의 1 가격으로 판매하는 업자가 있었다. 수제 플랫폼이니 해당 판매자를 신고했으나 그 판매자에 대한 제재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본인도 프롬프트(명령어 입력) 노동으로 해당 그림을 얻었고, 상업 레벨에서 사용할 권리가 있다며 문제없다고 답변했다. AI 기반 작품을 염가로 시장에 풀면서 생기는 인간 작가의 피해보다 B를 분노케 한 것은, 해당 상점에서 파는 그림이 미묘하게 본인 작품을 비롯해 그동안 잘 팔리던 그림과 닮았다는 것이다. 표절을 피해가며 비슷한 스타일을 재탕해 만드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B는 자기 인생을 건 그림 작업이 이렇게 기계에 먹이로 제공돼 자신의 존재를 위협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제 B는 챗지피티에 이미지 생성에 도움이 되는 고급 프롬프트를 요청해 얻고 이를 이용해 이미지를 생성하고 있다. 본인 스스로가 AI 상점을 운영해 다른 AI 상점을 견제해야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본인이 직접 그림을 그리면서 얻었던 자기효능감이 이 과정에서 증발했다. AI가 그림을 잘 그릴수록 기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느낌만 가득해졌다. 우울증약을 다시 먹게 됐다.

코웃음 치는 당신, 혹시 당신 차례가 되면?

기술 발달 속도가 너무 빨라 인간의 역할을 재설정하기도 전에 자기 자리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이 주변에 보인다. A와 B의 경우는 기계의 실력이 뛰어나서 인간을 밀어내는 게 아니다. 자연스럽게 발휘되던 진정성과 자기효능감 등이 더는 유효하지 않음을 느낀 인간들이 기계에 모욕받았다고 판단해 절망했다. 이 절망감이 모이면 기계파괴운동도 자연스럽게 가능하다. 규제와 합의가 없는 기술의 빠른 전개는 오히려 결정적 걸림돌을 맞이할 수도 있다. 우리에겐 기술의 사회적 배치에 관해 토론·합의할 시간이 필요하다. 코웃음 칠 수도 있겠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 차례가 되면 이 말이 와닿을 것이다.

오영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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