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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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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니기에 뭐든 될 수 있는

등록 2023-03-03 12:57 수정 2023-03-12 11:36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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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시절 체육 시간에 한 친구가 넘어져 팔이 부러졌다. 마침 당시 주변을 걷던 국어 선생님이 한걸음에 달려와 도움을 줬다. 선생님은 주변을 살펴보더니 빗자루를 집었다. 솔과 막대기 부분을 분리해 막대기를 부목 삼더니 자기 내의를 찢어 붕대로 썼다. 재빠른 응급처치 덕분에 그 친구는 부상이 더 악화하지 않고 병원에 갈 수 있었다. 사물의 명칭이나 개념에 얽매이지 않은 기민한 대처였다.

우리는 어떤 사물의 쓰임새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더 다양하게 펼쳐진다. 예를 들어 주방용 칼은 채소나 과일을 다듬는 도구지만 때때로 그 규정에 포함되지 않은 행위를 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식칼 뒷머리로 마늘을 빻곤 했다. 마음먹기에 따라 식칼 하나는 여러 쓰임새를 갖고 있다.

콜라병은 다양하게 변한다

영화 <부시맨>에 나오는 콜라병은 많은 쓰임새를 가진 사물이다. 영화에서 아프리카 부시맨 부족은 콜라병 하나로 다양한 일을 한다. 곡물을 빻거나, 반죽을 밀거나, 바람을 불어 연주한다. 이들의 콜라병 사용법이 잘못됐을까? 투명하고 딱딱하고 곡선이 섞인 모양의 콜라병은 누가 어떤 행위로 접속하느냐에 따라 그 쓰임새가 달라진다. 부시맨의 자유로운 접속은 아마 이들에게 ‘콜라병’이란 개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에선 이 위대한 콜라병 때문에 부족 내 싸움이 일어나서 주인공이 콜라병을 없애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특정 목적으로 사물을 독점해 소유하려니 탈이 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영감을 준다. 사물에 부여된 이름은 사물의 무한히 자유로운 접속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는 것이다. 브리콜라주(Bricolage)는 ‘부스러기 같은 것을 모으고 이용해 닥치는 대로 만들기’라는 뜻이다. 브리콜라주 작업에는 매뉴얼이 없다.

간혹 시골집을 방문하면 농사일에 필요한 갖가지 도구가 맞춤 제작된 모습을 보게 된다. 몸에 맞게 길이를 잘라내거나 다른 도구와 혼합해 성능을 개량한다. 농사일에 필요한 도구란 자동차부품처럼 항상 규격화된 것이 아니기에, 농부는 브리콜라주적 방식으로 직접 도구를 개량하거나 만들 수밖에 없다. 누군가 부여한 개념을 버리면 사물은 해방되고 심지어 수정해 새 용도를 발명할 수도 있다.

사물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여기에 대입해보면 흥미로울 듯하다. 자기 쓸모를 규정하는 건 신분이나 이름이 아니라 자신을 어디에 접속시키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접속의 관계로 세상을 이해하는 일은 세상의 무상(無常)함을 깨닫고, 그 안에 존재하는 무한한 잠재성을 끌어내는 작업이다. 이번 대학 학기 오리엔테이션에서 이런 말을 했다.

무규정성이 자유의 기초임을

“이미 부여된 이름이나 신분이 아니라 무엇과 접속돼 있는지가 여러분 자신의 정체성입니다. 정체성은 끝없이 새로운 접속으로 변경됩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정체성이 지금 학생뿐인 것은 아닙니다. 이 수업이 끝나면 화살처럼 튀어나가 그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이 한마디로 학생들이 금세 자유로워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자신의 무규정성이 자유의 기초가 될 수 있음을 아는 것만으로도 불안한 마음에 위로가 되기 바랐다. 아무것도 아니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역설이 세상에는 아직 존재한다고 믿는다.

오영진 서울과학기술대 융합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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