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8월, 가리왕산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가리왕산 중턱에서 산사태를 막기 위한 물막이 공사가 한창인 모습. 2018년 평창겨울올림픽 개최를 위해 스키 슬로프와 작업도로를 만드느라 가리왕산 나무 10만 그루가 베어져 나갔고, 나무가 베어진 자리에 맨 땅이 드러나 있다. 나무가 베어진 경사면에서 2018년, 2022년, 2023년 세 차례 산사태가 발생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강원도 정선군과 평창군 사이 해발 1561.9m, 태백산맥의 중앙부를 이루는 산이 있습니다. 옛날 삼국시대 이전 맥국의 ‘갈왕’이 피난해 성을 쌓고 머물렀다고 해서 ‘갈왕산’으로 불린 산입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의 왕을 의미하는 ‘날 일’ 자가 포함된 ‘왕’ 자가 더해지면서 가리왕산으로 ‘창지개명’을 당한 아픔을 간직한 곳입니다. 뒤늦게 정부는 2007년 일제가 고친 ‘날 일’ 자가 포함된 왕자를 ‘임금 왕’으로 바로잡아 고시한 데 이어 2024년 7월에는 일본식으로 표기돼 있던 정상 표지석까지 한글 표지석으로 바꿨습니다.
가리왕산의 또 다른 비극은 2018 평창겨울올림픽 유치와 함께 시작됐습니다. 원래 가리왕산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법적으로 개발이 불가능한 땅입니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은 산림 내 식물의 유전자와 종 또는 산림생태계 보전을 위해 보호·관리가 꼭 필요한 산림입니다. 하지만 ‘가리왕산 말고는 활강경기장을 건설할 곳이 없다’는 이유로 특별법을 내세워 78.3㏊에 이르는 보호구역을 훼손했습니다. 대신 ‘올림픽이 끝나면 원상 복구한다’는 것이 전제였습니다. 산림훼손뿐 아니라 당시 경기장 건설에는 2030억원이나 투입됐는데, 경기는 단 8일간만 열렸습니다. 올림픽이 끝나고 약속을 지킬 시간이 왔습니다.
하지만 지역주민들이 활강경기장에 설치돼 있던 케이블카 존치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갈등이 시작됐습니다. 주민들은 천막농성을 벌이는 등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반면 환경단체뿐 아니라 산림청과 환경부는 애초 약속대로 케이블카를 전면 철거하고 원상 복구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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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이 확산하자 국무조정실이 나섰습니다. 2019년 4월 ‘가리왕산 합리적 복원을 위한 협의회’를 꾸렸고, 2년여 논의 끝에 ‘2024년 12월까지 한시적으로 케이블카를 운영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시 운영 기간이 끝나면 정부가 케이블카 유지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한시 운영을 허가받은 정선군은 2023년 1월부터 가리왕산 케이블카를 관광용으로 운행해왔습니다.
올림픽이 끝나고 7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2021년 약속한 ‘한시적 운영 기간’인 2024년 12월도 지났습니다. 과연 가리왕산 원상복구 약속은 지켜졌을까요? 방치된 슬로프에는 맨땅이 휑하게 드러나 있고, 여전히 케이블카가 관광객을 나르고 있습니다. 앞서 산림청이 한시 운영 종료를 앞둔 2024년 11월부터 주민과 환경단체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또다시 꾸려 논의를 시작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자 ‘케이블카 한시적 운영기간’을 2025년 6월까지 다시 연장했기 때문입니다.
케이블카 존치에 힘을 실어주던 대통령 윤석열이 12·3 내란사태를 일으키고 탄핵심판을 받게 되면서 가리왕산 케이블카의 운명도 다시 안갯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원상 복구’ 약속은 언제쯤 지켜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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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강원)=박수혁 한겨레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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