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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축’과 ‘시한폭탄’ 사이… 한국 사립대학의 역사

한국 사립대학이 그렇게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내력
등록 2026-09-24 22:47수정 2026-09-30 12:57
‘한국 사립대학의 역사’, 김일환 지음, 서해문집 펴냄, 2026

‘한국 사립대학의 역사’, 김일환 지음, 서해문집 펴냄, 2026


한국에서 사립대학의 이미지는 ‘악의 축’과 ‘시한폭탄’ 사이를 오간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사립대학 하면 높은 등록금, 각종 채용 비리와 특혜, 학교를 사유물로 여기는 설립자 일가의 횡포를 떠올린다. 동시에 사립대학은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 시대에 처치 곤란한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다. 정원 미달로 폐교하는 대학이 속출하는 가운데, 정부가 나서서 부실 대학들을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공공연히 나온다.

김일환의 ‘한국 사립대학의 역사’(서해문집 펴냄, 2026)는 사립대학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거나 곤란하게 여기기 전에, 그것이 그렇게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내력을 되짚어보자고 제안한다. 지은이는 한국 사립대학의 특수성을 ‘재단법인’에서 찾는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단법인’과 달리, 재단법인은 설립자가 출연한 자산을 기초로 한다. 정확히는 재단의 기본재산을 관리하며 학교의 제반 업무에 광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사회야말로 사립대학의 핵심이다. 통념과 달리 설립자는 일단 자산을 출연한 뒤에는 학교에 영향력을 행사할 방법이 없다.

사립대학에 뚜렷한 주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설립자와 국가 모두에 일종의 타협점을 제공했다. 적잖은 설립자가 계속해서 이사회에 가족과 친척을 심어 대학의 주인으로 행세했다. 반대로 국가 역시 필요할 때면 언제든 공익을 내세워 관선이사를 파견해 학교를 장악하곤 했다. 설립자는 비교적 적은 돈으로 대학을 세워 영향력을 이어갈 수 있고, 국가는 교육이라는 의무를 민간에 떠넘기면서도 필요할 때면 손쉽게 대학에 개입한다. 한국에서 재단법인 형태의 사립대학이 고등교육의 ‘우세종’을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다.

식민 지배와 분단, 전쟁과 고도성장이라는 다난한 역사도 사립대학의 성장에 이바지했다. 총독부는 1915년 ‘사립학교규칙’을 제정해 재단법인 형태의 사립대학 시스템을 식민지 조선에 이식했다. 해방 이후 미군정 아래서도 일본식 사립대학 시스템은 이어졌다. 급속한 농지개혁은 지주들로 하여금 여러 특혜를 받는 사립대학에 대규모 농지를 기부하거나, 아예 대학을 설립하게끔 부추겼다. 물론 사립대학 역시 농지를 매각해야 했으나, 그 대가로 받는 지가증권은 일반 지주의 두 배였다.

그럼에도 1950년대 내내 대다수 사립대학은 재정난에 시달리는 한편, 언론과 학생들에게 ‘기생적 존재’로 매도당했다. 사립대학을 둘러싼 진통은 1963년 박정희 정부가 ‘사립학교법’을 제정하며 비로소 일단락됐다. 설립자에 대한 어떠한 규정도 포함하지 않고, 국가가 관선 임시이사를 선임할 수 있게 되는 등 정부의 권한이 강화됐지만 동시에 이사회에 법인 운영의 전권을 부여했다. 평의원회나 교수의회 등 사립대학을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의 목소리를 반영할 기구의 역할은 인정되지 않았다.

성공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오랜 시간 ‘효과적으로’ 기능했던 재단법인 중심의 사립대학 체제는 최근 위기에 봉착한 듯하다. 지은이는 사립대학을 둘러싼 그간의 다양한 실험과 논의를 돌아보기를 제안한다. 오늘날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는 초기엔 다수의 기금 출연자로 구성된 평의원회가 최고의결기구였던, ‘사립’보다는 ‘민립’에 가까운 학교였다. 해방 직후 설립된 조선대학 역시 무려 7만2천여 명의 소액 기부자가 모인 ‘설립동지회’가 중심이었다. 반면 상지대처럼 정부가 파견한 관선이사가 학교를 사유화한 경우도 존재한다. 사립대학에 관한 한, 공과 사는 뚜렷하게 갈리지 않는다. 무조건 악마화하거나 정부가 나서 처분 혹은 구제하기에 앞서, 이들이 담당해온 ‘공공성’을 다시 고민해야 한다.

 

유찬근 대학원생

 

*유찬근의 역사책 달리기는 달리기가 취미인 대학원생의 역사책 리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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