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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소녀와 부잣집 소년이 연애할 때

최삡뺩의 ‘컷툰’ <영앤리치가 아니야!>… 가난과 부가 드러나는 연애
“실패할까 두려워” vs “경험이라 생각해”
등록 2024-03-01 16:23 수정 2024-03-08 08:00
네이버웹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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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삡뺩 작가의 웹툰 <영앤리치가 아니야!>는 국내 유명 식품회사 ‘퍼렁식품’ 시이오(CEO)의 아들 ‘서민준’과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은 소녀 ‘이새영’의 관계를 그린 만화다.

‘지덕체 모두 출중하고 잘생기고 예의까지 바른 내가 왜 아직도 연애를 못했을까?’ 민준의 생각처럼 그는 뭐든지 잘하지만 이상하게 또래 이성에게 인기가 없다. 연상의 여인(그보다 한참 나이 많은 중년 여성)들이나 또래 동성에게는 사랑받지만, 또래 여자아이들은 매사에 진지하고 개그 코드가 독특한 민준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연애하는 주변 친구들을 보고 위기감을 느낀 그에게 코딩을 알려달라며 새영이 다가온다. 민준은 스스럼없는 새영을 보며 자신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착하고 귀여운 그에게 금세 반한다. 민준은 새영이 고백하길 기대하며 ‘돈 많고, 능력 있고, 외모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냐고 그를 떠본다. 그러나 새영은 “그런 사람을 만난다고 내가 그렇게 될 수 있는 것도 아닐 테고, 그 시간에 차라리 나 혼자 노력해서 잘되는 게 나을 것 같아”라고 말한다. 굳이 만날 거면 비슷한 수준의 평범한 애를 만나겠다는 새영의 말에 민준은 자신이 퍼렁식품 시이오의 아들임을 숨기고 그녀에게 다가간다.

네이버웹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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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웹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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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에서는 가난한 새영과 부잣집 민준의 환경과 상황, 성격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4화 ‘진짜 부자는 보이지 않아’와 5화 ‘진짜 가난은 보이지 않아’에서 소탈하지만 경제적·심적 여유를 가지는 민준과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돈 없다’고 하는 말에서 정말로 ‘돈이 없는’ 자기의 처지를 발견하는 새영의 차이가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민준과 새영이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할 때 갖는 마음가짐이 다르다. 민준과 새영이 플리마켓에 참가하는 에피소드는 이를 잘 드러낸다. 새영은 직접 디자인한 엽서와 키링을, 민준은 대체 당을 넣은 채식 쿠키를 판매하기로 하는데, 새영이 자기 실수로 모든 걸 망쳐버릴지도 모른다며 최악을 상정하는 반면 민준은 ‘새로운 일이라 기대된다’며 돈이 아니라 ‘경험을 번다’ 생각하라고 새영에게 조언한다. 경제적 어려움을 자식 앞에서 숨김없이 드러내 불안감을 심어주는 환경에서 자란 새영과 실패의 리스크를 전혀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자란 민준의 차이다.

심도 있고 섬세하게 캐릭터를 포착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도 내세운다. 채식 카페를 운영하는 크로스드레서(Crossdresser·다른 성별의 옷을 입는 이)인 민준의 형, 무리한 다이어트에 집착하며 불안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해소할 사람이 언제나 필요한 친구 등이 인상 깊다. 작가는 그들 각각에게 개성적인 성격과 서사를 부여함으로써 그들이 ‘채식하는 크로스드레서’, ‘외모에 집착하는 여성’처럼 편견으로 덧칠된 납작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로 비치지 않도록 한다.

이 웹툰은 드물게도 ‘컷툰’ 형식으로 감상할 수 있다. 한 컷 한 컷 옆으로 넘기는 컷툰의 특성상 매 컷이 댓글로 평가받기 때문에 독자들은 더욱 엄격하다. 그런데 댓글을 보면 독자들은 한 컷에 집중하면서도 등장인물들 사이의 사건이나 관계의 진행을 놓치지 않는다. 등장인물에게 몰입하고 함부로 판단할 수 없게끔 하는 이야기의 힘이 작품 전체에 잘 깃들어 있는 만화다.

신채윤 <그림을 좋아하고 병이 있어> 저자

*웹툰 소사이어티: 희귀병 다카야스동맥염을 앓는 20대의 작가가 인생의 절반을 봐온 웹툰의 ‘심쿵’ 장면을 추천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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