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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엔 정말로 사랑한 것만이 남는다

거장의 뮤즈가 된 무명 여배우의 불꽃같은 성공과 추락 담은 <뮤즈 온 유명>
등록 2024-06-01 23:05 수정 2024-06-06 17:22
웹툰 <뮤즈 온 유명>의 한 장면.

웹툰 <뮤즈 온 유명>의 한 장면.


*이 글은 <뮤즈 온 유명>의 주요 장면 정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명’은 아름다운 얼굴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주목받으며 대학 생활을 마쳤지만, 이후엔 대중의 뇌리에 자신을 각인시키지 못하고 무명배우로 20대를 보낸다.

29살, 20대의 끝자락에서 그에게 남은 것은 자기 처지에 대한 비관과 자기보다 잘나가는 대학 후배에게 느끼는 열등감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명은 거장 사진작가 ‘은밀’의 유작 전시회 ‘뮤즈 온’(Muse On)에서 자기 얼굴을 발견한다. ‘은밀의 뮤즈 명(明)’이라고 쓰인 제목 아래 스무 살 무렵의 유명이 동의 없이 촬영된 사진 속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후 대중은 요절한 거장의 뮤즈인 유명에게 열광하고, 유명은 대중의 관심에 힘입어 여러 화제작에 출연하며 인기를 얻는다. 카메라 플래시 세례 속 밝아 보이는 스타의 삶과 달리, 여러 어두운 면을 가진 연예계에 유명은 이내 공허함을 느낀다. 그리고 유명의 매니저 ‘은유한’이 유명이 무너지지 않도록 곁을 지킨다.

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것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연출과 구성이다. 작품이 진행되며 이전에 나왔던 대사와 상황이 이후 전개에서 은유로써 들어맞는다. 특히 작중에서 거듭 강조되는 ‘명’의 중의적 뜻을 알아채는 순간, 독자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오래 사귄 애인과 대학 후배의 입맞춤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유명이 사진전에서 행복하게 웃는 자신의 사진 앞에서 무너져 울고 있을 때 은유한이 나타나 묻는다. “왜 이러고 있어요. 뭐가 그렇게 서글퍼요, 이렇게 아름다운 사진 앞에서.”

‘유명해지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고 말하는 유명에게 은유한은 “거장이 사랑한 여자잖아요. 당신의 꿈은 머지않아 이뤄질 겁니다”라고 답한다. 은유한의 뒤에서 후광이 비친다.

웹툰 <뮤즈 온 유명>의 한 장면.

웹툰 <뮤즈 온 유명>의 한 장면.


은유한은 유명에게 ‘자신의 비밀을 알려주겠다’며 목 뒤에 ‘명’이라고 새긴 문신을 보여주고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자신의 곁을 꾸준히 지켜주며 버팀목이 돼주는 은유한에게 유명은 점차 마음을 연다.

하지만 은유한이 은밀의 측근이며, 은밀의 유작을 전시해 사람들의 이목을 모은 뒤, 유명이 유명한 배우가 되기까지를 모두 계획했다는 것을 알게 된 유명은 은유한이 사랑한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의 이름이 밝을 명(明)이 아닌 어두울 명(冥)이라는 사실도.

대중의 인기를 갈망했지만 막상 자신이 원한 적도, 동의한 적도 없는 방식으로 대중의 시선 속에 놓인 유명은 오로지 목표만 바라보며 살다가 마침내 그것을 이루고 정점에 오른 사람들의 위태로움을 깨닫는다. 그러다 은유한을 사랑하게 되고, ‘오르기 위한 연기가 아닌, 내 정원을 가꾸는 길’에 대해 생각한다.

유명은 자신과 은밀이 사실은 아무 관계도 아니었음이 밝혀지고 자신이 쌓아 올린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험을 한 뒤에야 ‘그런데도 연기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스포트라이트를 갈망했으나, 마지막에는 연기하는 것을 정말로 사랑했다는 사실만이 남았다.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된 뒤에도 그 마음만이 꺼지지 않는 불씨가 돼준다. 꿈이든 사랑이든 다른 어떤 무엇이든 나에게도 그런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잔불처럼 타오르는 유명을 보며 생각했다.

신채윤 <그림을 좋아하고 병이 있어> 저자

*“작은 말풍선과 등장인물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좇으며 몸과 마음이 아픈 순간을 흘려보냈다. 만화의 세계를 헤엄치며 맛봤던 슬픔과 기쁨, 내 마음을 콩콩 두드렸던 뜻깊은 장면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희귀병 다카야스동맥염을 앓는 20대 작가가 인생의 절반을 봐온 웹툰의 ‘심쿵’ 장면을 추천합니다. ‘웹툰 소사이어티’는 웹툰으로 세상을 배우고 웹툰으로 이어진 것을 느낀다는 의미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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