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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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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링 위의 복서여, 왜 싸우는가

복싱을 매개로 삶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웹툰 <더 복서> 정지훈
등록 2024-03-22 20:42 수정 2024-03-28 17:57
<더 복서> 네이버웹툰 제공

<더 복서> 네이버웹툰 제공


“소년이여! 세상의 풍파 앞에 넘어져 있는가! 내가 좋은 사실을 하나 알려주지. 마음속에 새겨들어라! 이 별들은 모두 너를 위해 빛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언젠가 강해져서 만나자, 소년!” 정지훈 작가의 작품 <더 복서>는 황금색으로 빛나는 머리칼과 눈을 가진, 복싱 글러브를 어깨에 멘 남자가 어린 시절의 황폐한 등장인물 ‘유’를 향해 하는 이 대사로 시작된다.

유의 트레이너 K는 복싱을 시작하는 유에게 복싱을 그만둘 때까지 ‘단 한 번의 펀치도 맞지 말라’고 하고, 유는 각 체급의 챔피언들을 차례차례 제패해나간다. 그러나 보통의 스포츠 성장 만화와는 다르게 유는 복싱을 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 오히려 유를 만난 다른 복서들의 성장과 이야기가 더욱 다채롭다. 복싱을 너무 사랑해서 단지 한 게임만이라도 더 하고 싶었던 존 테이커를 시작으로 완벽한 기술을 추구한 쟝 삐에르, 노력만으로 재능의 영역을 넘어선 다케다 유토 등 유와 겨룬 선수들에게 더욱 드라마틱한 서사가 있었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복싱을 하는지, 궁극적으로는 무엇을 위해 사는지 알지 못하는 유는 점점 더 괴물이 돼간다. 그리고 그 앞에 J가 나타난다. J는 전설적인 복서로, 과거의 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복서로서 복귀를 선언한 뒤 결국 타이틀 통합전에서 유와 만나게 된다. 유는 J가 1화에서 자신과 약속했던 남자임을 알아본다.

독자, 만화 속 관중, 그리고 작가도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했을 장면은 J와 유의 타이틀 통합전이다. 유는 오직 폭력으로서 주먹을 휘두르며 J를 피투성이로 만든다. J는 마지막 라운드까지 단 한 번의 펀치도 하지 않으며 그저 유에게 다가간다. 유는 쓰러지지 않고 다가오는 J에게 공포를 느끼며 뒷걸음질하고, J는 유를 향해 손을 뻗으며 “괜찮아”라고 말한다.

무엇이 괜찮다는 것일까? 작품을 보면서 이 질문을 계속해서 던졌다. 자신이 이기기 위해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말일까, 아니면 복싱과 삶에서 아무 의미도 찾지 못하고 주먹을 휘두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일까.

작품에서 다루는 가장 큰 줄기는 고통스러운 삶과 삶의 의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슬픔이다. 삶에서 느끼는 하나하나의 슬픔, 그리고 고통으로 가득한 이 삶이 결국 죽음 앞에서 덧없이 스러진다는 것에 대한 슬픔이다. 이토록 방대하고 심오한 이야기를 작가는 복싱을 통해 풀어낸다. 링 위에서 수없이 맞고 쓰러지고, 그러다가 은퇴하면 그간의 복싱이 끝나고. 삶의 고통을 풀어내는 데 복싱은 좋은 매개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비단 복싱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님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는 사실 인간이 가지는 지독한 슬픔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은 언제든 어떻게든 죽고, 링 위에 올라가는 의미를 찾듯이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맨다는 것을.

“서로가 온종일 상대방만을 생각하면서 살고 준비해왔던 모든 것을 부딪치는 것. 링 위에서 두 명의 삶이 만나 서로의 생명을 이야기하는 것. 이거 사랑이랑 닮아 있지 않나요.” J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삶의 의미’, 그것에 대해 작가가 나름대로 던진 답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 그것이 모든 것의 답이라고.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동시에 꼭 필요한 메시지다.

<더 복서>는 링 위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링 위의 사람들, 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로 링 위에서 복싱을 하는 복서들인 한편 저마다 ‘삶’이라는 링 위에서 각자의 싸움을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신채윤 <그림을 좋아하고 병이 있어> 저자

*웹툰 소사이어티: 희귀병 다카야스동맥염을 앓는 20대의 작가가 인생의 절반을 봐온 웹툰의 ‘심쿵’ 장면을 추천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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