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유령과 소통해봐, 무섭지 않아

공포물 클리셰 비틀어 귀신과 사는 명랑한 이야기 그린 ‘에밀리의 저택’
등록 2024-10-11 18:54 수정 2024-10-14 16:46


왜 머리끈이나 실핀은 어디에 두어도 사라질까. 우리는 언제까지 자동차 열쇠를 찾아서 소파 뒤를 뒤지게 될까. 당신도 사소하지만 꼭 필요한 물건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가? 혹시 분명히 바지 주머니에 넣어뒀거나 현관 바로 근처에 있는 탁자에 올려뒀다고 생각했던 작은 물건들이 어디 갔는지 모르겠는가? 그렇다면 집에 저주인형 하나쯤 구비해 두시라. 어디에 둬도, 멀리 갖다 버려도, 귀신 들린 것처럼 다시 침대로, 책장으로, 의자로 되돌아오는 저주인형의 주머니와 손목에 그것들을 넣고 매달아두면 구태여 찾지 않아도 언제든 제자리로 돌아오니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을 것이다. ‘에밀리의 저택’ 주인공 ‘이사희’의 아이디어를 슬쩍 빌려보았다.


클리셰를 비틀고 독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전개로 유명한 손하기 작가의 ‘에밀리의 저택’은 사희가 낡고 허름한 저택으로 이사한 뒤 그곳에 사는 유령들과 함께 지내는 이야기다. 사희는 공포영화가 시작될 때 주인공이 으레 하는 모든 행동을 한다. 첫째, 낡고 허름한 숲속 집으로 이사 가기. 둘째, 절대 열어보지 말라는 지하실 열고 들어가보기. 셋째, 저주인형 주워 오기 등. 그가 하는 행동을 보면 독자는 당연히도 그동안 접했던 공포물의 주인공이 으레 그렇듯 그가 위험에 처하거나 겁에 질릴 것을 예상하게 된다. 그러나 사희는 어떤 일에도 겁먹지 않고 해맑고 당당하게 대처한다. 집에서 영문을 알 수 없는 쿵쿵 소리가 들리면 그것을 비트 삼아 노래를 만들고, 알 수 없는 글귀가 벽에 나타나면 그 글씨를 본떠 티셔츠, 에코백, 휴대전화 케이스 등 굿즈를 만든다. 지하실에서 올라오는 계단이 끝없이 이어지면 그곳에서 헬스기구 ‘천국의 계단’을 타듯이 운동한다. 기본적으로 유령 같은 것은 없다고 믿지만 유령이 있음을 알게 돼도 절대 무서워하지 않는다.


사희의 이런 태도는 유령을 무서워하는 주변 인물과 대비된다. 유령의 훼방에 시달리다 결국 전 재산을 ‘영끌’해서 산 주택을 나와 원룸에서 살고 있는 집주인 ‘라조윤’, 어렸을 적 귀신을 보던 기억 때문에 여전히 세상을 의심하며 사는 동생 ‘이사혜’와 같은 사람들이 독자의 입장을 대변하듯 호들갑을 떨어주기 때문에, 사희의 대담하고 대수롭지 않은 태도가 더욱 도드라진다. 사희는 그런 주변인들을 잡아끌어 유령과 소통하거나 그들이 무섭지 않은 유령임을 알려준다. 유령과 사람 사이 소통의 장을 여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 만화에 나오는 유령이 조금도 무섭지 않은 것은 특유의 밝고 귀여운 그림체 덕도 있겠지만, 유령과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 아닐까. 편하고 자유롭게 이뤄지는 유령과의 의견 교환을 보며 독자는 유령이 주인공에게 큰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안심하게 된다. 공포영화를 볼 때도 악령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전달한다면 관객은 전혀 겁에 질리지 않을 것이다.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은 더 이상 무섭지 않으니까.

그러니 혹시라도 공포영화를 보고 온 날 밤 귀신이 머리맡에서 지켜보고 있을까봐 쉽게 눈을 뜨지 못하겠다면, 누군가 발바닥을 간질이다 발목을 휙 낚아챌까봐 조마조마하다면, 사희가 그랬던 것처럼 아예 바닥에 하트 모양으로 초를 깔고 귀신과 로맨틱한 분위기를 조성해보면 어떨까. 스위트하게 응답하는 귀여운 귀신과 대화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신채윤 ‘그림을 좋아하고 병이 있어’ 저자

 

*“작은 말풍선과 등장인물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좇으며 몸과 마음이 아픈 순간을 흘려보냈다. 만화의 세계를 헤엄치며 맛봤던 슬픔과 기쁨, 내 마음을 콩콩 두드렸던 뜻깊은 장면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희귀병 다카야스동맥염을 앓는 20대 작가가 인생의 절반을 봐온 웹툰의 ‘심쿵’ 장면을 추천합니다. ‘웹툰 소사이어티’는 웹툰으로 세상을 배우고 웹툰으로 이어진 것을 느낀다는 의미입니다. 3주마다 연재.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