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 작가의 작품 <위아더좀비>는 좀비 사태가 터진 뒤 서울의 큰 타워에 고립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작중의 공권력은 서울타워에서 좀비 사태가 터지자 감염인이 나가지 못하도록 타워를 봉쇄한다. 주인공 김인종은 친구들과 함께 서울타워에 놀러 갔다가 좀비 사태가 벌어져, 좀비에게 친구들을 모두 잃고 타워에 갇혀 생활하게 된다. 그러다가 분실물센터를 개조해 안식처를 마련한 일행에 합류해 그들에게 정들고, 함께 몇 계절을 꾸려간다.
이 웹툰에는 악당이 없다. 인종 일행과 충돌하는 사람들에게도 각각의 사연이 있다. 좀비물 특성상 좀비에게 쫓기는 장면이 많이 연출되지만, 이미 친밀해진 사람 사이에서의 배신과 혐오는 거의 없다. 범죄를 저질렀거나 바깥에서는 살아갈 수 없다고 느껴 좀비가 판치는 타워로 피신해온 사람도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꽤 놀라운 일이다. ‘사회’ ‘세상’이라는 큰 재난으로부터 타워로 도망쳐온 사람들은 ‘좀비’라는 또 하나의 재난 앞에서 결속한다. 그들은 집단 내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한다.
이 만화는 꽤 많은 인물을 깊게 파고들어 조명한다. 많은 인물에게 보편성을 부여해 독자를 공감하게 하는 것은 특히 ‘밤’에 대한 묘사다. 등장인물들은 낮엔 왁자하게 떠들고 좀비에게 숨차게 쫓기다가도 밤이 되면 각자의 침대에 누워 하루를, 내일을 그리고 각자가 맺은 관계를 곱씹고 소화한다. 이 밤에 하는 생각에 대한 독백에서 이 만화의 리얼리즘이 확인된다.
주인공과 함께 다니는 ‘소영’의 동생 ‘소형’이 누나의 살인 사실을 알고 가출을 결심하던 밤, 이런 내레이션이 흐른다. “잠 못 드는 밤은 길고 길고. 맥락 없는 생각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그래도 끝내 잠이 오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과감한 결론에 도달하곤 합니다.” 누구라도 잠 못 드는 밤에 평소 하던 생각과 전혀 무관하지 않은 생각에 휩싸이고, 또 낮이었다면 좀더 오래 고민했을 과감한 결정을 내리곤 하니까. 결국 후회는 낮의 자기 몫이다.
타워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고 가는 카페 ‘모라해’의 사장 ‘지혜’는 인종을 좋아하는 마음을 이렇게 읊조린다. “좋아하는 마음이 되다 말았던 사람들에 관해 생각하면 (…) 그때는 그 마음들을 굳이 스스로 명확하게 들춰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결국엔, 이름 붙이기도 애매한 마음으로 남는다는 게. 약간 섭섭해.” 호감을 깊은 감정으로 발전시키지 않았던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대사다.
만화는 밤이라는 시간이 주는 차분함과 홀로됨이 끌어낼 수 있는 다양한 생각을 정확한 문장으로 포착한다. 작가는 인물들 각자에게 고독한 시간을 조금씩 갖게 해서 정신없이 진행되는 사건 전개를 풀어 정리하고, 인물들의 행동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좀비가 판치는 세계에서도 사람들은 자아를 골똘하게 돌아본다. 잠 못 드는 고요한 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고유한 세계를 펼쳐 보인다. <위아더좀비>는 좀비 없는 세상에서도 잠 못 이루는 나를 강하게 끌어당긴다.
신채윤 <그림을 좋아하고 병이 있어> 저자
*희귀병 다카야스동맥염을 앓는 10대 후반의 작가가 인생의 절반을 봐온 웹툰의 ‘심쿵’ 장면을 추천합니다. ‘웹툰 소사이어티’는 웹툰으로 세상을 배우고 웹툰으로 이어진 것을 느낀다는 의미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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