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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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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지난날,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운 거야

스물여섯 살 청년이 우리에게 남기고 간 것, 유재하 《사랑하기 때문에》
등록 2023-10-13 20:57 수정 2023-10-20 13:57
유재하 《사랑하기 때문에》 앨범 재킷.

유재하 《사랑하기 때문에》 앨범 재킷.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를 따라 야학에 갔다. 국어 과목을 맡고 싶었지만 국어교육과 학생이 이미 와 있었다. 그래서 중학교 국사 과목을 가르치게 됐다. 내가 간 야학에는 오륙십 대 학생이 많았다. 어머니뻘 학생들 앞에서 수업하는 내내 부족한 실력이 들통날까봐 마음을 졸였다.

우리 야학은 고등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고검반과 대학 입학자격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대검반으로 나뉘었다. 1년6개월 동안 고검반 담임을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온 마음을 쏟지 못했지만 학생들은 나를 배려하고 보듬었다. 다 지나고 나서 알게 된 것이다.

야학을 계기로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과 관계 맺는 일이 편해졌다. 무엇보다 부모님을 좀더 이해하게 됐다. 막연하게 세대 차이라고 치부했던 것들은 서로 섞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운동회를 열고 졸업여행을 떠났다. 음식을 나눠 먹고 안부를 물었다. 누군가를 품는 일은 나를 품는 일이었다. 나는 타인을 통해 성장했다.

서울시와 문화예술위원회, 빅이슈코리아가 공동 주최한 ‘민들레문학상’ 수상자들과 독서모임을 진행한 적이 있다. 민들레문학상은 홈리스(노숙인)를 대상으로 공모하는데, 수상자 서른 명에게 임대주택 보증금이 상금으로 지급됐다. 이 사업은 지원금이 끊겨 3회를 끝으로 더는 공모를 내지 않았다.

마지막 낭독회를 준비한다는 구실로 수상자들과 만나 시를 읽었다. 낭독회가 끝나고도 한 달에 한 번 모였다. 우리는 임시적이었다. 앞으로 무엇을 함께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 2년은 내게 문학이 무엇인지 묻게 했다. 우리가 이 땅에 나서 이 땅을 딛고 사는 한 이 땅의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 그것이 내 글쓰기를 바꿨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때다. 한 분이 퇴근 시간에 맞춰 회사 앞으로 찾아왔다. 쉼터에서 지내다 보건소에서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한 분이었다. 그와 함께 호프집에서 맥주를 한잔했다. 그가 불쑥 선물을 내밀었다. 입사 축하 선물이라고 했다. 상자에는 스팸과 식용유가 담겨 있었다. 헤어질 때 그는 끼니를 거르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와 나는 끼니를 고민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많은 사람과 연락이 끊겼다. 내 앞가림에만 몰두한 탓이다. 기억은 안갯속에 있다. 유재하의 첫 번째 정규 앨범이자 유고 앨범인 《사랑하기 때문에》에 수록된 <가리워진 길>을 들으면 나를 견뎌준 여러 사람의 온기가 떠올라 마음이 뭉클해진다.

이 시간이 계속될 것 같은 착각에 쉬이 빠지곤 했다. 그 무엇도 계속되는 것은 없음을 알면서도. 그 안일한 생각에 소홀해진 것이 많다. 친구를 잃고 혼자라고 비관했던 그 순간에도 사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우리는 모두 혼자가 아니다.

마을 시인을 자청하며 이웃들과 동네 서점에 모여 시를 읽고 있다. 서점을 운영하는 협동조합의 조합원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을 잡지의 기자로 시를 연재하고 있다. 마을에서 문학 운동을 벌이는 이유는 그동안 내가 지나친 것을 조금이나마 오래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유재하가 떠난 지 삼십여 년이 지났다. 어느새 나는 그보다 더 나이를 먹고 그의 음악을 들으며 내가 태어나기 전에 죽은 그를 그리워한다. 스물여섯 살 청년이 우리에게 남기고 간 것은 무얼까. 그는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워하는 사람이었다. “끝까지 따르리 저 끝까지 따르리 내 사랑”(<그대 내 품에>), 자못 경건한 그의 고백은 지나간 날을 향한 애가(哀歌)이다.

최지인 시인

*너의 노래, 나의 자랑: 시를 통해 노래에 대한 사랑을 피력해온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최지인 시인의 노래 이야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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