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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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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레’와 도래한 사랑

등록 2023-08-18 22:54 수정 2023-08-24 20:21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어떡해! 강아지 눈빛이 변했어!” 같이 사는 친구들과의 채팅방에 다급한 외침이 들려온다. 3년 전 이맘때, 강아지를 입양한 첫날 몇 시간 동안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잿빛 털의 강아지는 겁이 많고 조심스러워 보였다.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외출했더니, 잠에서 깨어나 돌변한 강아지가 온 집 안을 휘젓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로즈메리 화분이며, 빨랫바구니 속 옷들이며, 심지어 화장실 바닥에 고인 비눗물에까지 혓바닥을 날름거린다는 소식에 서둘러 귀가했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순한 표정으로 얌전히 있는 강아지 모습에 친구는 꽤 억울해했다.

이 말괄량이 강아지 이름은 도레. 장차 성견이 되어 빛나는 금색 털을 뽐내며 동네 할아버지들에게 잘생겼다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될 개다.

반려견 입양하며 공동생활 재편돼

여성 친구 두 명과 가족을 이뤄 산 지 7년차이던 2020년, 안정적인 공동생활 속에서 다른 존재를 돌보고픈 욕구가 생겨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친구가 애니멀호더(동물을 수용 공간 이상으로 기르는 사람)에게서 구조한 강아지의 입양처를 구한다는 소식에는 남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견(犬)연’이 있는 걸까. 야무진 눈빛을 가진 도레의 사진을 본 순간, 이 작은 개가 우리에게 도래한 희망처럼 느껴졌다. 혼란스러운 미래에 예측 불가능한 존재를 더해버리자는 역설적 낙관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아니면 이 구체적인 존재가 우리에게 가져다줄 확실한 웃음과 활기에 기대고 싶었는지도.

김주온 제공

김주온 제공

그 뒤 우리의 공동생활은 도레를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됐다. 도레를 이해하기 위해 온갖 교육에 참여했고, 매달 병원비를 저금했다. 돌봄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각자의 일정을 촘촘하게 공유했다. 개와 함께 살았던 지난 3년간, 돌봄과 책임과 사랑이 무엇인지 거듭 질문했다. 나는 도레를 통해 사랑이란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음을 깨달았다. 첫눈에 반하는 열정이 지나간 자리에서 매일의 일상을 일구는 묵묵한 행위로서 드러나는 것. 도레에게는 식사와 산책, 청결과 건강을 챙기는 일. 성실하게 임무를 다하면 내 사랑이 표현되는 것이라 믿었기에 귀찮다는 생각이 들면 죄책감이 들었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숨 돌릴 틈 없이 바쁜데 도레 산책을 건너뛸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해버린 것이 오래 마음에 걸렸다.

너는 내 사랑을 느낄까

동시에 도레와 신나게 놀기보다 뒤치다꺼리하는 데만 능숙한 나 자신이 속상했다. 도레도 그것을 편안하게 여기는지 드라이기로 털 말리기 같은 싫은 일을 내게는 흔쾌히 허용하는데, 친구들은 그걸 부러워한다. 정작 나는 창의적 방식으로 도레와 함께 뒹굴고 뛰는 친구들의 몸짓을 따라 하며 질투한다. 신약성경 속 마리아를 흉보는 마르타가 된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자주 방문을 닫는다. 도레를 사랑하지만 혼자 있고도 싶으니까. 한참 만에 끼이익 문을 열고 나가면 기다렸다는 듯 도레가 달려온다. 도레의 눈을 바라보며 묻는다. 너에게 사랑은 뭘까? 너는 내 사랑을 느낄까? 나는 도레의 사랑을 느낀다. 그저 존재함만으로도 나를 돌보는 도레의 사랑.

김주온 BIYN(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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