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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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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장애인 교사…우리는 어디나 있다, 학교에도 있다

성소수자·장애인·자퇴생·보육원 출신 등 <별별 교사들>
낡은 정상성 대신 다양성 긍정하는 학교 되기를
등록 2023-06-02 12:37 수정 2023-06-09 07:39
교사 조원배씨가 고 신영복 선생에게 ‘누구나 꽃' 글씨를 선물받고 찍은 사진. 조씨는 이를 학급 급훈으로 자주 사용했다. 조원배 제공

교사 조원배씨가 고 신영복 선생에게 ‘누구나 꽃' 글씨를 선물받고 찍은 사진. 조씨는 이를 학급 급훈으로 자주 사용했다. 조원배 제공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어떤 직업보다 높은 도덕적 기준을 요구받는다. 사회가 간주하는 ‘정상성’은 손쉽게 도덕과 윤리의 탈을 쓴다. 비장애인·이성애·가부장제 중심의 정상성이 곧 도덕은 아니지만, 사회에서 정상이 아닌 것으로 배제된 비정상성은 쉽게 부도덕함으로 치환된다.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성은 교사의 자질을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사회는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 초·중·고·대학교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한 사람, 장애가 없는 이성애자가 교사에 더 적합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이 기준에서 벗어나면 교사로서 부적격하다고 본다.

‘정상성’이 강력하게 지배하는 학교에도 별별 사람은 있다. 고등학교를 자퇴했거나 대학 졸업장 없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 장애가 있는 교사, 성소수자 교사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교사도 학교에 존재한다. 사회가 부적격하다고 판단하기 쉽지만 이들은 교육 현장에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최근 출간된 <별별 교사들: 다양성으로 학교를 숨 쉬게 하는 교사들의 이야기>(교육공동체벗 펴냄)에는 사회가 규정한 정상에서 벗어난 선생님 9명의 이야기가 담겼다.

교사가 자연스럽게 정체성을 드러낸다면
교사 선영씨가 2023년 5월 여성주의문화운동단체 ‘언니네트워크’ 후원 주점에 참여한 모습. 선영 제공

교사 선영씨가 2023년 5월 여성주의문화운동단체 ‘언니네트워크’ 후원 주점에 참여한 모습. 선영 제공

“너 레즈비언이야?”

단지 스물일곱 살까지 ‘모태솔로’였다는 이유로 받은 질문이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선영씨는 몇 해 전 동료 교사들과 모인 술자리에서 당황스러운 말을 들었다. 평소 선영씨를 잘 챙겨주던 선배가 ‘너는 한 번도 연애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며 성적 지향을 다짜고짜 물어본 것이다. 남들 다 하는 연애를 안 하고 싶어서 안 한 건 아니었다. 교육대학 생활 4년, 교직 임용 뒤 3년 동안 부단히 주변 사람이 주선해준 만남 자리에 나갔다. 수년에 걸쳐 노력했지만 이성 연애라는 결실은 보지 못했다.

무례한 질문은 선영씨가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계기가 됐다. 때마침 페미니즘을 접하고 공부하면서 다양성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이전까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누구에게 끌리는지 등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대학교에 입학한 뒤엔 정상성을 갖고 싶어 발버둥쳤”기 때문이다. 4년 내내 같은 시간표에 따라 수업을 듣는 동기 사이에서 자신이 이질적인 존재로 느껴졌다. 경제 수준, 성적, 외모 등은 노력해도 따라가기 어려운 영역 같았다. 남들 다 하는 연애라도 해야 했다. 그래야만 이들과 다르다는 불안을 잠재울 수 있을 듯했다.

숱한 고민이 이어지다 스물아홉에 여성과 첫 연애를 했다. 상대와 같이 살면서 그는 유부녀가 됐다. ‘애인이 있다’는 말을 ‘남자친구가 있다’는 말로 알아듣거나, 머리가 짧은 상대방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본 학교 보안관이 “아, 남편이시구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선영씨도 학생들이 “선생님 결혼했어요?”라고 물으면 “네”라고 했다. 국가가 공인한 적 없는 결혼이었지만, 상대와 헤어진 뒤 선영씨는 자신이 담임을 맡은 학생들에게 장난스레 이혼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상성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가 교실에서 만난 학생들은 다양한 가족 유형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가정 배경을 솔직히 말하지 못하거나, 결핍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 어버이날이면 으레 부모님에게 편지를 쓰게 하는 수업 활동은 누구에게 편지를 써야 할지 머뭇거리게 했다. 담임교사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이혼 사실을 드러낸다면, 부모로 한정할 게 아니라 편지를 주고 싶은 가족구성원에게 편지를 쓰도록 한다면 다름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 터였다.

선량한 차별, 그리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 학생들

사회는 소수자성을 가진 이가 교육자로 적합하지 않다고 오판한다. 소수자를 배제하는 차별은 배려로 포장되기도 한다. 2010년부터 중학교 교사로 일한 김헌용씨는 두 번째 학교에서 3년간 고학년 수업을 맡지 못했다. 당시 교감이 시각장애인인 그를 ‘배려’해 1학년 수업만 전담하도록 조처했다. 자신을 배려한 게 아니라 배제했다는 사실은 그 교감이 다른 학교에 간 뒤에야 알았다. 교감이 김씨가 고학년 수업을 맡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학부모회장과 모종의 합의를 한 것이다. 그 혼자만 겪은 일은 아니었다. 중요도가 높은 일을 맡기지 않는 것은 장애인 교원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배려를 가장한 ‘미세 차별’은 교사로서 김씨의 자존감을 갉아먹었다. 동료들은 자신을 ‘장애라는 특성을 가진 교육자’가 아니라 ‘불쌍한 장애인’으로만 보는 것 같았다. 첫 발령을 받은 동기들이 모두 담임교사를 맡는 동안, 김씨는 비담임 교사로 남았다. 교직생활 2~3년차가 됐을 때, 한 교감이 그에게 ‘대학원에 가서 공부해 교수가 돼라’고 조언했다. 악의 있는 말은 아니었지만 칭찬도 아니었다. 학교는 그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말처럼 들렸다. ‘힘들어도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만 하지 말라’는 교장의 조언을 듣기도 했다. “상처를 주려고 한 말은 아니었을지언정 이런 한두 마디가 ‘교직 사회에서 장애인 교사로 생활하긴 힘들다. 학교 현장도 준비되지 않았다’고 계속 말하는 것 같았다.”

선량한 차별이 그의 교직생활 적응을 어렵게 했다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학생들의 존재는 교직을 이어나갈 동력이 됐다. 학생들은 김씨의 장애에 어떤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환경을 바꿨다. 시각장애인 선생님이 지하철역에서 학교까지 편히 오가도록 구청에 민원을 넣어 노란 점자 보도블록을 깔았다. 하얗게 변한 눈을 보고 학생들이 불편함을 느낄까봐 검은색 렌즈를 끼웠지만, 학생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선생님의 모습은 중요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장애가 있는 선생님에게 맞는 방식으로 적응했다. 중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는 조원배씨는 청신경 손상으로 현재는 보청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상대의 입 모양을 읽을 수 없는 전화로는 소통할 수 없을 정도다. 학생들은 그런 선생님이 있는 교무실로 찾아올 때면 공책에 용무 내용을 미리 써온다.

학생들이 적어낸 교원평가에서 ‘선생님을 보면서 용기를 얻었다’는 내용을 볼 때면, 조씨는 자기 존재 자체가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이 된다고 느낀다. “잘 듣지도 못하는 청각장애인이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놀라운 일이며, 또 이런 나를 통해 자신도 어떤 희망을 가졌다는 뜻일 것이다.”

“대박, 우리 학교에도 이런 쌤이”

“오, 윤승. 덕분에 무사히 졸업했어. 감사감사륑.”

얼마 전 고등학교 수학교사인 이윤승씨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게시물에 이씨가 가르쳤던 졸업생이 댓글을 달았다. 이씨는 2015년부터 학교에서 학생들과 평어(이름+반말)를 쓴다. 학생들은 ‘선생님’이라는 호칭 대신 ‘윤승’이라고 부른다. 말을 바꾸면 권력의 위계를 허물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학생들은 자기 생각과 감정을 더 솔직하게 표현했다.

교사 이윤승씨는 교실에서 평어를 쓴다. 이윤승 제공

교사 이윤승씨는 교실에서 평어를 쓴다. 이윤승 제공

학교생활이 지옥 같아 고등학교를 자퇴한 이씨는 교사로 다시 학교에 돌아왔다. 열일곱, 열여덟의 이윤승에게 필요했던 교사가 되고 싶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지친 학생들에게 자신이 쉴 수 있는 곳이 됐으면 했다. 정교사가 되고 담임을 맡은 첫해, 학생들과 상담하면서 성적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대신 어떻게 하면 고등학교 생활을 재밌게 보낼지에 대해 주로 말했다.

때때로 학생들에게 웃으면서 ‘자퇴하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그저 농담으로 받아들였지만, 그는 이 말이 학생들의 마음에 조금 남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양한 삶이 가능하고 자기 삶이 누군가의 삶과 꼭 닮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8년 동안 대안학교 교사로 일했던 김은지씨는 교사를 시작할 때 대학교 졸업장이 없는 상태였다. 보육원에서 자란 김씨는 보호시설에서 퇴소한 뒤 아르바이트를 하고 콜센터·사회적기업 등에서 일했다. 이후 “대학 학위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삶으로 학생들을 만나겠다”는 생각에 대안학교 교사가 됐다. 학생들은 “헐 대박, 드디어 우리 학교에도 이런 쌤이 왔어!”라고 반응했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교사들은 모두 좋은 대학을 나왔는데, 진짜 대학을 나오지 않은 선생님이 생겼다는 의미였다.

집이 아닌 사회에서 만나는 거의 유일한 어른

별별 교사 9명은 교육자의 시각에서 다양성을 강조했다. 선영씨는 “교사는 학생들이 집이 아닌 사회에서 만나는 거의 유일한 어른이다. 쉽게 역할모델이 되는 교사들의 모습이 너무 획일적이라면 학생들이 자신의 다양한 정체성, 다양한 관심사와 재능 등 이런 것을 자유롭게 탐색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김헌용씨도 교육자로서 “학교가 다양성을 추구하는 공간으로 바뀌어야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단순히 ‘다름을 인정하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다양성을 긍정해야 한다. 점차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고 협업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김씨는 “다양성을 경험하지 않으면 그 능력을 키우기는 어렵다”고 본다. 결국 교육의 본질은 ‘사람을 어떻게 키워내는가’일 것이다. 입시 위주 교육이 문제라는 반복된 제기도, 4차 산업혁명의 흐름에 맞춰 디지털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는 조바심도 본질을 잊는다면 교육의 질 향상과 거리가 멀지 모른다.

교사 김은지씨가 어린 시절을 보낸 보육 시설을 다시 방문해서 일을 돕는 모습. 김은지 제공

교사 김은지씨가 어린 시절을 보낸 보육 시설을 다시 방문해서 일을 돕는 모습. 김은지 제공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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