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집에서 혼자 뭐 해?” 하고 누군가 물으면 나는 쑥스럽게 “웹툰 봐”라고 대답한다. 왜 쑥스럽냐면, 웹툰 보는 게 그리 떳떳하지 않은 듯해서였다. 할 일이 쌓였는데 인터넷으로 보는 만화는 너무 재미있어서 놓을 수 없었다. 내 휴대전화도 없던 때 할머니 휴대전화를 빌려서, 잠자야 할 시간에 몰래 컴퓨터를 켜서 열심히도 웹툰을 봤다. 지금도 기분이 처질 때 웹툰을 본다. 매일매일, 그날그날의 웹툰을 기다리며 본다. 사탕 한 개 값쯤 되는 돈을 내고 ‘미리보기’도 한다. 웹툰은 어느새 일상에 자리잡은,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내 일부다.
내가 요즘 가장 푹 빠져서 보는 웹툰은 와난 작가의 <집이 없어>다. 집이 없는 주인공 ‘고해준’과 ‘백은영’이 으스스하고 허름한 ‘구 기숙사’에서 우당탕탕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런데 사실 내용을 이렇게 줄이면 안 된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더 많은 인물의 더 복잡한 사정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만화에 나오는 여러 가정에서 우리 집의 모습이 보였다. 특히 해준의 엄마가 집 바닥을 뽀득뽀득 닦는 장면이 그랬다. 우리 엄마도 내가 어릴 때 나를 씻기며 꼭 발 사이사이를 샤워 타월로 정성스럽게 닦아주곤 했다. “엄마는 해준이가 집에 돌아왔을 때, 아무 데나 앉고 눕고 뒹굴었으면 좋겠어!”① 우리 엄마도 이렇게 말했지.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 채윤이 발!”
또 다른 주인공 백은영은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청소년이다. 은영은 일찍이 가출해서 시설과 텐트를 전전하며 살았다. 도벽도 있고, 뻔뻔하고, 싸우면 상대방의 약점을 후벼 파고, 마음 안 드는 일에는 욕과 주먹부터 나가는 캐릭터다. 그런데 속사정을 들어보면 미워할 수가 없다. 나는 이런 부류의 사람을 만나면 먼저 피하기 바빴다.
이 웹툰을 추천해준 친구 지윤이 말했다. “그런 미운오리새키(ㅋㅋ)들의 속사정을 들어볼 기회가 없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더 많다고 생각하는데… <집이 없어>를 보면 간접적으로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선생님은 “알면 사랑하고, 모르면 혐오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딱 그대로였다. 은영의 처지를 알고 나니 도무지 그를 혐오할 수 없었다.
<집이 없어>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강하라’라는 인물이 어머니의 반대에도 친구 ‘박주완’의 응원을 받으면서 유도선수가 되어 읊조리는 독백이다. “나는 개인의 끈기도 열정도 믿지 않아. 그런 것에 기대어 모든 고통을 혼자 감내하는 건 결국 사람을 황폐하게 만들 뿐이다.”②
아마 당신에게도 앞만 보고 달려야 했던 시절이 있을 것이다. 그 시절 당신을 버티게 한 것은 무엇이었나? 끈기와 열정? 가슴을 부풀게 하는 꿈? 어쩌면 그것들에 가려지기 쉬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매일 대화하는 친구들, 그사이에 일어나는 사건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날 응원해준 누군가가 없었다면, 계속 “해보자”라고 말해준 친구들이 없었다면, 그리고 쉬는 시간 틈틈이 보던 웹툰이 없었다면 나는 끝내 (그 뭔가를)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보는 당신과 대화해보고 싶다. 어떤 인물의 어떤 대목이 가장 좋았는지. 그리고 당신의 보이지 않는 틈새를 채운 건 무엇이었는지.
신채윤 <노랑클로버> 저자* “작은 말풍선과 등장인물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좇으며 몸과 마음이 아픈 순간을 흘려보냈다. 만화의 세계를 헤엄치며 맛봤던 슬픔과 기쁨, 내 마음을 콩콩 두드렸던 뜻깊은 장면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희귀병 다카야스동맥염을 앓는 10대 후반의 작가가 인생의 절반을 봐온 웹툰의 ‘심쿵’ 장면을 추천합니다. ‘웹툰 소사이어티’는 웹툰으로 세상을 배우고 웹툰으로 이어진 것을 느낀다는 의미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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