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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바람, 그는 ‘불륜녀’이기만 한가

‘피해자다움’이란 무엇인가, 질문하는 <그렇고 그런 바람에>
등록 2023-11-18 11:39 수정 2023-11-24 14:07
<그렇고 그런 바람에>의 한 장면. 네이버 웹툰 갈무리

<그렇고 그런 바람에>의 한 장면. 네이버 웹툰 갈무리

불륜녀 오바람이 복학했다! 아니영 작가의 작품 <그렇고 그런 바람에>(네이버웹툰, 2022년~)는 회화과를 다니다 교수 김상남과 불륜을 저지르고 휴학했던 오바람의 학교생활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바람이 바람났대.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만 바람은 다른 사람들처럼 꿈을 꾸는 평범한 대학생이다.

가정이 있다는 것을 숨기고 바람과 연인관계를 맺었던 김상남은 바람에 대한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추한 유서를 남기고 강물에 투신자살한다. 복학한 바람은 과제 전시를 비롯한 학교생활을 번번이 방해하고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망쳐놓으려는 ‘김상남 물귀신’에 시달린다.

바람은 회화과에 수석 입학한 유능하고 감각적인 예술가다. 그는 여러 미술재료 중 유화물감을 가장 좋아한다. 잘못 그린 부분도 다시 덮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복학 뒤 새로 사귄 친구들은 바람에게 의지할 곳이 돼주지만, 모두로부터 시선을 받는 상황과 김상남 귀신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 바람이 무심코 그들을 의심하며 갈등을 빚는다. 친구들은 다시 학교를 떠나겠다며 고향으로 내려간 바람을 대신해 김상남 물귀신이 망쳐놓은 바람의 과제 작품에 물감을 덧발라 고친다. 이를 발견한 바람은 친구들과 극적으로 화해한다. 망치거나 잘못된 것만 같은 인생도 물감을 덧바르듯 새로운 순간으로 채워넣어 다시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고 그런 바람에>의 한 장면. 네이버 웹툰 갈무리

<그렇고 그런 바람에>의 한 장면. 네이버 웹툰 갈무리

결국 김상남 물귀신은 바람과 같은 대학에 다니는 김상남의 딸 김지원으로 밝혀진다. 바람은 그 정체를 알고 지원과 싸우다 함께 창밖으로 떨어져 학교 호수에 빠진다. 나중에 지원은 이 상황을 떠올리며 함께 호수로 떨어진 바람이 자신을 꼭 껴안았다고, ‘깨져버릴 신줏단지라도 된다는 양’ 껴안고 떨어졌다고 말한다. 지원은 품 안에서 전해지는 바람의 온기에 무엇보다 동요한다. 자신이 괴롭힌 바람이 사실은 김상남에게 속아 넘어간 한 명의 피해자, 무엇보다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웹툰은 어떤 복잡한 설명보다 장면과 입체적인 대사를 통해 서로를 미워하는 사람 사이에서도 주고받을 수 있는, 모순되고 얼핏 개연성 없는 것처럼 보이는 감정을 정확히 전달한다.

바람의 첫 등교는 모두에게 주목받는다. 사람들은 4년 만에 복학한 바람을 두고 수군거리고,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바람은 누구보다 화려한 패션과 발랄한 태도로 등교한다. 나중에 퇴학당한 지원의 무고를 주장하고 바람을 저격하는 대자보를 써 붙인 지원의 친구는 “무슨 피해자가 그렇게 진하게 향수를 뿌려? 무슨 피해자가 매일매일 요란 법석하게 치장을 해? 무슨 피해자가 그렇게 소리 높여 웃어?”라는 대사로 작품을 관통하는 ‘피해자다움’에 대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돌이켜보면 독자도 바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불륜녀’라는 타이틀을 먼저 접하고, 이후 차차 진행되는 스토리로 그의 사랑스러움을 발견하게 된다. ‘불륜녀’라는 설명을 보고 훨씬 더 차분하고, 의기소침해 있고, 주변 눈치를 보는 여자를 상상했음을 깨닫고 마음이 섬찟해졌다.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것은 2차 가해이고 또 다른 폭력이다. 이 작품은 다만 질문한다. 피해자를 어떤 시선으로 볼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신채윤 <그림을 좋아하고 병이 있어> 저자

*웹툰 소사이어티: 희귀병 다카야스동맥염을 앓는 스무 살의 작가가 인생의 절반을 봐온 웹툰의 ‘심쿵’ 장면을 추천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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