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제작진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순양그룹 창업주 진양철이 그렇게 인기를 모을 줄은. 배역을 맡은 이성민의 신들린 연기도 한몫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진양철 붐’을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기업의 역사를 기업가 개인의 인생 역정과 겹쳐보는 데 익숙하다. 그쪽이 훨씬 이해하기 쉽고, 무엇보다 재밌기 때문이다.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과 냉철한 판단력, 승부사 기질로 무장한 기업인의 성공담은 너무나도 매력적인 이야기지 않은가.
‘기업인 서사’에 대한 열광을 마냥 탓할 수는 없다. 사람은 영웅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숭배하는 존재이니까. 그렇다면 역사가가 할 일은, 어느새 현대의 영웅이 돼버린 기업인이 어떻게 그런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는지 꼼꼼히 살피는 것일 터다. 장문석의 <피아트와 파시즘>도 그런 시도 중 하나다. 책은 이탈리아 자동차회사 피아트의 창업주인 조반니 아녤리를 ‘프리즘’ 삼아 20세기 초반 이탈리아 사회를 들여다본다.
아녤리라는 프리즘에 비춰본 이탈리아는 세 가지 ‘이즘’(ism)으로 갈라진다. 먼저 피에몬테주의(Piemontesismo). 아녤리는 자기 고향이자 피아트가 있는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사람들의 근면성실함과 질박함, 규율에 복종하는 태도를 미덕으로 삼았다. 다음으로 포디즘. 미국 포드자동차가 구축한 대량생산-대량소비 시스템을 피아트에 이식하는 일은 아녤리 평생의 꿈이었다. 마지막으로 파시즘. 아녤리에게 당시의 지배적 이념인 파시즘이 내세운 질서와 규율은 통제 도구이자 국가의 족쇄였다.
아녤리의 리더십은 피에몬테주의, 포디즘, 파시즘이라는 세 ‘이즘’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가운데 발휘됐다. 로마의 ‘꼴통들’로부터 간섭이 들어올 때면 아녤리는 피에몬테 특유의 일사불란한 군사문화를 강조함으로써 기업의 단결을 도모했다. 피아트를 이탈리아의 포드로 키워내려는 아녤리의 집념은 자동차 선진국인 프랑스는 물론, 사회주의국가인 소련에까지 자동차를 수출하는 쾌거로 이어졌다. 하지만 정작 포드가 이탈리아 시장에 진출하려 들자 아녤리는 파시스트당에 국내시장 보호를 호소해, 끝내 이를 관철했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피에몬테의 중심인 토리노는 근면한 자본가의 도시일 뿐 아니라 혁명적인 노동자의 도시이기도 했다. 만만찮은 노동자를 어르고 달래 어찌어찌 포드식 대량생산에 성공하더라도, 이를 소비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실제 이탈리아에선 네 가구가 피아트 자동차 한 대를 공동구매해 4주에 한 번씩 번갈아 이용하는, ‘가난한 자의 포드주의’가 유행했다. 파시스트 정권 역시 미국식 대량생산에 몰두하는 피아트보다는 장인적 소량생산을 고수하는 경쟁사 ‘알파로메오’가 훨씬 이탈리아적이라 여겼다.
이 책은 이런 한계에도 아녤리가 기어이 피아트를 세계 굴지의 자동차회사로 성장시켰다는 이야기로 끝맺는다. 하지만 지은이는 아녤리가 그러한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맥락을 충실하게 복원해냄으로써 전형적인 ‘기업인 서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피에몬테의 독특한 지역성, 포드주의의 이상과 이탈리아의 낙후한 현실, 기업을 통제하려 들면서도 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파시즘의 이중성이 아녤리의 삶에 응축됐다.
그렇다면 진양철, 아니 그의 모델이 됐음직한 삼성의 이병철이나 현대의 정주영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낼 수 있는가. 어차피 기업사가 기업인의 영웅 설화 이상이 되기 어렵다면, 최소한 이들을 통해 당대의 사회상이라도 보여줘야 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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