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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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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는 진보, 파괴하는 보수?

프랑스의 사회주의 정치가 장 조레스, 지킬 건 제대로 지키며 바꾸는 진보 정치를 추구하다
등록 2025-02-20 18:03 수정 2025-02-27 17:04
노서경, ‘의회의 조레스 당의 조레스 노동자의 조레스’, 마농지, 2022년.

노서경, ‘의회의 조레스 당의 조레스 노동자의 조레스’, 마농지, 2022년.


“요새는 내가 보수가 된 것 같아!”

계엄 이후 주변의 진보 지인들에게 이런 얘기를 자주 듣는다. 그럴 만도 하다. 평소 국가권력을 비판하고 법질서의 한계를 지적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누구보다 헌정을 옹호하고 민주공화국을 지키려 애쓰고 있으니 말이다. 오히려 최근 현 체제에 가장 불만이 많고, 나아가 무너뜨리려 드는 건 보수를 자칭하는 사람들이다. 헌법재판소를 의심하고, 음모론을 퍼뜨리며, 계엄령은 ‘계몽령’이었다고 항변한다. 어째 진보와 보수의 역할이 뒤바뀐 것만 같다.

보수가 파괴를 원하고, 진보는 수호를 외치는 현실이 아이러니하게 혹은 서글프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노서경의 ‘의회의 조레스 당의 조레스 노동자의 조레스’(마농지, 2022)에 따르면, 어쩌면 진보란 제대로 바꾸기 위해서라도 지킬 것을 지키는 자들이다. 책은 위대한 사회주의 정치가인 장 조레스의 일대기지만 단순히 그를 기리거나 찬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조레스의 삶과 사상을 통해 프랑스 제3공화국, 나아가 사회주의와 진보 정치를 다시금 질문하게 하는 것이 지은이의 목표다.

조레스가 마주한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프랑스 제3공화국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참패한 제2제정의 폐허에서 탄생했고, 파리 코뮌을 무너뜨리며 기틀을 다졌다. 궁여지책으로 등장한 공화국이었던 만큼 좌도 우도 좋아할 리 없었다. 조레스가 하원 첫 임기를 수행하던 시절인 1886년에서 1889년 사이에만 내각이 무려 열두 번이나 교체됐다. 국제 정세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전까지의 불안한 합종연횡과 세력균형이 무너지며 전쟁 위기가 고조됐고, 유럽 열강은 앞다퉈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었다.

조레스는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공화국이란 커다란 신뢰의 행위라 생각했고, 이를 위해 분투했다. 나라를 둘로 가른 드레퓌스 사건 당시 조레스는 사회주의 정치인으로선 드물게 열렬히 드레퓌스를 옹호하며 재심을 주장했다. 보수파는 드레퓌스가 독일의 스파이라며 매국노로 몰아세우고, 사회주의자들은 유대인 장교였던 ‘부르주아’ 드레퓌스의 일에 우리가 끼어들 이유가 있느냐며 방관하던 시절이었다. 심지어 그는 드레퓌스 사건으로 위기에 처한 공화국을 구해내기 위해서라면 사회주의자의 입각 역시 허용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렇다고 조레스가 “뭣이 중한디!”를 외치며 ‘거악’을 물리치기 위해 덮어놓고 협력하자 주장하던 속물은 아니었다. 그의 사회주의는 뚜렷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조레스는 소유가 공화국 존립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문제는 그 방식이었다. 개인의 사적 소유를 무한정 긍정할 수도, 아예 부정할 수도 없었다. 조레스의 대안은 사회적 소유였다. 소유가 공동체의 것이 될 때 개인은 진정 자유로워질 것이며, 공화국의 덕성이 보전될 수 있을 터였다. 이를 위해 조레스는 평생 의회에서 투쟁했고, 수많은 책과 칼럼을 썼으며, 노동자 계급을 당 아래 하나로 조직하는 데 힘썼다.

조레스에게 공화국 수호와 사회주의 실현은 별개가 아니었다. 사회주의는 공화국이라는 굳건한 토대 위에서만 뿌리를 내릴 것이며, 공화국은 사회주의를 받아들임으로써만 그 정신을 진정으로 살릴 수 있다는 게 조레스의 지론이었다. 지금 주말이면 차가운 거리로 나오는 시민들 역시, 민주주의와 공화국을 지키자고 호소하면서도 그 ‘너머’를 말하고 상상한다. 진보는 지키면서 바꾸는 이들이라는 사실을, 19세기 프랑스의 조레스와 21세기 한국의 시민들이 말해주고 있다.

유찬근 대학원생

* 유찬근의 역사책 달리기는 달리기가 취미인 대학원생의 역사책 리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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