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의 위기>, 차태서 지음, 성균관대학교출판부 펴냄
“이러다 미국이 아니라 트럼프가 돌아올 판이다.”
“미국이 돌아왔다”며 호기롭게 백악관을 탈환한 조 바이든 정부는 안팎의 위기로 4년 만에 물러나게 생겼다. 회생이 불가능해 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화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것은 물론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을 넉넉하게 앞서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선 이미 트럼프 재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정부를 이끌어갈 사람들에게 ‘줄을 대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곧 다가올 대선의 결과를 속단할 수는 없지만, 적지 않은 사람이 트럼프의 복귀에 대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집권이 단순한 우연이나 일탈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차태서가 쓴 <30년의 위기> 역시 트럼프는 이상하지도, ‘비미국적인’ 대통령도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다만, 그가 상징하고 대표하는 미국이 우리가 아는 미국과는 조금 다를 뿐이다. 냉전 이후 미국이 주도하던 세계질서를 뒤흔드는 건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도 중국의 부상도 아니다. 바로 미국 자신이다.
공화당의 이단아 트럼프를 탄생시킨 기원은 아이러니하게도 두 명의 민주당 대통령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 명은 포퓰리즘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앤드루 잭슨, 다른 한 명은 제국주의에 맞서 공화주의를 옹호한 토머스 제퍼슨이다. 잭슨과 그의 계승자들은 해안지대 엘리트와 금융 자본가에게 착취당하는 ‘선량한’ 내륙지대 민중의 대변자를 자처하며, ‘우리’와 ‘그들’ 사이에 엄격한 구분선을 긋는다. 중서부 러스트벨트의 지지로 대통령이 돼 미국적인 삶을 파괴하는 불법 이민자와 무슬림, 피시(PC·정치적 올바름)주의자를 몰아내자 주장하는 트럼프는 누구보다 충실한 잭슨의 후예다.
누가 봐도 뚜렷한 잭슨과의 관계에 견주면, 제퍼슨과 트럼프의 관계는 다소 애매하다. 제퍼슨은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이 주도했던 권력의 중앙 집중과 상업적·군사적 팽창에 누구보다 강하게 반대한 인물이었다. 미국이 영국과 같은 제국이 아닌 시민의 덕성을 간직한 공화국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던 제퍼슨의 정신은 국가 부채 축소를 주장한 2009년 티파티 운동, 그리고 2016년 트럼프 당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국가기구의 무분별한 확장과 선교사적 사명감에 사로잡힌 대외 개입에 제동을 걸었던 것은 제퍼슨주의의 보수적 변용이었다.
이처럼 잭슨과 제퍼슨이라는 두 사상적 기원에 힘입어 탄생한 트럼프 정부는 미국이 간직해온 또 다른 전통인 ‘필라델피아 체제’를 무너뜨렸다. 미국은 13개 나라 대표단이 필라델피아에 모여 국제회의를 거쳐 탄생시킨, 하나의 나라인 동시에 국제사회이기도 했다. 매사추세츠, 뉴욕, 버지니아 등 서로 남이나 다름없던 나라들이 각자의 주권을 내려놓고 평화와 번영을 위한 초국적 네트워크를 만든 것이다. 각 나라의 주권을 신성불가침의 권리로 여기며 합종연횡과 세력균형으로 아슬아슬한 평화를 유지한 유럽의 ‘베스트팔렌 체제’와는 달랐다.
북대서양조약기구와 국제연합 창설에서 드러나듯 ‘필라델피아 체제’는 미국이 비단 자국뿐 아니라 전세계에 적용되기를 바라며 꾸준히 유지와 확산에 노력해온 질서였다. 바로 그 질서가, 다름 아닌 미국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 여러 서평과 인터뷰가 지적하듯 이는 분명 한국에 적잖은 위기일 터다. 이 글에서는 나라를 지탱하는 사상적 뿌리가 하나가 아니며, 때로는 서로 충돌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건국절’을 기념하자는 보수와 <죽창가>를 부르는 진보 모두 유념하면 좋겠다.
유찬근 대학원생
*역사책 달리기: 달리기가 취미인 대학원생의 역사책 리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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