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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거나 나쁜 트럼프’ 이분법을 넘어서

돌아온 트럼프의 미 제국, 13~14세기 원 제국(몽골)의 기시감과 미시감
등록 2024-11-15 22:31 수정 2024-11-20 08:03
어떤 제국과의 조우, 이강한 지음, 경인문화사 펴냄

어떤 제국과의 조우, 이강한 지음, 경인문화사 펴냄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사건은 전세계에 충격을 안겼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의 반응은 유독 인상적이었다. 실시간으로 개표 결과를 확인하고 트럼프가 돌아온 이유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이며 책임 소재를 따지는 등, 어쩌면 미국인보다 미 대선에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사실상의 ‘제국’이며, 한국은 이 제국의 강한 영향 아래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풍경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신경을 쓴들 트럼프의 미국이 나아갈 길을 정확히 알 수는 없는 법. 이럴 때는 역사가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강한의 ‘어떤 제국과의 조우’(경인문화사, 2024)는 역사상 한반도에 강력한 힘을 투사한 제국이었던 몽골의 원과 고려 왕조가 맺었던 관계를 다각적으로 분석한다. 지은이가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원 제국과 고려 사이에서 벌어진 여러 사건과 그 영향은 ‘미 제국’과 한국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도 유용한 통찰을 준다.

이른바 ‘원 간섭기’에 대한 이해는 크게 두 가지다. 사실상 몽골의 속국, 식민지로 전락했던 굴욕과 쇠퇴의 시기였다는 시각은 아직도 대중 사이에 뿌리 깊다. 반면 최초의 세계 제국 ‘예케 몽골 울루스’의 일원으로서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고 지구적 유통망에 활발히 참여했다는 시각 역시 소수지만 존재한다. 지은이는 두 입장 모두와 거리를 둔다. 원 제국이 고려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는 건 분명하다. 고려 국왕은 원 황실의 부마이자 일본 정벌을 위해 설치된 정동행성(征東行省)의 승상으로서 종종 제국의 간섭과 참견에 시달렸다. 신하들 역시 아무리 품계가 낮을지언정 본국 고려보다 원 제국의 관직을 선호했다.

그렇다고 고려와 원이 완전히 통합된 것도 아니었다. 원 제국이 고안한 지폐인 보초(寶鈔)는 고려에 통용되지 못했고, 두 나라 간 ‘관세장벽’도 여전했다. 심지어 고려 쪽은 원 제국의 무역 네트워크에 참여하기를 주저했다. 원 세조 쿠빌라이가 중국 강남(양쯔강 남쪽)과 한반도 서해안 사이 바닷길을 잇는 역참인 수역(水驛)을 설치할 것을 제안했으나, 정작 고려가 이를 거부한 것이다. 물론 원 제국의 일부가 됨으로써 강남을 비롯한 외국 상인이 고려를 찾게 된 건 맞으나, 이는 원 제국이 쇠퇴한 14세기 전반의 일이었다. 요컨대, 원 제국의 안정과 고려의 대외무역은 반비례 관계에 있었던 셈이다.

이렇듯 두 나라의 경계는 어떤 영역에선 완전히 지워지다시피 했지만, 어떤 영역에선 계속해서 뚜렷하게 존재했다. 그런 만큼 오늘날 ‘반원자주’ 정책이라 불리는 것들이 사실 원 제국의 유산 위에서 전개되는 등, 고려와 원의 관계는 복잡하고 애매모호했다. 가령 고려 말 공민왕은 왕권 강화와 영토 회복의 정치적 정당성을 쿠빌라이가 고려에 한 오랜 약속인 ‘세조구제’(世祖舊制, 고려의 풍속은 인정하고 몽골의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약속)로부터 찾았다. 고려의 옛 문물을 복원하고 그간 잊혔던 위인들을 재발견하는 작업 역시 당시 원에서 일어나던 ‘중국적’ 뿌리 찾기 움직임과 조응해 이루어졌다.

그렇기에 지은이는 원 제국과의 조우가 한반도에 미친 영향을 긍정 혹은 부정으로만 잘라 말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보다 원 제국의 경험이 고려를 어떻게 변화시켰고 그것이 언제까지 이어졌는지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은이의 주장은, 어떤 식으로든 ‘미 제국’과의 관계 조정을 준비해야 하는 지금 적잖은 시사점을 안긴다. 한반도 분단을 획책하고 군사독재를 옹호한 침략자, 혹은 자유민주주의와 경제번영을 안겨준 구원자라는 이분법을 넘어,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는지 질문할 때가 됐다.

유찬근 대학원생

 

* 유찬근의 역사책 달리기는 달리기가 취미인 대학원생의 역사책 리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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