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드 커넥션 《뉴 센추리 마스터피스 시네마》 앨범.
며칠 동안 지독하게 아팠다. 일정을 미루고 종일 집에 있었다. 아침, 점심, 저녁 약을 챙겨 먹으며 고요하게 일렁이는 공허와 마주했다. 나는 삶이 시시해질 때마다 새 일기장을 사곤 했다. 매일 단 몇 줄이라도 하루를 기록하기로 다짐했지만 길어야 몇 달이었다. 쓰다 만 일기장이 여러 권 있다. 글쓰기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오래도록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이상하게도 글은 쓰면 쓸수록 어려워진다. 쓰고 싶은 게 무엇이었는지조차 희미해질 때면 위대한 작가들의 삶을 떠올린다.
얼마 전 시작한 독서모임에서 서른 살 생일을 앞두고 갑자기 세상을 떠난 시인의 유고 시집을 읽고 있다. 그가 견딘 세상의 권태를 가만히 내다보고 있으면 나와 같은 해에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 선배가 생각난다. 서울 삼청동 어느 호프집에서 나눴던 대화는 사실 시시껄렁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저 환하게 웃던 선배의 천진난만한 얼굴만이 또렷하다. 장례식장에 놓인 선배의 영정 사진도 웃는 모습이었다. 지나간 시간이 낯설다. 내가 사랑했던 것 모두 낯설다.
너드커넥션의 첫 정규 앨범 《뉴 센추리 마스터피스 시네마》(New Century Masterpiece Cinema)는 마음속 깊은 곳 나도 모르게 놓인 어느 날을 되새기게 한다. 흘러간 사람들과 잊힌 약속들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 곁에 머무는 듯하다. “우린 노래가 될 수 있을까?” “함께 지새운 밤을 모두 기억할 수 있을까?”(<우린 노래가 될까>)라고 노래하는 이 앨범은 듣는 이를 과거로 이끌어 오늘을 바로 보게 한다. 내가 잊어버린 건 무엇일까. 툭 터진 주머니에서 쏟아진 것들. 이를테면 호수에 비친 산 그림자. 그리고 잔잔하고 깜깜한 파주의 새벽. 잔기침이 멈추지 않는다.
어느 작은 출판사에서 문인 선배들과 함께 일한 적이 있다. 내부 사정이 복잡한 곳이었다. 선배들과 서로 의지하며 하루하루 버티는 마음으로 일했다. 그때는 참 힘들었던 것 같은데 되돌아보니 아무렇지 않다. 한번은 같이 일했던 소설가 선배한테 가끔은 그때가 그립다고 너스레를 부렸다. 선배는 웃으며 시간이 약이라고 했다.
그 시절 선배는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어서 슬프다며 엉엉 울었다. 회사 사정이 안 좋다는 이유로 대표가 우리 중 한 명이 그만둬야 한다고 말한 날이었다. 너희끼리 상의해서 그만둘 사람을 정하라고 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내린 결정은 다 같이 그만두는 거였다. 각자 자리에서 사직서를 썼다. 대표는 마지막 회의 자리에서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때 나는 이 일이 내 생활인데 생활을 어떻게 내려놓느냐고 물었다. 다르게 살고 싶었다. 지난 일이다.
겨울날 나는 너와 호수를 걸었다. 그다음 겨울날에도 걸었다. 나도 너도 모르는 사이 우리는 변해 있었다. 사랑이 우리를 아프게 하는 순간이 있다. 바라던 모양과 다를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이것도 사랑인지 의심하게 된다. 그럼에도 ‘인간은 왜 사는가?’ 물었을 때 그 답은 사랑밖에 없는 것 같다. 무언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의미가 희미해질 것 같다. 사랑하지 않으면 노래할 이유도 없다. 한 번도 사랑한 적 없는 것들을 사랑하고 싶다.
너드커넥션의 음악은 자꾸만 “그 많은 후회들”과 “그 많은 미움들”(<라이프 댄싱>(Life Dancing))의 밤으로 나를 이끈다. 아픈 시간이 지나면 나는 더 단단해질까. 어디로 가게 될까. 여전히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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