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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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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을 봅니다

등록 2023-01-08 11:22 수정 2023-01-09 02:49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을 봤다. 전작에서 제이크 설리는 인간 해병대원이었지만 판도라 행성을 정찰하기 위해 본래의 몸을 버리고 나비족이 됐다. 그는 행성을 식민지로 만들려는 인간들의 행태에 맞서 싸웠고, 나비족에게 토루크 막토라는 메시아 칭호를 받았다.

영화는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설리는 어느덧 가정을 꾸려 아들 둘에 딸 하나, 양녀 하나를 뒀다. 그런데 영웅 집안인 설리 가족도 바다에 사는 멧카이나 부족 앞에선 꼬리가 얇고 갈퀴가 없는 이방인일 뿐이다. 심지어 나비족과 인간 혼혈이기에 외계인 취급을 받기도 한다.

‘너희’가 가득한 세계

<아바타: 물의 길>은 나비족 대 인간의 구도를 확대해, 겉으로는 같은 나비족일지라도 그들 안의 다름을 논하고 때로 쟁투하는 관계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차별과 배제부터 시작하는 인간의 공동체보다는 더 유연하게 타자를 받아들이려 한다. 그들은 낯선 존재를 향해 “당신을 봅니다”라는 정중한 인사를 한다. 당장 이해 못할 상대라도 우선 환영한다.

나비족의 환대와 겸손은 그들이 판도라 행성의 중심이 아님을 잘 알기에 가질 수 있는 태도다. 지구의 향유고래와 비슷한 툴쿤이라는 생물은 나비족보다 더 지능적인 존재로 그려지며, 판도라 행성의 역사를 기억하는 거대한 나무는 나비족 전체의 기억력과 맞먹는다.

영화는 나와 우리가 아니라 ‘너희’가 가득한 세계를 그려내고 있었다. 몇몇 인물이 아웅다웅하는 사건은 그저 배경에 깔린 다종한 세계를 드러내는 장치처럼 보였다. 툴쿤, 일루, 아네모노이드, 오스트라피드, 메두사, 추락, 아쿨라, 핀서 피시, 마린 밴시, 스라카트, 칼리웨야 등 온갖 생물이 스크린 안을 휘젓고 있었다.

어느새 위키를 뒤져 오마티카야, 멧카이나, 타이랑기, 니아우베, 케쿠난, 후유티카야 등 부족 이름을 외우는 나를 발견했다. 일부는 영화 속에 등장하지 않고 설정자료에서만 존재한다. 새로운 종들을 익히며 나는 “당신을 봅니다”라는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왜 이런 다종한 것에 즐거움을 느꼈을까? 새로운 존재를 향한 모험심이었을까? 방대한 목록이 자극한 수집욕이었을까? 이런 고민을 하며 공원을 산책하다가 갑자기 깨달았다. 나는 이 공원 안에서 들려오는 여러 새소리를 구분하지 못하고 그들의 이름을 모른다. 길가에 핀 풀과 꽃들을 구별할 줄 모른다. 철새들이 국경 없이 이동하는 경로도 모른다. 판도라 행성에 대한 호기심만큼 노력하면 이들 역시 흥미로운 탐구의 대상이 되는데도, 상상 속 세계를 탐험하고 있었다. 주변을 볼 줄 몰랐던 사람이 “나는 당신을 봅니다”라니.

나는 나와 돈을 봅니다

개인적인 모순을 깨닫자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의 연관검색어로 ‘아바타 관련주’가 자동으로 뜨는 현상이나 ‘일본 개봉 기념 돌고래쇼 이벤트’ 같은 사건이 얼마나 모순적인지 다시 생각했다. “나는 당신을 봅니다”는커녕 “나는 오로지 나와 돈을 봅니다”로 고쳐 써야 할 판이다. 판도라 행성의 생물들이 아름다웠다면, 지구 행성의 생물들도 아름답게 여기고 귀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했다.

미하일 바흐친은 <예술과 책임>(1919)에서 “내가 예술에서 체험하고 이해한 모든 것이 삶에서 무위로 남게 하지 않으려면 나는 그것들에 대해 나 자신의 삶으로써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팝콘 먹으며 즐기는 이 영화가 영화관 밖으로 흘러넘치게 할 방법을 고민할 때, 우리는 예술이 준 즐거움에 대해 책임을 시작할 수 있다.

오영진 테크노컬처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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