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두어 달 외국에 나가니 그 전에 얼굴 한번 보자는 거였다. 지금은 제주에 자리를 잡은 그와 잠깐 같이 지낸 적이 있다. 아버지 형제들이 합심해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장어집을 열었을 때다. 그는 강원도 어느 리조트에서 일했는데 비수기엔 일이 적어 이직을 고민하던 차였다. 집안 식구들은 꿈에 부풀어 있었다. 청사진을 가슴에 품고 열심히 일했다. 친구도 서울로 올라와 장어집에 합류했다. 나도 출판사 일이 끝나면 가게에 가서 일을 도왔다.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누군가 장어 손질을 배워야 하는데 처음 생각과 달리 손질이 까다로웠다. 몇십 년 동안 장어 손질을 한 어르신이 기술을 가르쳤지만 그 누구도 재주가 없었다.
친구는 자기 가게를 여는 게 꿈이었다. 학창 시절 요리학원에 다니며 조리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그러다 느닷없이 모델이 되겠다며 모델과에 갔다. 동기들이 크고 작은 패션쇼에 오르는 동안 그는 거울 앞에서 워킹 연습을 거듭했다.
생각해보면 그는 나와 정반대의 사람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키가 크고 운동을 잘해 주변에 친구가 많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전학 온 나는 고집불통인 성격 때문에 친구들과 다툼이 잦았다. 한번은 복도에서 덩치 큰 친구와 주먹질을 했다. 벅찬 상대였다. 실컷 두들겨 맞고 있을 때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때 그의 눈빛이 아직 생생하다.
우리가 이렇게 다른 길을 가게 될 줄은 몰랐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던 우리는 학원을 마치고 매일 붙어 다니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는 자주 미래에 대해 말했다. 얼른 어른이 돼서 꿈을 이루고 싶다고 했다. 스무 살이 넘고서 드문드문 소식을 전하는 사이가 됐지만, 그와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안했다.
그가 장어집을 그만둘 때쯤 이미 가게 사정이 어려웠다. 집안 식구들도 하나둘 손을 뗐다. 아버지도 돈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는 퇴직금으로 제주도에 간다고 했다. 함께 지냈던 집 앞 호프집에서 한잔했다. 나는 맥주잔을 앞에 두고 그에게 미안한 마음을 건넸다. 그는 참 꿈이 많았다. 꿈을 향해 주저함 없이 덤벼들었다. 제주도에서 돈을 모아 대학 후배와 의류 쇼핑몰을 열겠다고 했다. 그 후배가 벌써 동대문에서 일을 시작했다며 사업계획을 들려줬다.
그가 제주도에서 일할 때 몇 번 제주도에 갔다. 그때마다 시간이 맞지 않아 그와 만날 수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연락해왔을 때 나는 전남 해남에 있었다. 모처럼 마음먹은 겨울 여행이었지만 여행 내내 폭설로 길이 얼어붙어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새로운 꿈을 찾아 떠나는 그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다. 권나무의 세 번째 정규 음반 《새로운 날》을 듣고 있으면 우리의 지난날이 떠오른다. “특히 이 밤 아무도 없는 강가를”(<자전거를 타면 너무 좋아>) 함께 달리던 때가, 대시보드에 두 발을 올리고 미래를 가늠해보던 한 겨울날이 떠오른다. 어느새 늙어버린 저녁에 실패한 날들은 덮어두고, 우리는 가만히 날이 밝길 기다렸다. 그가 말했다. 다음에는 꼭 보자고.
새해에는 좀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후회들로 길을 잃어도 괜찮아 모두 다 사랑을 찾아갈 거야”(<사랑을 찾아갈 거야>) 하고 다정한 마음으로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최지인 시인
*너의 노래, 나의 자랑: 시를 통해 노래에 대한 사랑을 피력해온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최지인 시인의 노래 이야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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