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엄마가 옥수숫대에서 마른 옥수수를 몇 가마니 따가지고 온 뒤, 옥수수 먹기 2차전에 돌입했다. 엄마는 며칠을 두고 동네 할머니들과 함께 옥수수알을 분리했다. 과도, 송곳, 드라이버 등 뾰족한 것은 다 동원해서 단단하게 붙어 있는 알갱이를 알알이 떼어냈다. 할머니들에겐 품값으로 짜장면도 사주고 옥수수도 나눠줬단다. 어느 집은 캠핑 가서 불 땐다고 옥수수 속대를 다 가져갔다고 한다. 한동안 엄마 집은 은박돗자리 위에 완전 건조를 위해 널어놓은 옥수수알로 비집고 앉을 자리도 없었다.
옥수수가 마르자 엄마는 강냉이를 튀겨 왔다. 시간 맞을 때 차로 실어다준다고 해도 굳이 경기도 성남 모란시장 장날을 기다려, 끌차에 옥수수를 싣고 지하철을 타고 다녀오셨다. 2㎏ 한 방 튀기는 데 공전이 6천원이란다. 우리 옥수수라서가 아니고 특별나게 구수하고 맛있긴 하더라. 다음 장날엔 옥수수차를 볶아 오셨다. 황금빛으로 잘 볶은 옥수수알 한 주먹 넣고 물을 끓이니 또 그렇게 구수하고 훈훈할 수 없다.
옥수수로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보기로 마음먹은 엄마는, 이제 옥수수 거피를 해주는 방앗간을 찾아내라고 나를 볼 때마다 들들 볶았다. 모란시장에 있는 예닐곱 개 방앗간에 모두 전화해봤는데, 기름 짜거나 고추 빻거나 떡 만드는 곳밖에 없었다. 인터넷 검색으로 겨우 경기도 화성의 곡식 방앗간을 찾았다.
차로 1시간30분을 달려 화성 비봉 근처 조용한 시골 마을에 도착했다. 문도 따로 없는 방앗간 안쪽에 거대한 통이 달린 낡은 기계 여러 대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자리잡고 있었다. 돌을 골라주는 석발기, 껍질을 벗겨주는 거피기가 쌀, 옥수수, 깨 등 낱알 크기별로 있는 듯했다. 왜 일반 방앗간에서 거피를 안 해주나 했더니, 기계 자체가 완전 다른 거였다.
젊은 사장님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옥수수농사 지으셨어요? 800평이요? 많이 하셨네. 요즘은 우리 같은 방앗간이 다 없어졌어요. 강원도에서도 이리로 와요.” 옥수수 껍질을 벗기고 쪼개서 옥수수쌀을 만들 수도 있지만, 우리는 껍질만 벗기기로 했다. 사장님은 옥수수 두 자루를 쏟아 넣고 기계를 작동시켰다. 기계는 옥수수를 쓱 빨아들여 10여 분 우르르찹찹 소리를 내며 돌더니 옥수수 껍질을 소복이 쏟아놓았다. 통 속으로 빨려 들어갔던 옥수수가 쏟아져 나왔다. 1차 거피한 옥수수알을 다시 기계에 넣고 한 번 더 돌렸다. 20분 정도 걸려 매끈하게 껍질 벗은 옥수수 한 자루 반을 받았다. “내년에도 또 올게요” 하니, “아버지가 하시던 건데 편찮으셔서 제가 틈틈이 하고 있어요. 내년엔 어떻게 될지 몰라요” 하신다. 요즘엔 자기가 먹으려고 소규모로 곡식 농사를 하는 사람이 별로 없고, 도정공장도 대규모화돼 곡식 방앗간을 찾는 사람이 드물단다. 그래도 우리처럼 멀리서 발길 하는 사람이 있어 계속할지 말지 고민되는 모양이었다.
거피한 옥수수는 불려서 밥에 넣어 먹으니 쫄깃쫄깃했다. 엄마가 옥수수범벅도 해줬는데, 역시나 들척지근한 것이 내가 좋아하는 맛은 아니었다. 엄마에게 나눠받은 거피 옥수수는 진부 우리 밭 아랫집 아주머니와 막국숫집 사장님에게 한 봉지씩 드렸다. 귀한 거 받았다고 좋아들 하셨다.
글·사진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농사꾼들: 농사를 크게 작게 지으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박기완 경남 밀양의 농부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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