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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김치냉장고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전통 생활양식과 과학기술의 접목에 주목한 <과학기술과 한국인의 일상>
등록 2022-11-17 13:36 수정 2022-11-18 08:43

노트북 한구석에 ‘자투리’란 폴더가 있다. 글을 쓰다 전체적인 흐름과 영 어울리지 않는, 하지만 지우기는 아까운 문단이 있으면 따로 떼어 저장한다. 재밌는 점은 얼핏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자투리’ 문단들이 모여 완전히 새로운, 하지만 그럴싸한 글 하나가 만들어질 때가 있다는 것이다.

김태호의 <과학기술과 한국인의 일상>을 읽으며 이 폴더가 떠올랐다. 한글타자기와 김치냉장고, 온수온돌과 경운기, 심지어는 표준영정과 기능올림픽까지! 책에서 다루는 주제들은 코끼리와 바다코끼리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독특한 시각으로 한국 과학기술사를 연구해온 지은이는 이 ‘자투리’ 과학기술들에 공통점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전통과 공명해가며 오늘날 한국인의 일상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가령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 불리는 한글과 과학기술의 만남은 어땠을까? 생각만큼 녹록지는 않았다. 해방 이후인 1948년에야 제대로 된 한글타자기가 등장했으니 말이다. 개발자는 공병우, 한국 최초의 개인 안과병원 ‘공안과’의 설립자이자 원장이었다. ‘공병우 타자기’는 군과 정부를 고객으로 확보하며 한글타자기 시장을 개척했으나, 1960년대 이후 표준의 자리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세벌식 타자기가 찍어내는 글자 모양이 모아쓰는 글자라는 한글 고유의 정체성과 어울리지 않았던 탓이다.

급기야 1969년 정부가 두벌식을 기본으로 한 네벌식 자판을 표준으로 제정하며 공병우는 타자기 시장에서 배제됐다. 그러나 공병우는 세벌식 타자기에 대한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고, 한글 단체를 매개로 ‘재야’와 연대하며 투쟁을 이어갔다. 공병우가 민주화운동가로 변신함에 따라, 그의 자판과 글꼴은 저항문화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가장 먼저 ‘공병우 타자기’를 받아들인 집단이 군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밖에.

냉장고의 ‘한국 적응기’도 재미있다. 한국인의 식생활엔 김치나 장류, 젓갈처럼 오래 보존할 수 있도록 염장 또는 발효 처리한 식품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 만큼 냉장고를 처음 본 한국인이 거기에 무얼 넣어야 할지 쉽게 떠올리지 못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상황이 달라진 건 20세기 중반, 아파트라는 새로운 주거 형태가 등장하면서다. 아파트 거주자는 겨우내 김장김치를 서늘하게 보관할 공간을 원했고, 그렇게 ‘한국형’ 냉장고인 김치냉장고가 탄생했다.

과학기술이 한국 전통에 맞게 ‘적응한’ 사례뿐 아니라 한국 전통이 과학기술의 힘으로 ‘현대화한’ 사례도 있다. 온돌이 그렇다. 해방 직후까지 널리 쓰이던 전통 온돌은 연탄과 시멘트, 정부의 산림녹화 정책에 힘입어 연탄 아궁이 온돌로 변화했다. 하지만 연탄 아궁이 온돌은 연탄가스 중독이라는 고질적 문제가 있었고, 결국 보일러 기술의 발전과 함께 온수온돌에 자리를 내줬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 온수온돌의 기술적 기원은 20세기 초 국외에서 개발된 ‘패널 난방’이라는 사실이다. 그나마도 아궁이와 취사기능이 사라지는 등 전통 온돌과는 다른 기술이라고 봐도 될 정도의 단절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뜨끈한 방바닥에 등을 지지고 싶다는 한국인의 오랜 염원은 이어졌다. 일찍이 패널 난방이 도입된 서구에선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었다. 기술과 문화, 욕망이 일상의 무대에서 뒤엉켜온 이런 과정이야말로 지은이가 ‘자투리’ 과학기술사로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유찬근 대학원생

*유찬근의 역사책 달리기: 달리기가 취미인 대학원생의 역사책 리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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