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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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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잔주름 느끼며 가장 먼 거리를 [트랜스 제주 도전기]

실거리 53㎞에 누적고도 2710m를 달리는 ‘트랜스 제주’
‘완주 재킷’에 홀려 13시간 푸른 리본 같은 길을 뛰다
등록 2022-10-16 17:27 수정 2022-12-09 17:01
‘2022 트랜스 제주 국제트레일러닝대회’가 열린 2022년 10월8일 오전 제주 한라산에 빗줄기 속 햇발이 퍼지며 무지개가 떴다.

‘2022 트랜스 제주 국제트레일러닝대회’가 열린 2022년 10월8일 오전 제주 한라산에 빗줄기 속 햇발이 퍼지며 무지개가 떴다.

폭염과 큰비가 교차하며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어느 날, 내가 속한 달리기 모임에서 가장 젊은 회원인 A가 올가을 ‘트랜스 제주 트레일러닝대회’(2022년 10월8일)에 나가보자고 했다. 나를 포함해 40~50대 나머지 회원 셋도 마음이 동했다. A는 제주 남동쪽 표선면 가시리 일대에서 열리는 10㎞ 코스를 입에 올렸으나, 다른 이들은 50㎞ 코스를 제안했다. 서귀포월드컵경기장에서 출발해 한라산 윗세오름(높이 1740m)까지 올라간 뒤 내려오는 길이었다. 누적 상승고도는 2170m에 이르렀다. “10㎞는 너무 짧고, 50㎞는 어차피 다 못 뛸 테니 도중에 내려와서 술 먹으면 되지!” 술 좋아하는 B가 호기롭게 말했다. 호기심이 많고 낙천적이기도 한 C도 말을 보탰다. “달려보다가 정 안 되면 내려오지, 뭐.”

이주현 <한겨레> 기자가 제주 한라산 영실탐방로를 달리다 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 있다.

이주현 <한겨레> 기자가 제주 한라산 영실탐방로를 달리다 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 있다.

한라산 오르며 50㎞ 달릴 수 있을까

나는 좀 두려웠다. 2016년 가을의 악몽 때문이었다. 당시 사흘 동안 100㎞를 달리는 제주 국제트레일러닝대회에 참가해 이틀 동안 60㎞를 달렸다. 이전에 달리기를 즐겨 했지만, 마라톤과 트레일러닝의 차이조차 모르던 터였다. 준비가 미흡한 채 출전했다가 굴욕을 겪었다.

마라톤이 평탄하게 잘 닦인 ‘로드’를 뛰는 것이라면 트레일러닝은 ‘오프로드’를 달리는 운동이다. 거친 돌밭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균형감각이 매우 중요하다. 마라톤은 골인 지점까지 계속 달리는 게 원칙(물론 중간에 걸어도 실격되진 않지만)인데, 트레일러닝은 걷기와 뛰기를 병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장비도 다르다. 마라톤은 가볍고 날렵한 러닝화만 있으면 되지만, 트레일러닝은 돌부리에 차이며 험한 길을 달려야 하는 만큼 앞코와 밑바닥이 두꺼운 신발을 신어야 한다.

마라톤은 응급상황에서 ‘회수’할 차량이 늘 대기하고 있지만, 산길에선 즉시구조가 어렵다. 트레일러너들은 갑자기 체력이 고갈되지 않게 열량이 높은 행동식과 물을 필수 지참하고, 바람막이 같은 여분의 옷과 모자, 장갑, 알루미늄 비상담요(서바이벌 블랭킷) 등을 챙겨 급변하는 날씨에 대비해야 한다. 트레일러닝에 무지했던 나는 2016년 가을 가벼운 달리기 복장에 러닝화를 신고 갔다가 발바닥 전체에 물집이 잡혔고, 초반에 무리한 페이스로 무릎과 허벅지에 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달리기의 현인(賢人) 조지 쉬언은 “홀로 있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없다”며 달릴 때의 ‘고독’을 찬미했지만(<달리기와 존재하기-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 경험으로서의 달리기>) 나는 달리기 동료를 갈구하는 속인(俗人)에 가깝다. ‘다들 제주도에 가서 달린다는데, 음… 그럼 나도 가야지, 뭐.’

한라산 영실탐방로를 참가자들이 달리고 있다.

한라산 영실탐방로를 참가자들이 달리고 있다.

느슨했던 달리기 모임의 열정적인 기록들

이렇게 우리 넷은 ‘50㎞’라는 엄청난 과제에 겁 없이 도전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될 대로 되라지’에 가장 앞장섰던 B가 ‘완주 재킷’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모든 출전자에게 나눠주는 티셔츠 외에, 50㎞(실제 거리 53㎞)·100㎞(실제 거리 103㎞) 코스 완주자에겐 꽤 괜찮은 브랜드의 아웃도어 재킷이 기념품으로 지급된다.

B는 완주 재킷을 반드시 받고야 말겠다는 ‘견물생심 투지’를 불사르며 훈련에 몰입했다. 평소 여유로운 오찬을 즐겼던 그는 점심시간에 남산을 달렸고, 틈나면 북한산 둘레길을 뛰었다. 느슨했던 달리기 모임 단체대화방에 B의 열정적인 훈련 기록이 올라오면서 저마다 뜨끔했다. 느긋했던 A도 인왕산과 남산을 달린 기록을 올렸고, C는 20㎞ 넘는 거리에 고도가 7천m 넘는 연습일지를 게시했다. 나도 부랴부랴 훈련에 돌입했다. 우리 집 뒷산이 트레일러닝 연습 최적지임을 이번에 비로소 알았다. 이른 아침 산길을 혼자 달린 것은 내 인생 처음이었다.

우리 달리기 모임은 아마추어다운 천진함 그 자체라, 다들 본격적인 훈련을 받아본 경험이 없었다. 우리를 이끌어주실 분은 오로지 ‘유쌤’뿐. 각종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 보면서 속성과외를 시작했다. 대한산악연맹의 ‘나도 한다 트레일러닝’을 보면서 기초를 다졌고 ‘초보자를 위한 트랜스 제주 50㎞ 완주 꿀팁’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특히 트레일러닝을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가능한 가장 먼 거리를 가는 운동”이라고 정의하는 유튜버 ‘체체체’의 말에서 영감을 얻었다. 나는 운전을 두려워하며, 이 사실을 수치로 여겨왔다. 하지만 기계의 힘이 아니라 내 힘으로 가는 거라면? 그래, 자동차 대신 두 다리로 가는 거다!

드디어 10월8일 새벽이 밝았다. 50㎞, 100㎞ 대회가 시작되는 서귀포월드컵경기장에 선수들이 몰려들었다. 이번 대회의 참가자 수는 나처럼 50㎞를 뛰는 사람은 953명, 100㎞는 216명, 10㎞는 462명에 이른다. 과연 나는 몇 등으로 들어올 수 있을까? 아니 완주할 수 있을까?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인 흥분이 차올랐다.

서귀포 시내에서 출발해 영실~돈내코~한라산둘레길을 돌아오는 50㎞ 코스는 아침 6시에 출발해 14시간30분(저녁 8시30분) 안에 들어와야 한다. 음료수와 간식이 제공되는 체크포인트(CP)가 각각 8㎞, 21㎞, 36㎞, 43㎞ 지점에 마련됐다. 각 CP에 컷오프 시간이 있는데 그것을 어기면 중도 탈락한다. 아직 어둑어둑한 시간, 고근산 언저리를 도는 CP1까지 1시간20분 만에 수월하게 도착했다. 비가 내리며 땀과 열기를 식혔다. 길이 푸른 리본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오르막길에선 속도를 늦추고 내리막길과 평지에선 달린다. 부상을 막으려면 신중해져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속도를 내면 된다. 트레일러닝은 지구의 잔주름을 온몸으로 느끼는 방법이다.

선행의 결과가 완주 실패라고 한다면

해발고도 1280m, 영실탐방로에 있는 CP2부터 본격적으로 오르막이 시작됐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병풍바위까지 오르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흩뿌리는 빗줄기 사이로 햇살이 비치며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날이 궂어 바다를 볼 수 없던 아쉬움은 선명한 무지개에 금세 사그라졌다. 윗세오름 근처 나무데크길은 뛰지 않으면 섭섭한 곳. “여기선 반드시 뛰어야 해!” 일반 등산객과 별다를 것 없이 계속 걸어 오르던 나와 A는 모처럼 펄쩍펄쩍 뛰며 체공 시간을 늘렸다. 하지만 쉼 없는 빗줄기와 강한 바람이 문제였다. 남벽분기점 가는 길, 행사 관계자들이 “저체온증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며 서바이벌 블랭킷을 준비하라고 외쳤다. 비구름에 가려 남벽은 아예 보이지 않았고, 우리는 바로 돈내코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전화 좀 대신 받아주세요.” 하산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냘픈 목소리가 들렸다. 흠뻑 비에 젖은 젊은 여성 D가 파랗게 질려 덜덜 떨고 있었다. 비상담요도 찢어져 비닐을 썼고 일행과도 헤어진 상태였다. 전화기 너머 구조대원은 우리에게 그를 잠시 돌봐달라고 했다. 마침 예비로 챙겼던 윗옷을 입혀주고 알루미늄 담요를 빌려줬다. D는 저체온증은 모면했지만 무릎 통증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의 손을 붙잡고 부축하며 한발 한발 미끄러운 돈내코 너덜길을 내려갔다. “저 때문에 완주 못하시면 어떻게 해요?” 울상을 짓는 D에게 A는 해맑게 답했다. “우린 완주 안 해도 돼요. 괜찮아요, 하하하.”

사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CP3까지 거리 계산을 잘 못했던 나는 구조대원에게 그를 인계한 뒤 서두르면 컷오프 시간을 충분히 맞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려운 이를 도와준 것이 기록이 좋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명분은 될 수 있지만, 그 때문에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엄청 속상할 것 같았다.

1시간 남짓 1㎞쯤 내려왔을 때 구조대원을 만났다. 가련한 조난자에게 입고 있던 옷과 모자를 다 벗어주는 구조대원의 믿음직한 모습을 뒤로하고, 우리는 속도를 냈다. CP3에선 라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친 듯 달려 컷오프 10분 전인, 3시20분에 아슬아슬하게 보급장소에 도착했다. 컷오프 규칙대로라면 우리는 3시30분에 CP3을 떠나야 했다. 미처 붇지도 않은 라면을 급히 입속에 밀어넣고 다시 달렸다. ‘저승사자’라고 불리는 ‘스위퍼’(봉사자)들에게 붙잡히지 않도록 도망쳐야 했다.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나자 종소리처럼 웃음이 터져나왔다. A는 ‘우리가 D를 도운 덕택에 힘을 비축했고 안전하게 내려올 수도 있었다’고 몇 번씩 말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지만 자신이 없었다. 선행의 결과가 완주 실패라고 해도 과연 난 실망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을까?

나머지 구간은 미악산 오름 근처 험한 구간을 제외하면 쾌적한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하지만 야맹증이 심한 나는 어두운 산길이 걱정됐고, 잘 안 보인다는 이유를 들어 A에게 먼저 가겠다고 말하곤 발길을 재촉했다.

한 참가자가 한라산 인근 어둠이 덮인 오솔길을 헤드랜턴을 켠 채 달리고 있다.

한 참가자가 한라산 인근 어둠이 덮인 오솔길을 헤드랜턴을 켠 채 달리고 있다.

42번째 나이 많은 여성, 953명 중 771번째로 도착

옅은 어둠이 깔린 저녁 6시53분18초. 드디어 도착했다. 50㎞ 참가자 953명 중 771번째였다. 9시간대에 도착한 B는 마지막 2㎞를 함께 달려줬고, 10시간대에 완주한 C는 피니싱 라인에 대기하고 있다가 사진을 찍어줬다. 그럼, 뒤에 남았던 A는? 세상에나, 그는 먼저 도착해 있었다. 12시간47분21초, 나보다 6분이나 빨랐다. 내가 길에 묶어둔 대회 리본을 보지 못해 막판에 헤매던 시간에 그는 제대로 달려온 것이었다. 이를 두고 ‘사필귀정’이라고 하는가. 아무튼 반전이 있어서 세상은 신비롭다.

선수 등록 때 명단을 훑어보니 나는 50㎞를 달리는 여성 중에서 나이가 42번째로 많았다. 1960년생이 가장 고령자였다. 과연 나는 몇 살까지 달릴 수 있을까? 이제 재미를 알게 된 ‘장거리 러너’로서의 정체성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조지 쉬언은 이런 물음의 답을 이미 준비해놓았다. 그는 ‘신나게 뛰어놀아야 한다’고 했다. “나이를 더 먹고 싶지 않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몸과,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감정과 함께 어우러져 신나게 놀아야만 한다. 그럴 수 있을 때, 우리는 매 순간 모든 일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찾는 특별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 (…) 달리기를 통해 나는 제아무리 나이가 든 사람도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떤 위치에 있든 주의를 세심하게 기울여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삶을 즐기는 사람을 이기는 방법은 없다.”

P.S. 대회 이튿날 D로부터 문자가 왔다. 덕분에 무사히 하산했다는 감사의 인사였다. 내년에 다시 참가할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절대로 선수로는 참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CP에서 물과 음식을 나눠드리는 역할은 꼭 해보고 싶어요.” 내년에 우리 또 만날 수 있을까?

글 이주현 <한겨레> 기자 edigna@hani.co.kr, 사진 푸르나 작가 redphoto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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