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있는 것들이 너무 벅차서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시간을 허비하곤 한다. 어제가 꿈만 같고 오늘과 내일이 아득하다.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있다. 대략 8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한다. 오랜 시간 꿋꿋이 자리를 지킨 이 나무를 바라보면 생활의 일들이 덧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세계 곳곳에 재난 이미지가 떠돈다. 기후위기를 비롯해 기나긴 팬데믹과 전쟁 등이 눈앞에 있다. 나는 자주 눈감는다. 외면하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비겁함을 무릅쓴다.
존재 의미를 깊이 고민하는 한때다. 시가 무엇인지 묻다보면 언제나 깜깜해진다. 자라면서 많은 재난을 목격했다. 다섯 살 때 성수대교가, 여섯 살 때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내렸다. 여덟 살 때는 나라가 부도났다. 부모님은 열심히 일했던 것 같다. 함께 있던 기억보다 혼자 집을 지키던 기억이 많기 때문이다. 급기야 나는 식당을 하던 외할머니에게 맡겨졌다. 일련의 사건이 내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모른다. 말을 더듬었던 적도 있다. 학교에서 소리 내어 책 읽을 때면 아이들이 킥킥대며 웃었다. 그 시절 나는 무얼 하며 시간을 보냈을까. 나를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전유동의 첫 정규앨범 《관찰자로서의 숲》은 ‘나’라는 숲에 관한 기록이다. 올빼미가 길을 안내하는 이 숲은 참새가 지저귀고 억새가 바람에 흔들린다.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 이곳에 있다. “조금 더 나는 나로 살고 싶어”(<이끼> https://youtu.be/749HZ_m9PGg) 하고 노래하는 전유동은 ‘나’를 들여다보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듣는 이에게 용기 내어 ‘나’와 마주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 숲에는 찬란히 빛나는 것과 칠흑같이 어두운 것이 공존한다.
예술을 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어떤 사람이 예술을 하려는 걸까. 많은 사람이 예술가를 꿈꾼다. 그에 발맞춰 다양한 수업이 열린다. 모두 이 세상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그것을 균열이라고 부른다. 모두가 일상에서 균열을 발견하고 있다. 균열들이 나를 심연으로 이끈다. 더는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바뀌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였다. 세상은 계속해서 나를 변화시켰다. 그 변화 속에 내가 진실한 사람이길 바랄 뿐이다. 그것을 나라고 부를 수 있다면 좋겠다.
전유동은 “너무 가까이 있어서 돌보지 못하는 우리의 감정과 자연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음악가다. 그는 숲을 이루는 우리의 현실을 사랑한다. 현실을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듣는 이에게 숲이 되어준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되풀이되는 세상을 결코 버리지 않는다. 그가 무대에서 노래할 때 눈물을 흘리는 걸 본 적이 있다. 한 사람이 마주하는 감정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기쁨과 슬픔을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것처럼. 뒤섞인 감정을 노래하는 그를 보며 그가 그토록 바라는 ‘진정성’의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졌다.
예술이 현실을 마주할 때 현실의 것이 예술을 뛰어넘을 때 그래서 타협하고 말았을 때 비루함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부른 노래보다 부를 노래가 더 많다고 믿는다. 언젠가 이 어둠이 익숙해질 거라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순간이 올 거라고.
최지인 시인
*전유동 <이끼>
https://youtu.be/749HZ_m9PGg
*시를 통해 노래에 대한 사랑을 피력해온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최지인 시인의 노래 이야기. 3주마다 연재.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속보] 윤석열 지지자 17명 현장 체포…서부지법 담 넘어 난입
[속보] 윤석열 구속영장 심사 저녁 6시50분 종료…4시간50분 진행
전광훈 “탄핵 반대 집회에 사람 데려오면 1인당 5만원 주겠다”
윤석열, 법정 중앙에 앉아…구속영장 심사 진행 중
윤석열, 구속영장 심사서 40분 발언…3시간 공방, 휴정 뒤 재개
“우리 엄마 해줘서 고마워, 매일 올게”…눈물의 제주항공 추모식
윤석열 구속되면 수용복 입고 ‘머그샷’
“사필귀정, 윤석열 구속 의심치 않아”…광화문에 응원봉 15만개 [영상]
경호처 ‘윤석열, 하늘이 보낸 대통령’ 원곡자 “정말 당혹”
지지자 몰려 ‘아수라장’…“고생한다고 대통령이 손 흔들어주셔”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