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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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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왜 지어요? 대답은 내년에

여름을 몽땅 갖다바쳐 160만원 수익, 당장 때려치우는 게 합리적인데 또 내년 농사 구상
등록 2022-09-22 03:07 수정 2022-09-22 08:18
언니 찬스로 전국으로 팔려나간 옥수수.

언니 찬스로 전국으로 팔려나간 옥수수.

옥수수 수확을 마쳤다. 옥수수 팔아 160만원을 벌었다. 이건 매출이고, 택배비·포장재·씨앗·비료·농기구 등 들어간 비용을 제하면… ㅋㅋ 계산은 생략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해들은 모친이 한마디로 정리해줬다. “뭐 번 거겠어.”

멋모르고 800평이나 옥수수를 심어버렸던 우리 부부는 올해 농사로 많은 걸 깨달았다. 첫째, 쉬운 농사는 없다는 것. 둘째, 옥수수는 키우는 것보다 파는 게 중요하다는 것. 여름휴가를 옥수수 따는 데 몽땅 바쳤건만 판로가 막혀 막막해하던 차, 언니가 지원군이 됐다. 에스엔에스(SNS)로 지인들에게 옥수수 살 사람을 모집해 순식간에 생산량을 넘어가는 주문을 받아줬다. 15개에 1만원씩 받아 청과집에 팔 때보다 비싸게 팔 수 있었다. 포토샵 좀 만지는 언니가 내년에는 미리 전단도 만들어주기로 했다. (지난번 글을 읽고 어느 독자분이 출판사 대표번호로 전화해 옥수수를 사주겠다고 하셨는데, 안타깝게도 물량이 모자라 팔 수 없었다.)

주문받은 옥수수의 마지막 택배를 부치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올해 농사에 너무 진을 뺐던 우리는 내년에는 먹을 만큼만 심고, 남는 땅에는 풀이나 키우자고 다짐했다. 생업에도 꽤나 지장이 있었기 때문에 160만원이 순이익이었다 쳐도 당장 때려치우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다. 농자재를 사러 가는 농협경제사무소 직원이 우리에게 했던 말이 있다. “농사 왜 지어요?” 눈앞의 일을 해치우고 나니 ‘우리는 왜 농사를 짓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다가왔다.

추석을 앞두고 마을에 신세 진 분들께 조그만 선물을 돌렸다. 옥수수를 보관할 수 있게 저온창고를 빌려준 K반장 댁에 들렀다. 앞산 꼭대기까지 벌초를 다녀왔다며 낮부터 한잔하고 있었다. 붙들려서 술잔을 받아놓고 자리에 계신 분들과 올해 농사 이야기를 했다. K반장 옆집에 사시는 어르신은 직장을 다니며 부업으로 400평가량 옥수수를 심는데, 매년 옥수수로 300만원 정도 번다고 한다. 생산성으로 치면 우리의 4배! 이날의 대화에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팁을 몇 가지 얻었다.

어르신은 옥수수를 모두 직판으로 파는데, 전국 각지로 나간다고 한다. 올해는 한 접(100개)에 7만원과 택배비 1만원을 받으셨단다. 어르신 말씀이 진부 옥수수는 맛있는 거로 유명해서 매년 주문이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같은 강원도라도 해발이 낮은 강릉, 영월, 정선 같은 데 거는 이 맛이 안 나요. 고랭지 강냉이라야 부드럽고 맛있어요.” 그리고 옥수수 맛의 비결은 제초제를 치지 않는 것이란다. 일일이 풀을 매준다. “강냉이가 정강이만큼 자랄 때까지 두 번만 매주면 돼요.” 옥수수가 똑같이 자라지 않기 때문에 심고 나서 100일쯤 지났을 때 일주일 동안 매일 딱 맞게 여문 옥수수를 수확하면 너무 쇠어서 버리는 것도, 덜 여물어 버리는 것도 없이 다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차 안에서 배운 바를 복기하며 “그럼 내년에는 옥수수 심는 시기를 나누지 말고 한꺼번에 심고, 미리 주문을 받아둔 다음, 일주일간 상주해 매일 따서 그날그날 택배를 보내면 되겠다”는 작전을 짰다. 내년엔 풀이나 키우자던 다짐은 이미 잊었다. ‘해발 500m, 반딧불이 노니는 청정 자연이 키운 옥수수!’ 전단 문구가 절로 떠오른다. 농사를 왜 짓는가에 대한 답은 내년 농사 끝나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년 여름휴가도 옥수수 수확인가.

글·사진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농사꾼들: 주말농장을 크게 작게 하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전종휘 <한겨레> 기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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