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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외계와의 교신’ 준비 완료

인천 계양 편- 공기 중 전기를 토양으로 보내 식물을 더 빨리 성장시킨다는 일렉트로컬처, 구리선을 꽂으니 전기로 연결된 기분
등록 2024-07-19 22:46 수정 2024-07-24 11:27
일렉트로컬처 안테나를 만들어 밭으로 가져와 꽂았다.

일렉트로컬처 안테나를 만들어 밭으로 가져와 꽂았다.


평소 소셜미디어에서 전세계 사람들의 밭 사진에 ‘하트’를 열심히 누르다보니 이제는 알고리즘이 알아서 내가 좋아할 만한 농사 숏폼(1분 이내의 짧은 영상)을 띄워준다. 알고리즘이 이끄는 영상을 통해 한두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만큼 간격이 띄워진 틀밭 모퉁이에 아치를 세우면 보기에도 예쁠뿐더러 호박을 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람 키만큼 자란 호밀 위를 여러 사람이 데굴데굴 굴러 눕힌 다음 비닐 덮개를 씌워 말린 뒤 작물을 심으면 힘들게 풀을 베어 덮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는 사실과 섞어서 기르면 좋은 작물도 알게 됐다. 당장 작은 밭에서는 따라 하기 어렵지만 ‘미래의 나는 지금보다 더 넓은 텃밭을 갖게 될 테니까’ 하는 생각으로 ‘킵’(저장)해둔다.

그런데 최근 1년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땅에 피뢰침 같은 꼬챙이를 꽂는 영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구리를 땅에 꽂으면 전기에너지가 식물을 자극해준다나. 처음에는 그저 재미있다가, 언젠가는 작물 사이사이마다 피뢰침을 촘촘하게 꽂아두고 전기까지 흘려보내며 진지하게 실천하는 사람들을 보고 황당했다가, 이내 궁금해졌다. 정말 효과가 있을까?

그 농법의 이름은 ‘일렉트로컬처’(Electroculture). 전기와 ‘원예’(Horticulture)를 합성한 말이니 ‘전기 농사’ 정도로 부를 수 있겠다. 공기 중의 전기를 모아 토양으로 보내면 전류가 토양과 수분, 미생물 활동에 영향을 끼쳐 식물을 더 빨리 성장시킨다는 원리다. 한동안 소셜미디어 ‘틱톡’을 통해 유행해 전세계 가드너들의 유희처럼 번졌지만, 이미 1700년대 중반 유럽의 귀족 과학자들 사이에 퍼져 <식물전기학>(피에르 베르톨롱 드 생라자르 지음)이라는 책까지 나왔다고 하니 나름대로 역사도 있다. 한때(1918년)는 영국 농무부가 나서서 조사했지만 실효성을 크게 입증하지 못하고 사라졌던 방식을 세계의 정원 애호가들이 부활시킨 것이다.

그사이 과학기술이 많이 발전해 식물 세포도 전기신호를 갖고 있으며 그것을 활용한다는 것이 입증됐고, 일본에서는 느타리버섯을 심은 나무 사이에 인공 번개를 가했더니 성장이 촉진됐다는 연구도 있었다. 농사에 약간의 전기를 활용하는 게 정말로 식물에 도움을 줄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어딘가 유사과학처럼 느껴져 여전히 일렉트로컬처의 효험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많다. 하지만 호기심을 부르는 이야기가 풍부한데다 만드는 재료도 방법도 간단하다. 구리선을 지지대에 칭칭 감고 꼭대기 부분에는 꼭 외계와 교신할 것 같은 피보나치 나선을 만든다. 나선의 방향이 지구의 자기장과 같은 북쪽을 향하면 효과가 더 좋다고 한다.(유튜브에서 검색하면 일렉트로컬처에 관한 다양한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구리선은 크게 비싸지 않은데다 쉽게 구할 수 있고, 토르의 지팡이같이 생긴 피뢰침(‘일렉트로컬처 안테나’라 부른다)을 밭에 꽂아두면 아기자기한 멋도 있어 보이니 일단 몇 개 만들어보기로 한다. 어쩐지 나는 계정도 갖지 않은 ‘틱톡’처럼 내 농사가 흘러가는 것 같지만, 긴 장마 예보가 있기 전 밭에도 꽂고 주말에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에 간 김에 농사짓는 친구들 손에 하나씩 쥐여줬다. 그러고 나니 우리가 보이지 않는 전기로 연결된 기분이 들어 즐거워졌다. 오늘부터 끝을 알 수 없는 비가 내린다. 비가 오면 번개가 칠 확률이 더 높으니 비와 함께 번개를 기다린다면 긴 장마가 조금은 덜 지루해지겠지.

글·사진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농사꾼들: 농사를 크게 작게 지으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지역이 다른 네 명의 필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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