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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름다운 존재의 말을 듣기 위해서

동물병원을 찾아온 동물과 인간들의 이야기 <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
등록 2022-07-23 17:14 수정 2022-07-24 11:42

꽃비는 작은 강아지였다. 보호자가 갑작스럽게 쓰러져 병원 수의사가 잠깐 데리고 있었다. 보호자는 그길로 세상을 떠나버리고 만다. 그렇게 꽃비는 홀로 남는다. 수의사는 “엄마(보호자)가 꽃비를 얼마나 사랑했으면 꽃비라는 이름을 지었을까” 곰곰이 생각한다. 수의사 허은주의 <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수오서재 펴냄)는 동물병원을 찾아온 동물과 동물을 데리고 온 인간들의 이야기다. 물론 사랑받은 동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3~4개월 된 불도그는 귀가 시뻘겋게 퉁퉁 부었다. 인간이 원하는 모습으로 귓바퀴 일부를 자르는 ‘단이’ 수술을 해서다. 다른 개농장 주인이 권하는 방법대로 귀를 잘랐다고 한다. 2개월 된 강아지는 통증을 못 느낀다는 조언을 듣고 마취도 하지 않고.

저자는 사람과 만나는 일을 하다가 수의사가 됐다. “수의사는 병원에서 동물과 일해 말할 필요가 없어”라는 말을 듣고서였다. 그런데 수의사가 되고 보니 사람의 말을 더 많이 듣고 있다. 동물이 제 발로 병원에 올 수 없고, 제 아픈 일도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저자가 수의사가 된 것은 사람과 말을 섞지 않겠다는 부정적 동기가 아니라 동물의 말을 듣기 위해서인 듯하다. 저자는 진작에 동물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책에는 단어 표현이 풍부한데도 유독 동물을 표현할 때 ‘아름다운’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 어린 시절부터다. 병아리를 처음 본 순간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를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말에 충격받고 오해에 가슴 아파한 사람인 만큼 저자는 인간의 말 하나하나 꼼꼼하게 듣는다. 책에 실린 짧은 글의 제목은, 종종 말에서 나왔다. ‘제가 데려올게요’라는 제목은 치료 뒤 주인을 못 찾는 길고양이를 데려가겠다는 사람의 말이다. ‘죽을 만큼 아파도 물지 않는 개는 없다’는 “자기가 옆에 있으면 이 개는 사람을 물지 않으니 마취를 하지 않겠다”고 한 보호자의 말에서 왔다.

동물을 사랑하는 건 사랑이 커지는 일이다. 인간을 사랑하는 것을 넘어 동물을 사랑하기로 했다. 그리고 어려운 인연으로 자기 품에 들어온 동물을 생각하면 그 동물이 속한 종 전체에 대한 사랑으로 커진다. 그들의 눈동자를 바라보다보면 다른 동물의 눈동자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읽게 된다. 저자는 그렇게 커지는 사랑으로, 소싸움에 나온 칠성이가 상대 소와 머리 맞대기를 거부하는 것에 눈물이 났다. 쥐실험을 할 테니 쥐에게서 피를 뽑아달라는 고등학생에게 “다른 실험을 생각하라”고 말한다. 유리벽에 부딪치는 새를 위해 ‘충돌 저감 가이드라인’을 공유한다.

고맙고 분통 터지는 일에 눈물이 많이 나니 지하철에서는 읽지 마라. 꽃비는 저자의 엄마의 친구가 데리고 갔다. “(엄마는)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예쁜 강아지, 비처럼 내리는 꽃을 듬뿍 뿌려준 것이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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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뚱뚱하지 않은지 걱정이 많다면 본인의 살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의 에스엔에스(SNS)를 팔로하라. 자신의 이중턱이 싫다면 이중턱에 모두 ‘좋아요’를 눌러라. 필자는 다양한 신체가 피드를 채우는 것이 도움이 됐다고 한다. 성생활과 페미니스트로서의 불균형을 고민하는 사람을 위한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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