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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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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문은 주관식으로 답할게요

빅뱅 연습생 출신 사업가 한현수님의 플레이리스트
등록 2022-06-13 15:20 수정 2022-06-14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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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현수님은 빅뱅 데뷔조였다. 한현수, 동영배(태양), 권지용(GD)에서 한 자씩 따 ‘한동권’으로 불리며 연습생인데도 팬클럽이 있었다. 결말을 알고 영화의 시작을 다시 보면 감회가 남다르듯, 당시 셋이 찍은 사진을 보자니 기분이 묘하다❶. 이때 그들은 알았을까? 빅뱅이 이 정도로 슈퍼스타가 될지, 그리고 현수님이 데뷔를 목전에 두고 돌연 자진 탈퇴를 할지.

“후회하지 않나요?” “아뇨. 사실 당시에 음악은 해방감 때문에 했어요. 저희 가족 중 클래식 음악 하는 사람이 많았거든요. 대중음악을 한 게 나름의 반항이었달까요. 그만하면 됐다 싶었죠.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뿐이에요.” 그리하여 현수님의 현시점 결말은 브랜드 디자인 컨설팅펌 디시떼(DISITTE)의 대표이자 아트 디렉터다. 제품 디자인에서 시작해 공간 기획과 브랜딩, 공간 IT 서비스 기획까지, 기회가 열리고 마음이 동하면 거침없이 사업 범위를 바꾸거나 확장해온 지 10년차. 기획자보다 개발자와 더 많은 대화를 해야 하는 조직의 리더가 되는 건 ‘한동권’ 시절에는 가늠하기 어려운 결말이었음이 분명하다.

처음 사업에 입문한 계기가 재밌다. 음악을 그만두고 대학에서 금속디자인을 전공한 현수님은 졸업작품으로 양산이 가능한 디자인을 냈다. 그리고 실제 양산용임을 증명하려 그간 모은 돈을 탈탈 털어 호기롭게 대량생산했다. 그런데 그 제품을 어찌어찌 북유럽 디자인 브랜드 아르텍이 사가고, 핀란드 헬싱키의 아르텍 박물관에 보관된 제품을 한국의 누군가가 보고 그에게 일을 줬다. 그렇게 제품 디자인을 하다가 제품을 담는 공간을 기획하고, 그러다가 그 공간을 운영하는 일로 커졌다.

이 정도면 사업가로서의 정체성이 자리 잡았을 법도 한데, 여전히 현수님을 아티스트로 보는 이가 많다. “내가 너무 아티스트스러운가? 사업가가 맞나? 늘 고민했어요.” 그 고민에 답을 줬다며 추천한 영상은 ‘나는 과연 사업가 체질인가?’❷이다. 유튜버 런업이 그가 만난 사업가 5명의 공통분모 3가지를 꼽는다. ①돈과 효율이 강력한 원동력인가 ②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에 파고드는 게 아니라 세상이 원하는 것에 반응하는 성향인가 ③스트레스에 강한 멘털인가.

그런데 첫 번째와 두 번째 기준에 따르면 현수님은 전형적인 사업가 체질은 아니다. 수년간의 연습생 생활을 과감히 접을 정도로 현재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게 중요한 사람이다. 자신의 정체성은 결국 아티스트라는 답을 찾은 걸까?

질문형 제목과 숫자 매기기 등 메시지를 떠먹여주다시피 한 영상이었음에도, 현수님은 그로부터 의외의 결론을 내렸다. 자신을 사업가와 아티스트 중 하나로 규정하지 않기로 했다. 익명의 사업가 5명, 사업가 체질은 아닌 것 같다며 멋쩍어하던 런업 모두에게서 엄청난 몰입감과 행복을 엿봤기 때문이다. 일에서 이 몰입감과 행복이 전제된다면 현수님의 정체성이 사업가인지 아티스트인지는 중요치 않다.

“제 일의 본질은 사업으로 제 다양한 관심사를 즐기는 거예요.” 사업가 체질인지 묻는 말에 대한 현수님의 답이다. 동문서답처럼 들릴 수 있고, 누군가는 어떻게 사업의 고통을 그런 이유만으로 감내할 수 있냐며 기함할 것이다. 하지만 정체성은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이다. 내 일의 본질을 내 언어로 정의하지 못한다면, 객관식 보기에서 고를 수밖에 없다. 객관식 사고를 유도하는 양자택일 질문도, 필요하다면 주관식으로 바꿔도 된다.

최근 들어 나도 ‘IP(Intellectual Property·지식재산권) 프로듀서’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IP라는 원석을 가장 잘 맞는 방식으로 세공해 가치를 높이는 일을 한다. 기존 업무 분류에 맞지 않는 새로운 일이 많아, 내 일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내 언어로 재정의해보고 있다. 물론 아직 못 알아듣는 사람이 태반이고 더 직관적이고 본질적인 표현으로 바뀔 가능성도 크다. 그래도 일단 주관식으로 초안을 내야 사람들이 주관식으로 되물을 것 같다. 내가 현수님에게 그랬듯 말이다.

김주은 IP 프로듀서(인스타 @alt.ctrl.shift)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주은 IP 프로듀서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한현수(인스타 @lyricaldrawing)의 플레이리스트

나는 과연 사업가 체질인가?

https://www.youtube.com/watch?v=sTnO9DwtHi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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