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보다 좁게 판 이랑에 비닐을 덮고 있다. 이 일을 하며 이미 잡초 매트 깔기는 포기했다.
2년차 농사를 시작하며 장모님은 올해 농정 3대 방침을 천명했다. 첫째, 이랑을 좁게 판다. 둘째, 고추를 적게 심는다. 셋째, 잡초 매트를 깐다. 엄중한 당부였다.
농사는 대표적 ‘손발 노동’이다. 손발 노동이 저 멀리 아프리카에나 있는 거라고 말하는 이는 분명 밭이랑을 한 번도 만들어보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한다. 장모님은 겨우내 이랑을 좁게 만들어 두 줄이 아닌 한 줄로 작물을 심어야 한다는 점을 정말 수십 차례 강조했다. 밭은 좁게 통로는 넓게 만들어야 일이 쉽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비슷한 얘기를 지난해 처음 농사지을 때도 했던 것 같은데, 그때는 그게 왠지 선뜻 동의되지 않았다. 밭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자네, 그거 너무 넓지 않아?” 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슬쩍슬쩍 이랑을 넓혀가며 두 줄로 작물을 심을 수 있는 넓이로 밭을 일궜다. 내 욕심이 빚은 대참사. 손발뿐만 아니라 팔다리 어깨 무릎 허리까지 모든 신체 부위가 골고루 불쌍해졌다.
그렇게 두 줄로 심을 수 있게 만들어진 밭에 250대의 고추를 심었다. 별다른 농사 경험이 없고, 주말에만 일할 수 있는데 무턱대고 심은 250대의 고추는 그러니까 하늘에 대고 ‘왜 내 손발을 책상머리에 길들도록 만들었습니까’라고 항의해야 하는, 노동의 신이 손발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혹독한 시련이었다. 지난해 내내 비가 오나 햇볕이 내리쬐나 애증으로 고추 걱정을 하던 장모님이 올해 고추를 150대로 감축하겠다고 전격 선언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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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잡초 매트다. 이 부분은 여전히 내심 이견이 있는 문제다. 장모님은 이랑 사이에 잡초가 자라지 못하도록 매트를 깔 계획을 세우셨다. 어떤 재질이 ‘가성비템’인지 알아볼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저기 깔린 게 아스팔트나 시멘트가 아니라 흙이오, 그러니 자연이오’의 감상을 가져야 하는 입장에서 그게 맞는가 여전히 고뇌하고 있다. 물론, 내적 고뇌를 쉽게 발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잡초 뽑는 노동의 대부분을 장모님이 수행하기에 권리를 주장할 명분이 없다는 치명적 약점 때문이다. 만약 깔지 말자고 하면 “그럼, 자네가 잡초를 뽑으라”고 하실 텐데 이를 수행하기에 내 손발은 전혀 준비돼 있지 않다. 살살 눈치를 보며 올해 농사 과정을 인스타그램 부계정으로 운영해보겠단 계획이 있는 와이프에게 기대를 걸 뿐이다.
사실, 이번 주말 10개 이랑에 비닐 덮는 공정을 하는 동안 내 손발은 이미 잡초 매트 깔기를 포기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좁게 만든 이랑 비닐 덮는 일도 이렇게 힘든데, 넓게 만든 길에 매트 까는 일은 또 얼마나 힘들까.
지난 주말 밭을 일구고, 한 이랑에 씨감자를 넣고 약간의 쌈채소를 심었다. 쌈채소를 심은 김에 야외 바비큐도 감행할까 했지만 포천의 봄은 아직 좀 쌀쌀했다. 고추농사 감축 이후 어떤 다종한 작물을 소량 재배할지를 논의하는 와중에 장모님은 올해 유난히 가물 것이라고 들었다며 급수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그것은 인프라 공사로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다음주 파종에 앞서 기우제부터 지내야 하는 게 아닐까. 우리 동네는 막걸리도 유명한데. 부디, 올해 하늘의 신이 구름에 비의 씨앗을 넉넉하게 뿌려주길 기원해본다.
글·사진 김완 <한겨레> 탐사기획팀 기자
*농사꾼들: 주말농장을 크게 작게 하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한겨레> 김완, 전종휘 기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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