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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식당이 생기면 절반은 박찬일 덕이다 [21WRITERS①]

[한겨레21이 사랑한 논픽션 작가]<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등록 2022-03-28 00:08 수정 2022-03-29 11:56
사진=박승화 기자

사진=박승화 기자

1. 반반 인생

먹은 만큼 썼다. 쓴 만큼은 만들었다. 반반 인생이다. 박찬일(57) 앞에 붙는 말은 ‘글 쓰는 요리사’다. 다시 ‘글 쓰는’ 앞에 ‘미문의’라는 말이 자주 붙는다. 그의 ‘반반’거리는 더 있다. 이탈리아에서 요리학교(ICIF)를 다니고 한국의 노포를 찾아다닌다. 이탈리아 식당(로칸다몽로와 광화문 몽로)과 한식 식당(광화문국밥)에서 요리하고, 남을 잘 먹이면서, 잘 먹는다. 얼굴도 ‘반반’한 편이다.

2022년 2월22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로칸다몽로에서 박찬일 셰프·에세이스트를 만났다. 몽로에는 술집과는 안 어울리게, 그래서 박찬일의 인생과 어울리게, 책이 꽤 많다. 물건들 사이에 ‘낑겨’ 있다. 포스기 옆에도 김민정 시인의 시집이 세로각 맞춰서 끼어 있다. 시집이 웬만한 포스가 있으니 발견된다. 그에 반해 ‘블루리본 서베이’는 거래업체의 전화번호처럼 주인장만 알면 되는 듯이 붙어 있다. 그는 낮 12시 가게에 나왔다. 오후 5시 영업 시작이지만 준비할 게 많다. 그사이 박 셰프는 MBC에 들렀다가 왔다.

그는 ‘반반의 균형’에 대해 (잡지기자를 하다가 이탈리아 요리 유학하는 것으로) 진저리가 나서 버린 글쓰기가 부득부득 자신을 다시 찾아온 사정에 대해 ‘논문’처럼 말했다. “압축성장이라는, 엉성하지만 멋진 표현이다. 한국의 경제 성장이 그랬다. 하위문화와 파인다이닝의 상위문화가 다 성장하고, 음식 예능이 팔리고, 고급하게 식품을 소비하는 문화가 등장하고, 음식비평의 시대가 도래했다. 크리틱(비평가)이라고 해도 맛없다고 쓸 수 없다. 별을 짜게 주는 영화평론가도 있지만 식당은 영세하니 망하면 어떡하나. 그래서 식당 내부의 일을 쓸 수 있고, 현업 요리사라고 하는 그런 독창성을 높이 샀던 것 같다.”

팩트에서 ‘잘난 체’는 단 한 방울까지 짜내서 탈수하는 신기한 말하기다. “신문이 점점 잡지화하고 당시에 증면 경쟁도 있고 또 그런 말랑말랑한 얘기가 필요한 시점에 내가 있었던 거다. 당시 편집진은 앤서니 보데인 유의 글이 필요했을 거다. 셰프이면서 칼럼니스트인 사람. 앤서니 보데인은 요리를 겁나 잘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요리보다 글이 더 낫다. 그런 건 싫다.”

신문 <한겨레>가 2007년 9월 시작한 섹션 ESC는 한 면을 털어서 박찬일의 연재글 ‘시칠리아 태양의 요리’를 실었다. 종합일간지에서 ‘먹는 것’에 대해 말하는 지면을 만드는 시대가 당도했다. 시대의 일방적 요구가 아니었다. 요구에 부응하는 이가 있었으니 다행이었다. 당시 ESC 기자였던 박미향 <한겨레> 문화부 부장은 말한다. “폭발적 반응이었다. 문장이 좋고, 내용이 구체적이고, 그리고 너무 재밌었다.” 이후 박찬일 셰프는 ESC에 계속 호명됐고, ‘국수주의자’(국수를 좋아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거쳐 현재는 ‘안주가 뭐라고’를 연재한다. “그냥 음식 잘하는데 글을 아주 잘 쓰거나 글을 잘 쓰는데 음식을 아주 잘하는 게 아니라, 둘 다 아주 잘하니까 한국에서는 독보적이다.”

<한겨레>를 예로 들었지만 질긴 인연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경향신문>에 한 달에 한 번 쓰는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은 2013년 3월부터 쭉이다. 2017년까지는 매주 쓰는 칼럼이었다. <에스콰이어>는 어떤가. “1년 반 전인가 잘렸는데, 20년간 썼다.” 박찬일의 어깨가 이탈리아 사람처럼 잠깐 올라갔을까. “전세계 <에스콰이어>에서 가장 긴 연재 기간”이라고 할 때.

2. 취재

다짜고짜 전화를 건다. “긍께, 뭐라고요? 글 쓴다고요? 콩나물을 글에 뭐더러 쓴다요?” 인터넷을 검색해보고 콩나물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전라도 한 지방의 전문 생산업자에게 건 것이다. 계속되는 그쪽의 반응. “근디 이런 걸 뭣에 쓴다요. 희한하네, 참말로. 전에 어떤 신문기자는 콩나물에 약을 치냐 물어쌓더만….” (<뜨거운 한입>, 159쪽)

칼럼에 느닷없이 등장하는 취재 본능. 칼럼에서는 전화를 걸지만, 기획해서 내는 책은 발품이 어마어마하다. “감자에 미쳐서 자기가 돈을 대고 육종하여 농사짓는 분이 춘천에 산다”고 해서 찾아가는 식이다. <오늘의 메뉴는 제철 음식입니다>는 굴 따러 충남 서산 앞바다에, 딸기 따러 안면도 딸기농장에 간다. 경남 마산 앞바다에서 날카로운 눈으로 미더덕 까는 아주머니 말을 받아적는다. “칼을 오이 벗기듯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깎다가 지금은 돌려깎기가 정착됐습니다. 돌려깎으니까 훨씬 속도가 붙는 기라. 남자가 더 잘 깝니다. 엄지에 힘이 있어야 칼을 밀거든.”

신기한 음식 이야기를 들으면 눈이 번쩍 뜨인다. “강원도나 울릉도에서는 ‘손꽁치’라는 원시 어로가 있었다. 처음 이 얘기를 속초에서 들었을 때 나는 어떤 신비로움에 사로잡혔다.”(<오늘의 메뉴는 제철 음식입니다>) 하는 곳이 있으면 금방이라도 달려갈 기세다. <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는 계절에 맞춰 스님과 함께 시금치, 배추, 김, 두부, 된장 등이 만들어지는 곳을 찾아가본다.

면을 좋아해서 북한 책도 읽고 백두산 밑에서 장식용으로 놓인 북한 요리책을 사던 그는 노포를 다니면서 한국 경제와 일제강점기 역사와 조선시대 유래까지를 샅샅이 검색해본다. <짜장면: 곱빼기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를 보면 그런 취재를 바탕으로 직접 짜장면을 만들어본다.

내가 회사 사장이라면 그를 고용하겠다. 발품을 마다않는다. 알아서 잘한다. 될 때까지 한다. <백년식당>에서 “육개장 취재를 다섯 번” 뛴 옛집식당은 대구에 있고 “도합 네 번을 찾아가 한참 들여다본” 할매국밥집은 부산에 있다.

-노포 취재를 왜 그렇게 여러 번 갑니까.

“노포들이 하기 싫어해요. 텔레비전에서 취재하고 가면 뒤집어놓잖아요. 충주 맛있는 짬뽕집을 대전에서 가고 서울에서 가고 그러고 나면 단골 자리가 안 나요. 그렇게 온 사람들은 다시 안 와요. 이걸 했다가 괜히 단골만 떨어지고 욕이나 먹고 손님들이 막 줄 서 있으니까 서비스 나빠지고, 그걸 깨달은 사람들이 안 하는 거죠. 저는 취재해야 하는데 꼭 하고 싶은데 주인이 이런저런 이유로 하기 싫어하면, 결국은 자꾸 가서 얼굴 익히는 게, 미안해서 해줄 수밖에 없는 게 제일 빠른 길이거든요.”

-그래도 못한 가게가 많나요?

“끝내 못한 데도 있어요. 그건 속상한 얘긴데, 계속 그냥 하기 싫대요. 서울 정동 쪽. 어느 날 지나가는데 문을 닫았더라고요. 사장님이 장사를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구나, 그래서 안 해줬네. 그렇게 알게 된 거죠. 경상도에 있는 집 하나를 꼭 소개하고 싶었는데, 지역지 기자를 통해서 가고 사장과는 수십 번 전화했는데, 안 됐어요.”

-꼭 간다, 먹어본다 등 노포 선정과 취재 원칙이 있겠어요.

“일반취재 원칙과 비슷하죠. 긴 시간 듣겠다. 현장을 충분히 본다. 맛없는 데는 안 쓴다.”

이런 수고 끝에 닫혔던 부엌 문을 열어준 데가 많다. 우래옥은 그에게 처음으로 주방을 공개했다. <백년식당>이 나온 뒤(사기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뒤) 섭외를 거절한 창업주를 다시 접촉해 성사되기도 했다. 언론에 인터뷰가 난 적 없는 을지면옥 주인과 마주 앉을 수 있었다. 을지오비베어에서는 은퇴한 뒤 노후를 즐기던 사장님이 ‘짜잔’ 나타나(텔레비전이라면 슬로모션이다) 맥주를 따라줬다. 명동돈가스의 주방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묶인 게 <노포의 장사법>이다. 두 권에 실린 집 중 백년이 된 집은 없다. 서울 용금옥이 1932년, 서울 쟁배옥이 1933년이다. 아마 이 집들이 백년을 간다면 박찬일 때문일 것이다. 인터뷰 사료는 국립민속박물관 아카이브 자료로 기증했다.

“서울에서 ‘오래가게’라고 선정했죠. 식당만 들어간 건 아니지만 식당이 많았죠. 중소벤처기업부도 백년가게 인증제도를 만들었는데, 제 취재가 영향을 줬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노포가 뭔가요 했는데, 지금은 ‘노포’라는 말을 너무나 흔하게 쓰죠. 젊은 친구들도 노포, 노포 그러고 노포 가는 게 트렌드더라고요. 노포 탐방 유튜브도 많이 생기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다. “이런 육하원칙을 맞춰서 쓰는 글, 사회적 책임이 있는 글을 별로 쓰고 싶지는 않아요.” 사장이 이 유능한 직원을 다루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또 말입니다. <노포의 장사법> 에필로그에서 “이제 이 시리즈는 끝이다”라고 선언한다. “고맙습니다!” 느낌표 붙여서 두 번 외친다. 홀가분하다고. 그러고는 <백년식당>에서, 4군데를 빼고 6군데를 다시 취재해 <내가 백년식당에서 배운 것들>이라고 개정증보판을 냈다.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가 또 괴물 책이다. 46판 크기에 무려 360쪽. 사진이 많지만, 글자가 촘촘하고 별책으로 ‘인덱스북’이 끼워져 있다. “사람들이 이제 일본 오사카나 후쿠오카 이런 데 여행을 많이 갈 텐데 오사카는 술이 맛있는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거예요. 거기 독특한 술집 문화가 좋아서 이제 가서 먹고 하다보니 책을 하나 그냥 쓰고 싶어 썼죠.” 성정상 안 마신 집은 넣지 않았다. “수십 차례의 취재가 이어졌다. 끝까지 마셨고, 기억이 나지 않아 기록하지 못한 집이 많았다. 다시 갔다. 계절이 바뀌면 또 갔다. 이순, 즉 20일마다 제철 음식이 바뀐다는 오사카 술집의 안주를 꼿꼿이 보았다.”(책 서문) 책에는 107곳 술집을 다뤘으며, 취재할 때 한곳에서 안주를 7개 시켰다고 한다. 그냥 그때 마셨을 술 양을 상상해봤으면 한다.

*박찬일, ‘눈물은 왜 짠가’에 대한 요리학적 고찰 [21WRITERS②]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1775.html

출간 목록

베스트셀러 작가는 얼굴을 많이 내민다. “정말 싫은데, 출판사에서 팔기 위한 의도겠지. 거절 못한다. 출판사에서 하자고 하면 대체로 따른다.” 박찬일 셰프는 유독 표지에 얼굴이 많다. <노포의 장사법> 어머니대성집의 어머니가 그런다. “손님이 내 얼굴 안 보이면 맛없어 보인다고 해요. 그래서 기를 쓰고 나와요. 운명 같은 거예요.”

사진=박찬일 제공

사진=박찬일 제공

*표지 얼굴의 변천사를 넣을 계획이었지만 지면이 부족하니 서점에서 확인하시기 바란다.

*공저 제외

<될 수 있다! 요리편>(청년사, 1999)

이탈리아 요리학교에서 서문을 쓴, 청소년용 요리사 직업 안내서.

<와인 스캔들>(넥서스, 2007)

이후 <보통날의 와인>으로 개정판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창비, 2009)

<한겨레> ESC 연재물. 김중혁이 그림을 그렸다.

<보통날의 파스타>(나무수, 2009)

<박찬일의 파스타 이야기>까지 두 번의 개정판

<어쨌든, 잇태리>(난다, 2011)

펴낸이가 김민정 시인, 편집자가 소설가 정세랑이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푸른숲, 2012)

<백년식당>(중앙M&B, 2014)

이후 <내가 백년식당에서 배운 것들> 개정증보판

<뜨거운 한입>(창비, 2014)

<미식가의 허기>(경향신문사, 2016)

<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불광출판사, 2017)

넷플릭스 <셰프의 테이블>에 나온 정관 스님이 배추와 시금치를 안내한다.

<노포의 장사법>(인플루엔셜, 2018)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모비딕북스, 2019)

나오자마자 일본 불매운동과 코로나19로 불행을 겪은 책.

<오늘의 메뉴는 제철 음식입니다>(도서출판 달, 2019)

<짜장면: 곱빼기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세미콜론, 2021)

짜장이냐 짬뽕이냐 고민 없는 남자의 짜장면 사랑.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한겨레21이 사랑한 논픽션 작가들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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