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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눈물은 왜 짠가’에 대한 요리학적 고찰 [21WRITERS②]

[한겨레21이 사랑한 논픽션 작가]<짜장면: 곱빼기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쓴 박찬일 작가 인터뷰
등록 2022-03-28 00:15 수정 2022-03-28 18:22
사진=박승화 기자

사진=박승화 기자


*박찬일, 백년 식당이 생기면 절반은 박찬일 덕이다 [21WRITERS①]에서 이어집니다.

3. 문장

기자의 개인적 경험이다. 최초로 필사한 것은 까막귀가 음악기자를 하게 되면서다. 귀로 들리는 소리를 당최 소용 닿는 말로 풀 길이 없어서 듣는 척하기 위해 필사했다. “템포가 꽤 중요한 열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정도의 미디엄템포는 언뜻 슬픔이 희박하다고 생각되지만….” 재즈 만화책도 베꼈다. 음식전문기자였다면 박찬일의 맛 묘사를 필사할 것이다. 필사의 필사적 필요가 있다.

“광어회같이 혀에 감기면서 잇몸에 찰싹 들러붙을 것 같은 차진 맛도 아니고, 참돔회처럼 고소한 맛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방어회처럼 기름져서 입천장이 미끌거리는 풍성한 맛도 아니었다. 뭐랄까, 저 원시의 뻘에 녹아 있는 유기물질 같은, 거친 나무 냄새가 났다.”(<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광어도 도미도 방어도 맛봤지만 그것을 입안에서 이렇게 둥글린 적이 없다. 그는 끝까지 겸손하다. “그러나 나는 민어회 맛을 잘 느끼지 못했다. 참치나 삼치회의 중간 정도의 질감에 무덤덤한 맛이 큰 매력을 주지 않았다.”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에서 독일 여성과 젊은 아랍 남자를 갈라놓은 쿠스쿠스, <대부>에서 “총은 놔두고 카놀리나 챙기게”의 카놀리의 정체, <특전 유보트>의 벽에 흔들리는 프라이팬과 <남극의 쉐프>의 라면까지 모든 먹는 것은 박찬일의 글로 모인다. 신기하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5학년 때 끓인 라면이 첫 요리이고 칼질을 못해 참외를 물어뜯어 먹었으면서, 고등학생 때 친구들의 이름은 모두 잊었으면서 어떻게 그들이 싸온 김치와 반찬은 기억날 수 있을까. 통증까지 맛의 영역으로 포함된다. 어머니와 특별한 날에 간 시장통 냉면집, 목에 쑤셔넣고 5분 만에 나왔던 기억.

모르겠다. 추억이 많다, 가 힌트가 되려나. ‘추억×1/2=맛’이라면. 그것도 눈물 어린 추억이. ‘운다’는 ‘슬프다’의 산문적 허세일 텐데, 박찬일은 그 순간 울었던 게 분명하다. 스무 살 누이는 사환 노릇을 하며 동생을 회사 부근으로 불렀다. 메뉴는 볶음밥이었다. “짜장면이나 짬뽕보다 비쌌기 때문에 누이가 고른 메뉴였다.” 그래서 “잠시 눈앞이 흐려져서 볶음밥을 정면으로 보지 못하고 외면하게 되는 것이다.”(<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가 울린다. “좀 우스운 이야기 한 토막. (…) 그 집의 주방장이 일하는 모습이 홀에서 보였는데, 그는 늘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일했다. (…) 그런데 그게 무슨 문제냐고. 흰색으로 초지일관하는 그 전통의 러닝셔츠가 노란색으로 출시된 적은 없지. 아마?”(<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이건 뭐, 탐정소설도 아니고 반전이라니. 목에 면발이 통째로 가득 넘어가는 것처럼 슬프다.

-눈물이 많은 편인가.

“글쟁이는 최소한 설득은 못하더라도, 동의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글쟁이의 본능이랄까. 설득하려고 적절한 윤색도 하고 초도 치고 가미하고 미원도 치는 건데, 진짜로 눈물 나는 건 사실이다.”

-맛에 대한 기억력이 특출한 것 같다. 어린이 대상 서적에서 요리사에게는 맛에 대한 감각이 중요하다고 했다. 맛의 감각은 기억인가 유전인가 재능인가 능력인가.

“글쎄. 글로 표현하는 맛은 어느 정도 기억과 재능의 영역이다. 요리는 다르다. 요리는 술기(기술)다. 과학 실험의 영역에 가깝다. 확정돼 맛있다고 검증된 것을 반복하며, 좀더 신경 쓰는 요리사는 그것을 넘어서 다른 것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 정도. 물론 천재적 요리사도 있지. 그들은 물리학과 화학, 생리학, 심지어 주술도 쓴다. 주술이 뭐냐면 “내 음식은 ×× 맛있어. 그러니까 맛있게 먹어줘” 이런 거다. 미디어가 좋아할 방식. 미슐랭 같은 평가회사들도 이런 걸 좋아한다.”

-어디를 가든지 부엌을 돌아보는 것 같다. ‘소울플레이스’로 부엌을 꼽기도 했다.

“감상적으로 본다. 하, 저기 누가 또 엄청 고생하네. 먹고사는 게 다 저기다. 먹고사는 사람이 있는 곳이니까. 부엌만 봐도 어떤 음식이 나올지 예측되기도 한다. 직업병이다.”

-글 쓰는 행위는 무엇인가.

“나는 먹고사는 일이었다. 피곤에 절어 밤에 노트북을 연다는 건 너무도 괴로웠다. 지금도 그렇다.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한 만족이나 기쁨 같은 건 별로 없다. 그런 건 초등학교 일기 쓸 때 이미 알았다. 글쓰기는 남을 만족시키는 일이라는 걸.”

-당신은 왜, 언제 글쓰기에 매혹됐나.(대학은 문예창작과 소설 전공이다.)

“잡지사에 다녔는데, 그것이 활자로 나온다는 게 놀라운 일이었다. 물론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는 고통이 따라오기 때문에 좋아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좋은 잡지들을 보면서 절망도 많이 했다.”(그는 자신의 글 선생을 <한겨레21> <씨네21>이라고 얼른 대답했다. 독자여, 맨 뒤 사인 페이지를 펼쳐보라. 그가 뭐라 썼는지.)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마감’인가.

“그렇다. 마감이다. 나는 마감이 없으면 쓰지 않는다. 일기도 마감이 있던 초등학교 이후 쓰지 않았다. 글은 식량과 바꾸는 것이다. 메모장, 문자로도 쓴 적이 있는데 신문 마감이다. 알지 않는가. 그들의 마감 독촉이 무섭다. 무덤에 있는 작가한테도 조르고도 남을 인간이니까. 그들을 화나게 하지 않으려고 메모장에도 쓰는 거다. 컴퓨터를 들고 다니며 어디서든 써야 했다. 심지어 이동하며 버스 좌석에 앉아 휴대폰으로도 썼다. 관절이 늘 좋지 않아 가벼운 노트북을 좋아한다. 한 카페에서 쓰고 있는데, 내 타자 소리가 괴로웠던 어느 손님이 이런 트위트를 올렸다(고 다른 이에게 들었다). “박찬일, ×× 시끄럽네.” 그다음부터 손님 없는 카페를 찾는다.

① 박찬일 닭튀김: 바삭함을 잘 살린 매콤한 프라이드라고 설명된, 로칸다몽로 메뉴 중 유일하게 ‘박찬일’ 이름이 있는 음식. 이하 음식 설명은 메뉴판에 있는 것. 구둘래 기자

① 박찬일 닭튀김: 바삭함을 잘 살린 매콤한 프라이드라고 설명된, 로칸다몽로 메뉴 중 유일하게 ‘박찬일’ 이름이 있는 음식. 이하 음식 설명은 메뉴판에 있는 것. 구둘래 기자

② 가지치즈구이: 가지와 호박 위에 치즈와 빵가루를 얹어 구운 음식. 구둘래 기자

② 가지치즈구이: 가지와 호박 위에 치즈와 빵가루를 얹어 구운 음식. 구둘래 기자

③ 감자뇨키: 에멘탈과 고르곤졸라 소스의 뇨키. 구둘래 기자

③ 감자뇨키: 에멘탈과 고르곤졸라 소스의 뇨키. 구둘래 기자

④ 서울시 중구 소공도 광화문국밥의 돼지국밥, 흑돼지 살코기로 맛을 냈고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라고 한다. 구둘래 기자

④ 서울시 중구 소공도 광화문국밥의 돼지국밥, 흑돼지 살코기로 맛을 냈고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라고 한다. 구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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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만난 인상. 그는 키가 크다. 182㎝란다. 요리사한테 좋은 신체였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먹는 데도 좋았을 것 같다. 이연복 셰프도 그를 “자신의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백년식당>에는 국밥 먹는 장면을 사진으로 썼다. 특이하게 왼손잡이다. “요리사는 키 크면 안 좋다. 부엌 표준은 대한민국 평균 키가 유리하다. 목과 허리가 아프다. 얼굴 잘생기면 장사도 대체로(?) 잘되지만 큰 키는 직업병을 얻기 좋다. 위가 안 좋아서 많이 못 먹는다. 왼손잡이는 늘 불리하다. 2년쯤 먼저 죽는다던가. 요리사도 폼이 안 난다. 뭔가 어색해 보인다.”

마지막 반반 이야기. 그는 계산적인 사람이다. tvN <노포의 영업비밀> 1화, 칼국숫집 앞에서 “1965년 20원부터”라고 쓰인 문구가 나오자 영화 <듄>의 머리로 계산하는 사람(컴퓨터)처럼 이야기한다. “지금으로도 단돈 700원이에요. 정말 싼 거죠.” 이연복 셰프도 그를 ‘단가계산기’라고 말한다. 그런 면모는 <백년식당>과 <노포의 장사법>)에서 속속들이 드러난다. 몇 그릇 팔렸고 식당이 몇 자리인지를 보고 회전율을 빠르게 계산한다.

그는 참 계산을 못한다. 박찬일은 유명한 사람이다. 셰프의 전화번호를 얻고는 일단 전화를 걸었다. 내 번호만 찍히게 하고 ‘이런 일로 걸었습니다’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낼 요량으로. 그런데 신호음이 다섯 번 가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걸려오는 전화는 받는다. 그렇게 괴로워하면서 칼럼 연재를 먼저 못 끊는다. 부엌을 들여다보며 그렇게 마음이 먹먹해진다. 청탁 글을 거절하지 못한다. “마음이 약한 건 맞다. 청탁 수락해놓고 괴로워한다.”

<백년식당>과 <노포의 장사법>을 같이 한 김예원 에디터(웅진지식하우스)는 “같이 봐도 셰프님만 보는 게 있다. 주로 인정과 관련되는 것이다. 사람 냄새를 맡는다. 신기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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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본문 마지막 질문에서 손님이 그런 트위트를 올린 건 독수리 타법이어서다. “옛날 영화 <미저리> 같은 거 보면 타자기 치는 작가, 두 손가락으로. 그게 그리 멋집디다.” 한메타자교실도 이미 알지만 “그냥 개기다가 30년이 넘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겨놓은 ‘인간에 대한 저항’, 단 하나 민폐인 것 같다. 시끄럽더라도 봐주자.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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