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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숙, 고통의 쓸모를 노려본다 [21WRITERS①]

[한겨레21이 사랑한 논픽션 작가]<할배의 탄생> 쓴 최현숙 작가 인터뷰
등록 2022-03-22 09:31 수정 2022-03-28 09:27
사진=박승화 기자

사진=박승화 기자

‘흔해빠진 사람들의 흔해빠진 인생’. 작가 최현숙(65)이 13년째 추적하는 주제다. 가난한 독거노인, 깡촌에 사는 할머니, 죽음을 앞둔 엄마, 중년 여성 농민, 홈리스(노숙인), 주변 사람들. 그의 말대로 ‘징글징글하고 드글드글한’ 이야기에, 그는 왜 매달릴까. “남들은 다 쓰잘데없는 짓이라 말해도 난 이 이야기를 꼭 사회적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 경우 구태여 특정 사건이나 특정 현장을 찾아가려 하지 않는다. 특정 사안에는 그나마 기록하는 사람들이 붙기 때문이다. 길거리와 일터와 시장과 지하철에서 부딪치는 흔해빠진 사람들의 생애가 나는 더 궁금하다. 전형적이거나 평균치에 놓인 사람은 없으며, 모든 개인은 구구절절 각별하다.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107쪽

최현숙은 2008년 4월 서울 종로 국회의원선거에 진보신당 후보로 출마했다. 세상이 그를 주목했다. 그는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후보였다. 낙선했다. 이듬해 당 부대표 선거에 출마했다. ‘사회서비스 노동자 등 미조직 여성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진보정치’를 공약했다. 또 낙선했다. 그때 나이 만 52살. “이제 무엇으로 밥벌이하면서 내 소신을 실천할까” 고민했다.

공약이어서가 아니라, 그 길이 올바른 진보정치의 길이라는 확신이었다. 남들을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내가 확신하는 그 길을 나는 여전히 가기로 했다. -‘여성노인 구술사 기록하는 요양보호사’, 여성주의 저널 <일다>, 2013년 2월22일

까다롭고 날카롭고 이상한 사람의 내막

진보정당 활동에서 물러나 스스로 ‘사회서비스 노동자’가 됐다. 2009년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다. 요양보호사 조직 운동에 참여했다. 최저임금을 받으며 하루 4시간씩 일주일에 다섯 번 노인들을 돌봤다. ‘가난한 할머니들이 늘어놓는 생애 이야기가 머리채를 잡아끌었다.’ “서로 친해지고 익숙해지니까 자기 살아온 얘길 ‘주절주절주절주절’ 하시는 거예요. 그게 아주 귀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2010년부터 주변 독거노인의 구술생애사를 썼다. 2013년 첫 책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를 낸 뒤, 지금까지 아홉 권(공저 포함)을 더 썼다.

첫 책의 주인공 3명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 주인공들이 구술 시작할 때 했던 얘기가 ‘나 살아온 건 너무 기가 막혀서 내가 정말 글만 쓸 줄 알면 몇 구루마(수레)다’였어요. 난 그랬어요. 네가 죽어서 귀신이 되든 천당에 가든 그 가난과 못 배움과 고통을, 살아온 이야기를 해주었기 때문에 네 이야기가 너 죽고 나서도 세상에 계속 떠돌도록 할게.”

2022년 3월7일 서울 남영동 한 카페에서 최현숙을 만났다. 그는 텅 빈 눈빛으로 왼쪽 허공을 바라보며 할 말을 골랐다.

-왜 평범한 사람 이야기가 매력적인가요?

“저는 누군가가 각별한 인생, 상처, 장애가 있다고 관심을 갖지는 않아요. 아무나 붙잡고라도 그의 생애 이야기를 통해 계층과 성별과 문화와 심리를 드러낼 수 있어요. 그렇게 이 사람을 사회 속에 위치하도록 끌어내는 게 제 구술 작업의 핵심이거든요. 그가 사회의 어느 위치에 있었고, 누구와 같은 처지에 있었고, 누구에게 차별받았고, 이런 사회적 존재로서 한 사람을 끌어내는 거죠.”

-그중에서도 첫 책 주인공 ‘평양 할매’ 김미숙에게 구술생애사를 제안한 이유는요?

“그 양반은 요양보호사들이 다 맡기 싫어했어요. 요양보호사를 식모처럼 생각하고 성격도 너무 셌어요. 저는 사실 그렇게 까다롭고 날카롭고 이상한 사람에게 관심이 있거든요. 까다롭고 날카로운 데는 그 내막이 있는 거예요. 대부분은 상처 때문이죠. 게다가 그 양반은 키도 크고 옷도 잘 입고, 평양에서 내려와 미군부대에서 옷장사를 한 적이 있다고 하고,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내력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자처해서 그 양반을 4개월 맡았어요. 일을 그만두고, 두 달쯤 지나 구술생애사를 제안했죠.”

가부장 체제 안의 여성들에 관해 김미숙은, “너희나 그러구 살아라”라며 상관할 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구술한다. 더구나 미군들에게 ‘몸을 함부로 굴린 것’과 숱한 낙태 등을 이유로 회개를 종용해오는 자식이나 종교 등의 낙인은 도무지 당치 않은 것으로, 자신으로서는 당당한 생계노동이자 삶의 전략이었다고 항변한다. ‘정상적인’ 성, 가족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단죄자인 종교와 자식을 지옥으로 규정하고 거부하며, ‘자신의 집’이라는 천국에서 자신의 고단한 삶을 지켜봐준 하느님과 직통하며 독거하고 있다. 그러나 그 항변과 당당함의 뒷면에는 깊은 상처와 소외가 드리워 있다.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 120쪽

징글징글한 게 핵심이에요

-그들이 구술생애사 작업을 수락한 이유는 뭘까요?

“말하고 싶은 거죠. 정말 힘들게 살아온 사람일수록, 상처가 많을수록, 누가 좀 물어봐주고 알아줬으면 좋겠는 거예요. 어떤 할머니들은 ‘나 살아온 거 뭐 하려고, 이 쓸데없는 거 뭐 하려고’ 이렇게 말하죠. 그 말 자체가 그분들이 자기 생에 대해 가진 낙인이에요. 구술생애사의 목적은 그 낙인을 뒤집자는 거예요. 또 하나는 그렇게 말하는 분일수록 사실은 하고 싶은 거예요. 그만큼 억울함이 있을 테니까요.”

-사연도 감정도 뒤죽박죽 엉키고 중복될 텐데 듣고 정리하기 힘들진 않나요?

“전 그렇진 않아요. 듣는 게 굉장히 재밌어요. 어떤 면에선 흔해빠진 이야기고 징글징글한 이야기예요. 징글징글하다는 건 그만큼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나 모성 이데올로기가 공고하다는 거죠. 그렇다고 맨날 복종하고 굴종하진 않았거든요. 그 속에서 어떻게 겪어내고 대응하고 싸우며 바꿔냈는지를 보려는 거죠. 내가 듣기 지겨워도 그게 현실이고, 사람들을 옭아매는 족쇄와 그 경로를 밝히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한 다른 경로를 제시하는 것이 목적이니까요. 징글징글하지만 집중하죠. 그게 핵심이니까.”

-성생활, 가정폭력, 성매매 같은 내밀한 얘기를 듣기까지는 어떤 과정이 필요한가요.

“청자와의 신뢰, 즉 라포(두 사람의 상호 신뢰)가 핵심이고, 라포의 핵심은 시간이에요. 내가 이 사람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느냐가 상당히 중요해요. 또 하나는 구술자에게 ‘왜 구태여 이 이야기를 쓸 필요가 있는가’ ‘그가 당한 성폭력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쓰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너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네 고통이 어떤 쓸모가 있느냐’를 얘기해요. 그의 경험이 시대와 성별과 계급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세세하게 설명하죠. 그가 말하고 글로 남기는 과정은 구술자가 자기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하고요.”

소소한 일상이나 흔해빠진 사람들의 흔해빠진 생애 이야기, 혈족이나 내 속에 관한 기록들이 어떤 쓸모가 있는지를 늘 고민한다. 내 것이든 남의 것이든 고통과 가난, 늙어 죽어가는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하는 일의 쓸모를, 글 하나마다 노려본다. 위험하고 무례해서다.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7쪽

*최현숙, 사는 만큼 쓰고, 쓰는 만큼 사는 글쓰기 [21WRITERS②]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1763.html

취향은 새벽

최현숙의 작업실

서울 남영동 굴다리 앞 원룸 1층. 최현숙이 최근 읽은 책 세 권이 책꽂이에 꽂혀 있다. <사나운 애착>(비비언 고닉), <임계장 이야기>(조정진), <숭배 애도 적대>(천정환). 여성과 가족, 늙음과 노동, 그리고 죽음에 관한 책들이다. 글쓰기 스승을 꼽으라면 이청준을 꼽는다. 어릴 때부터 이청준 소설을 굉장히 좋아했다. ‘이 사람처럼 쓸 수 없는 한 쓸 필요가 없다’ ‘나는 이 사람처럼 도저히 못 쓴다’라는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했다. 외국 작가로는 알베르 카뮈, <칼 같은 글쓰기>를 쓴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쓴 우크라이나 태생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글을 좋아한다.

새벽 1~6시를 선호한다. 별일 없으면 새벽에 서너 시간 글을 쓴다. 책상에 노트북, 커피나 녹차, 공책 한 권, 볼펜을 놓고 일한다. 노트북으로 글을 쓰다가 떠오르는 온갖 아이디어는 공책에 적는다. 공책 메모를 주기적으로 노트북 파일에 저장한다. 저장한 파일로는 ‘독서 일기’ ‘글 일기’ ‘부자들에 관한 기록’ ‘빈곤의 심정’ ‘구걸’ ‘노숙’ ‘도박’ 등이 있다. 글쓰기가 막히거나 휴식이 필요할 땐 담배 또는 온라인 화투 게임을 찾는다. 그는 흡연에 대해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내가 술을 먹냐, 계집질을 하냐.”(<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53쪽)

모자란 밤잠은 낮잠으로 채운다. 낮잠에서 깨면 맑은 정신으로 다시 쓰고 읽고 생각한다. 3시간 정도 지나 머리가 흐려지면 그제야 밥 먹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한다.

2022년 최현숙의 작업실에선 한 권의 소설과 한 권의 에세이집이 탄생할 예정이다.

출간 목록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공저, 후마니타스, 2021)

<억척의 기원>(글항아리, 2021): 전남 나주 60대 두 여성 농민의 삶.

<할매의 탄생>(글항아리, 2019): 대구 달성 산촌 60~90대 여성 여섯 명과 남성 한 명이 들려준 생애와 지역에 관한 말들.

<작별 일기>(후마니타스, 2019): 엄마의 늙음과 죽음을 밀착해 관찰한 기록.

<이번 생은 망원시장>(공저, 글항아리, 2018)

<노년 공감>(공저, 정한책방, 2018)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글항아리, 2018): 최현숙이 가장 아끼는 ‘나의 책’.

<할배의 탄생>(이매진, 2016): 가장 많이 팔린 ‘최현숙 책’. 70대 초반 두 남성의 생애사를 통해 본 남성성의 시원.

<막다른 골목이다 싶으면 다시 가느다란 길이 나왔어>(이매진, 2014): 50~60대 여성 세 명의 구술생애사. 남성에게만 부여한 ‘베이비부머’라는 호칭을 여성에게 돌려준 책.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이매진, 2013): 첫 책. 70~80대 여성 세 명의 구술생애사.

사진=박승화 기자

사진=박승화 기자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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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21.hani.co.kr/arti/SERIES/2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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