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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숙, 사는 만큼 쓰고, 쓰는 만큼 사는 글쓰기 [21WRITERS②]

[한겨레21이 사랑한 논픽션 작가]<할배의 탄생> 쓴 최현숙 작가 인터뷰
등록 2022-03-22 18:36 수정 2022-03-28 18:26
사진=박승화 기자

사진=박승화 기자




*최현숙, 고통의 쓸모를 노려본다 [21WRITERS①]에서 이어집니다.

맞은 게 아니라 싸운 거야

인터뷰 준비물은 단출하다. 종이 한 장, 볼펜, 스마트폰(녹음기 대용). “특히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 구술 들을 때는 절대 노트북 타자 치지 말라고 해요. 수사받는 느낌을 줄 수 있잖아요. 문화적으로 하위계층인 사람일수록 눈 맞추고 말과 표정, 웃음으로 적극적으로 맞장구쳐주는 게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녹음기(스마트폰)도 동의만 받고 안 보이게 둬요.”

메모도 꼭 필요할 때만 한다. “이야기가 동서남북으로 뻗어갈 때 듣는 사람은 어디서 어디로 뻗어갔는지 짚어놓고 있어야 하거든요. 또는 이 대목은 나중에 한 단계 더 들어간 질문을 해야겠다 싶을 때 간단히 메모하죠.”

인터뷰 시간은 2시간. 그 정도 하면 고령층 구술자는 기운이 빠진다. 물론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신들린 듯 밥도 물도 안 먹고 내리 말하는 분도 있다고 한다.(그는 실제로 무당이었다. <막다른 골목이다 싶으면 다시 가느다란 길이 나왔어>의 주인공 이기순.) 공식인터뷰는 보통 2시간씩 3회 진행한다. 주변 사람들은 비공식적인 만남, 전화 통화까지 일상적으로 대화하고 녹음한다. 2020년 3월부터 구술 작업을 진행하는 한 여성 홈리스는 지금까지 일곱 차례 공식인터뷰를 했고 앞으로도 인터뷰를 지속할 계획이다. 평소 자주 만나고, 매일 하루 두 차례 이상 통화하고, 병원에도 동행한다. 사전 동의로 대화를 모두 녹음하고 푼다. “공식인터뷰보다 비공식적인 자리나 전화 통화에서 훨씬 자유롭고 풍성한 이야기가 나와요.”

녹음 시간이 1시간이면 녹취 시간은 5시간 정도 걸린다. 아주 천천히 녹음을 푼다. “구술생애사는 사실 녹취를 푸는 과정에서 주인공을 깊게 만나는 거거든요. 인터뷰할 때는 구술자에게 집중하느라 그의 심리나 그 말의 의미, 어떤 것을 차마 말하지 못했고 무엇을 가공했을지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워요.”

-구술 과정에서 개입하고 논쟁하나요? 청자의 개입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저는 상대적으로 많이 개입해요. 그 여성이 가진 자괴감과 고정관념에 대해 이견을 말하죠. 경험 자체도 중요하지만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나’를 규정하는 게 달라져요. 저는 아버지의 폭력에 대해 제가 아버지에게 맞았다고 말하지 않거든요, 아버지랑 싸웠다고 말하지. 폭력에 쭈그러든 내가 아니라 미워하고 분노하고 저항하는 나로 규정하는 거죠.”

-‘당신의 경험이 정말 그러한지’를 묻는 거네요.

“그렇죠. 예를 들어 빈곤은 단순히 경제적인 상황이 아니라 상처와 낙인, 자괴감과 모멸감을 동반하거든요. 구술생애사 작업은 빈곤의 심정을 이해하고 그 심정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과정이기도 해요. 자괴감이 아니라 분노로, 최소한 억울함으로 남도록 하는 거죠. ‘내가 열심히 살았음에도 가난한 것은 뭔가 잘못됐다’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가 잘못된 거다’라고 해석해야죠. ‘구술생애사가 나와 세상에 대한 반역의 갈망’이라고 썼던 것은 ‘정상 이데올로기’를 만든 법과 권력과 욕망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을 꿈꾼다는 뜻이었어요.”

최현숙의 수첩. 박승화 기자

최현숙의 수첩. 박승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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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최현숙의 ‘가지 않은 길’


내게 구술생애사는 내 상처와 꼬라지와 짓거리들에서 실마리가 이어진 타인의 상처와 꼬라지와 짓거리들의 실타래들이자, 나와 세상에 대한 반역의 갈망이다. -최현숙의 블로그 글

-사적이고 내밀한 고백과 토로를 글에 다 담을지 말지를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나요?

“글 때문에 당사자가 피해를 보거나 그의 관계가 더 엉망이 되거나, 명예훼손 같은 법적 이슈로 번질 수 있다고 판단하면 익명·가공 등의 전략을 쓰기도 해요. 반대로 구술자나 그의 가족이 ‘이거 빼달라, 저거 빼달라’고 할 땐, 그 빼달라는 내용이 핵심인 경우가 많아요. 설득해서 그대로 싣기도 하죠. 우리 사회가 숨기고 싶어 하고 계속 숨겼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들이에요. 대표적으로 가정폭력과 성폭력이 그렇죠.”

최현숙은 중학교 1학년 때 교내 백일장 장원이었다. 그때 쓴 시의 제목은 ‘가지 않은 길’. 그 무렵 “마흔 넘어 글 쓰고 살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1980년 결혼 이후 아이의 이쁨과 돌봄의 바쁨에 잠시 ‘나’를 놓고 있다가, 문득 다시 ‘나’에 대한 치열함이 살아났다. 뭐라도 끄적여야 했다. 두 아이를 재우고 부뚜막에 양은 밥상 펴고 뭐라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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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부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에서 활동했다. “인생을 어떻게 살지를 33살에 결정했다.” 단순하고 확고했다. “세상의 고정관념과 ‘정상 이데올로기’를 의심하고 질문하면서 그에 매이지 않고 살겠다. 내가 올바른 일을 하다가 죽으면 잘 죽은 거다.” 2000년께 다시 글을 쓰고 싶었다. 소설 습작을 했다. 글에 몰두하자 살림도 엉망이 되고 덩달아 습작도 엉망이 됐다. 2005년 사랑하는 여성을 만났다. 남편과 이혼했다. 2008년 총선에서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후보로 주목받았다. “커밍아웃해서 비난받고 혹은 어떤 폭력을 당해서 죽는다 하더라도 ‘너네는 비난해라, 난 내가 옳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누가 뭐라건 밀고 나갔죠. 남들이 생각하는 그런 각별함은 없어요. 나한텐 굉장히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어요.”

오히려 최현숙의 ‘무저갱’(끝없는 깊은 구덩이)은 10대 초반부터 20대 중반까지 혼돈과 오류, 자괴감으로 이끈 액취증(땀악취증)과 도벽이었다. 액취증은 트라우마로 남았고 도벽은 자신도 해명할 수 없는 자기 오류에 대한 자괴감으로 상존했다. 액취증 때문에 친구들과 교사들은 대놓고 놀렸고 그는 스스로 멀리 떠돌았다. 엄마의 돈심부름에서 시작한 도벽은 대학 3학년까지 계속됐다. “난 지금도 냄새라는 단어를 이물감 없이 말하거나 듣지 못해요. 50대 후반에야 ‘도벽’이라는 단어를 글씨로 쓸 수 있었어요.”

쉰 넘어 남의 구술생애사를 쓰면서, 남들의 상처를 보며 최현숙 자신의 생애도 헤집어졌다. “남의 생애를 자꾸 뒤지다보면, 내 생애가 자꾸 뒤져지는 거죠.”

최현숙의 메모. 박승화 기자

최현숙의 메모. 박승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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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미워한 힘으로 내 길을 만들었다

-글을 잘 쓴다는 건 무엇일까요.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가 제 소신이고, 구술생애사 관점도 아주 사소한 곳에서 내 위치를 가늠하고 사회를 내다보는 것이죠. 글은 ‘내 관점이 정확하게 들어 있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의 오류, 시행착오, 상처를 성찰하고 나를 확장함으로써, 비슷한 한계가 있는 사람이 글에 공감하고 자신과 사회를 확장한다고 보는 거죠.”

-최현숙에게 글 쓰는 행위는 어떤 의미인가요.

“글은 나를 해명하는 거죠. 내 상처를 해명하고 내게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것. 개인적으로 복수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성숙한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거예요. 아버지의 폭력에 대해 계속 쓰는 이유는 아버지를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또한 구조적이고 사회적임을 이해하고 이해시키기 위해서예요. 남의 생애를 쓰는 이유도 마찬가지죠.”

오랫동안 최현숙의 글을 읽어온 이들은 말한다. “최현숙의 글은 누구보다 성찰적이며, 그 성찰은 늘 자기 자신을 일단 헤집고 점검하는 데서 시작된다. ‘글이 좋다’는 뻔한 말을 하는 편집자와 독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원하는 것은 늘 비판이다.”(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최현숙의 글쓰기는 직면하는 글쓰기다. 지금 내 앞에 떨어진 어떤 것도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하며 직설적으로, 날것으로, 드러내는 글쓰기다. 그건 최현숙의 삶의 행보가 만들어낸 그에게 가장 걸맞은 글쓰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치 글을 몸으로 통과시켜서 쓴다는 느낌을 준다.”(오은 시인)

“아버지를 미워한 힘으로 내 길을 만들었다.” 단지 혈육의 아버지를 넘어 ‘아버지’로 상징되는 세상 모든 질서와 규범과 관점을 의심하며 반역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것들’은 거부했지만 내 것은 아직 만들지 못해 많은 방황과 혼돈을 거쳤다. 뒤늦은 내 글쓰기는 그 방황과 혼돈과 상처의 정리 작업 같기도 하다. -<작별일기>, 119쪽

최현숙은 2020년 1월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반빈곤 운동단체 홈리스행동의 야학교사 모집 광고를 봤다. 그냥 설레었다. “더러운 존재, 불온한 존재, 쫓겨난 존재에 대한 설렘이었어요. 나 자신이 그랬던 거죠. 아버지와의 싸움, 도벽, 액취증을 겪으면서 나쁘고, 말 안 듣고, 더럽고, 냄새나고, 자기 모멸감을 안고 사는 존재였거든요.” 그는 홈리스행동 야학교사로서 노숙인 인권 감시활동을 시작했다. 40대 여성 홈리스와는 2년째 구술작업을 하고 있다. 최현숙은 오늘도 흔한 사람들의 삶을 꿰어 흔한 이데올로기에 맞선다.

말라버린 혀를 휘저어

그가 첫 책 서문에 인용한 한 문장은 어느덧 그의 삶이 되었다. “쓰이지 않아 시간의 기억 속에 매장된 죽어버린 말들을, 그 여자들의 말라버린 혀로 휘젓게 하라.”(Cha, Theresa Hak Kyung, Dictee, Berkeley: Third Women Press, 1995)

에필로그

난 최현숙을 선택했다. <한겨레21>이 인터뷰할 작가는 총 21명,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단 3명.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최현숙이었다. 그냥 꽂혔다. 사는 만큼 쓰고, 쓰는 만큼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문장을 무심히 읽다가 밑줄을 긋고, 문장을 옮겨 적었다. 더운 날 마신 따뜻한 녹차 같았다. 뜨거운 문장에 속이 시원해졌다. 한가한 평일 오후, 서울 남영동에서 차와 음식을 나누며 4시간 인터뷰했다. 다음날 오전 2시간 통화했다. 그리고 10분 더 통화했다. 인터뷰 녹음을 다시 듣다가 혼자 웃었다. ‘‘전략한다’는 말을 자주 쓰시는구나….’ 왠지 그답다고 생각했다. 실은 그의 글쓰기 전략보다 삶의 전략이 궁금했다. 실마리라도 보았다면 다행이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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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21.hani.co.kr/arti/SERIES/2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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