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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 정확한 문장으로 대상을 생포하기 [21WRITERS①]

[한겨레21이 사랑한 논픽션 작가]<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쓴 신형철 작가 인터뷰
등록 2022-03-22 07:00 수정 2022-03-29 04:39
사진=김진수 선임기자

사진=김진수 선임기자



“세상의 어떤 이는 정확하게 말하고 싶고, 세상의 어떤 이는 그 말을 정확히 이해하고(사랑하고) 싶다. 그런 교감이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하는 일이 먼 훗날 우리를 정확히 죽게 할 것이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이하 인용문 같은 책

평론은 독자에게 문턱이 높은 장르다. ‘무엇’에 대해 쓴 ‘무엇’을 해석하는 글이어서다. 문학에 대해 쓴 글은 더욱 그렇다. 놓쳐버린 영화의 미장센이나 복선을 궁금해하는 관객은 있어도, 스스로 기어이 읽어낸 문학작품의 의미를 두고 누군가의 해석에 기대는 독자는 많지 않다. 그러니 ‘독자에게 사랑받는 문학평론가’는 형용모순이다.

문학을 매개로 인간을 탐사하는 평론가

2005년 <문학동네> 봄호에 소설 평론을 발표하며 등단한 뒤 꾸준히 문단과 대중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평론가 신형철(46)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의 존재는 그런 의미에서 남다른 데가 있다. 쓰는 일과 강의하는 일 말곤 외부활동을 많이 하지 않는다. 흔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도 하지 않는데, 독자가 알아서 그를 찾는다. 3~4년에 한 번꼴로 낸 그의 평론집과 산문집은 대개 20쇄를 넘겼다. 쉽게 쓰인 위로의 말들이 부유하는 출판가에서 문학을 매개로 “인간을 탐사하고자 하는”, 이 무겁고 단단한 글들이 사랑받는 것은 우리가 아직 문학이라는 질문을 놓지 않았다는 징후이므로 반가운 일이다.

신형철의 글은 문장의 아름다움으로 우선 사랑받는다. 그가 나타났을 때 한국 문단은 “비평이 더 이상 창작에 열등감을 갖지 않게”(권혁웅 시인) 됐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그의 문장을 다시 읽을 때 독자는, “말하고자 하는 바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다른 문장으로 대체될 수 없는 문장”을 만나게 된다. ‘정확한’ 문장이다. “최상의 산문 문장은 고통도 적확하게 묘파되면 달콤해진다는 것을 입증하는 문장”이라고 신형철은 적은 바 있다.

‘정확함’은 신형철의 세계관 그 자체다. 그는 “정확한 칭찬”만이 “작품의 육체에 가장 깊숙이 새겨지는 문신이 된다”고 적었거니와, 슬픔에도 ‘정확한 인식’에 따른 ‘정확한 위로’가 필요하다고 썼다. 정확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뾰족수가 없다. 작가는 말한다. “한번 보고는 아무것도 제대로 알 수 없다.” “나는 천재가 아니라서 보고 또 본다. 보일 때까지 말이다.”

그러니까 신형철의 글쓰기는 ‘영감의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다. 그보단 가장 정확한 문장을 찾아내려는 “필사적인 노력”, 본질에 정확히 가닿기 위해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고 실패하는, 처절한 세속의 일”에 충실한 글쓰기라고 해야겠다. 그를 잘 아는 한 출판사 편집자는 “그는 글 장인이다. 그렇게 퇴고하는 작가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SNS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작가, 유튜브 영상도 손에 꼽을 만큼 적은 작가. 신형철을, 17일에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몰락의 에티카> 출간 당시, 읽고 쓰는 일이 선생님 삶의 거의 전부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왜’ 글을 쓰시나요?

“‘읽고 쓰는 일은 내 삶의 거의 전부’라는 말을 10년도 더 된 책에 적었을 때 저는 지나치게 비장했어요. 지금 보면 저 문장에 ‘거의’라는 부사를 가까스로 넣어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런데 지금도 비장 취미는 남아 있어요. 그게 남들한테는 조롱거리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요. 제가 제법 그럴듯하게 해내는 생산적인 일이라고는 글쓰기뿐이기 때문에, 이거라도 비장하게 하지 않으면 제 삶이 너무 가벼워지고 말 것만 같아서겠지요.”

-선생님께 몸을 움직여 글을 쓰는 ‘행위’는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제가 하는 일이 좋게 말해 정신노동에 속한다는 것, 그러니까 육체노동이 아니라는 사실에 약간의 자괴감을 가지고 있어요. 근면한 육체노동자이신 아버님이 사위가 하는 일을 대단한 것으로 여겨주실 때는 더욱 그렇고요. 읽고 메모하고 상념에 잠기는 일이 좀더 번듯한 노동처럼 보일 수 없을까 마음이 쓰여요. 몸을 움직여 글을 쓰는 것은 제 직업의 공정 중에서 가장 나중 단계이자 유일한 육체노동이죠. 표현은 익스프레스(express)잖아요. 밖으로 찍어내는 일. 이 프레스 작업이 제일 어려워요. 어쩌면 제가 글쓰기의 그 마지막 단계를 그토록 악착같이 미루고 싶어 하는 것은 그 알량한 육체노동마저 하기 싫어서인지도 모르겠어요.”

사랑할 줄 아는 능력으로 사랑받고 싶어 하는

-언젠가의 인터뷰에서 ‘대학교 들어가자마자 처음부터 평론을 쓰고 싶어 했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10대 시절에 처음 글쓰기를 시작할 때도 평론 쓰는 일을 상상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데, 아무래도 ‘장래 희망’ 자리에 ‘평론가’라고 적는 10대 소년이 있다고 상상하기는 쉬운 일이 아닌가봐요.(웃음) 막연하게나마 아주 훌륭한 독후감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사실이에요. 언제나 칭찬받았던 게 그걸 했을 때거든요. 타인의 칭찬은 아이의 운명을 결정해요. 문예창작학과 교수인 제 역할도 그런 거예요. 적절한 순간에 필요한 칭찬을 해주기.”

-학생들의 글을 보면서 흠칫 놀라실 때도 있나요? ‘이 녀석 이렇게 좋은 글을 썼어?’라고.

“가끔 그런 학생들이 있어요. 제가 자주 쓰는 표현으로는 ‘인생의 천재’라고 할 만한 이들이요. 이 나이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나 싶은 그런 깊이에 닿아 있는 경우죠. 그런 학생 중 몇몇은 문학에 이상할 정도로 초연한 거리를 유지하더니 어느 날 제 눈앞에서 사라져버리곤 했어요. 문예창작학과 교수의 역할에 대해 말하기도 했지만, 그 몇몇을 생각하면 미안해져요. 적절한 순간에 필요한 칭찬을 해주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요.”

신형철의 글이 일반 독자에게 깊이 사랑받는 것은 섬세하고 적확한 언어, 해박한 지식의 힘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짧은 글에서도 단숨에 인간성의 심연으로 독자를 데려가는 통찰 덕택이다. ‘비평의 개념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 평론가 조지 스타이너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같은 글을 한 문단만 쓸 수 있었다면 절대 그에 대한 비평을 쓰고 있지 않을 거”(<오리지널 마인드>)라고 썼다. 비평가의 운명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만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모세의 그것”(남진우)이라면, 신형철은 왜 시나 소설을 쓰지 않을까, 궁금해지곤 했다.

-창작에 ‘한눈’(?)팔지 않고 성실한 해석자의 길을 걸으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창작에 한눈팔지 않는 것은 그래 봤자 칭찬보다는 욕을 먹을 가능성이 커서겠죠.(웃음) 제가 비평가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많은데 제일 멋없는 답은 이런 거예요. 제 삶에는 이야깃거리가 없어요. 타인의 삶에서 그걸 찾아낼 만큼 관심의 에너지도 없고요. 그러니 이와는 다른 자극이 주어져야만 하고 그게 작품이겠죠. 작품에 대해선 경탄과 실망을 다 경험할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경탄의 에너지가 저를 움직여요. 왜일까.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 하는데, 저는 사랑할 줄 아는 능력으로 사랑받고 싶어 하는 유형인지도 모르죠.”

-다른 작가들과 달리, 평론가에겐 쓰는 일이 곧 읽는 일이고, 읽어나갈 때 이미 쓰기를 시작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선생님은 읽기 과정에서는 ‘사랑’에 빠졌다가, 쓰기 과정에서는 ‘정확’한 해석과 논리로 인식해 쓰는 일을 하시는데요. 그 두 작업이 때로 상호 충돌하는 일은 없을까요?

“그 둘은 저에게 충돌하기보다는 선순환하는 항(項)들이에요.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정확히 표현하고 싶어지고, 정확히 표현됨으로써 대상은 사랑받을 만한 것으로 입증되니까요. 이 과정을 통해 대상도 표현도 모두 유일무이해지는 것이죠. 개츠비의 미소를 묘사한 피츠제럴드의 문장 같은 것 말이죠. “잠깐, 전 우주를 직면한 뒤에, 이제는 불가항력적으로 편애하지 않을 수 없는 당신에게 집중하고 있노라는, 그런 미소”라고 적혀 있어요. 이런 건 묘사라기보다 거의 생포죠. 덕분에 개츠비의 미소는 영원히 기억되는 것이고요. 제 글쓰기의 동력은 이런 거예요. 정확한 문장으로 대상을 생포하는 일.”

*신형철, 사랑으로 읽고, 정확하게 쓰기 [21WRITERS②]로 이어집니다.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1753.html

출간 목록

<몰락의 에티카>(문학동네, 2008): 2005년 등단한 신형철의 첫 평론집.

<느낌의 공동체>(문학동네, 2011): 2006~2009년 일간지와 매거진 등에 발표한 글을 한데 모은, 신형철의 첫 산문집.

<정확한 사랑의 실험>(마음산책, 2014): <씨네21>에 발표한 영화 에세이를 비롯해 영화 27편을 이야기한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한겨레출판, 2018): <한겨레21>에 연재한 ‘신형철의 문학 사용법’을 비롯해 일간지와 문예지 등에 연재한 글, 미발표 원고를 엮은 두 번째 산문집.

*공저 제외

사진=엄지원 기자

사진=엄지원 기자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한겨레21이 사랑한 논픽션 작가들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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