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겨울이 도시의 겨울보다 더 훌륭하고 훨씬 갸륵할 리는 없다. 귀농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시골의 겨울을 더 평화롭고 훨씬 서정적이며 여하튼 아련한 것처럼 묘사하기도 하지만, 글쎄. 시골 겨울의 근원은 길고 그래서 심심하다는 데 있다. 농사를 중심으로 짜인 시공간에서 농사가 사라진 계절의 풍경은 기본적으로 지루하다.(이 칼럼을 쓸 거리가 마땅치 않다는 얘기다.)
시골의 겨울은 일찍 불빛이 꺼진다. 벌써 2년째 밤 9시 또는 10시 영업 제한으로 도시가 어려움을 겪지만 시골에서 그 시간은 이미 영업 종료 시간이다.(포천 집 근처 편의점은 11월부터 2월까지는 아예 영업하지 않는다.) 고립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데, 그 고립적 어둠은 역설적으로 유난히 반짝이는 별빛을 보게 한다.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처음 그 별빛과 마주했을 때 꽤 오래 황홀을 느꼈던 것 같다. 뭐랄까, 도시의 겨울 거리가 텅 비었는데 불빛만 반짝여 괜히 황량한 느낌이라면, 고립된 공간을 사라지지 않고 비추는 시골의 별빛은 충만한 기운을 준다. ‘저게 북극성이네 아니네, 내가 유튜브에서 봤는데 저런 건 인공위성이네 아니네’ 하고 아이들과 토닥거리고 있으면 ‘이 맛이 시골이지’란 기분이 절로 든다.
그럴 때 종종 밭에선 캔 고구마를 구웠다. ‘불멍’에 관한 찬양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시골에서 시간을 보내며 불멍보다 더 원초적이고 궁극적인 것이 고구마 익는 냄새라는 생각을 했다.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장작에서 익은 고구마 냄새는 시골에 대해 흔히 생각하거나 혹은 오해하는 그 집단적 환상이 내게 현실임을 자각하게 했다. 무엇보다 뿌듯한 건 그런 도취를 가능하게 하는 고구마가 다 먹지 못할 만큼 창고에 쟁여져 있다는 포만감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오래 서울에서만 살았다. 시골은 늘 갔다가 오는 곳이었지, 머무는 곳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아파트에 살았고, 골목길보단 잘 조성된 체육공원이나 반듯한 운동장이 익숙한 유년을 보냈다. 농사 같은 건 농부님의 일, 너무나 감사하지만 다른 이의 노동이었다. 단 한 번도 그게 내 일이다, 내 손발로 수행해야 하는 무엇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 쉬웠던 것일까. 포천에서 1년을 지내며 아니 정확히는 주말을 보내며 농사짓고, 도시의 호흡이 아닌 방식으로 살았다. 그 모든 시간이 좋았다고 할 순 없지만, 그 시간이 없었다면 코로나19의 세월을 어디에 의지하면 지낼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모두가 각자 방식으로 삶을 버텨나가는 때, 농사는 괜찮은 위로가 됐다. 모종으로 심은 방울토마토가 다 자라 열매가 익어 신기하고, 바로 그다음 주에 열매가 농익어 제 무게를 못 이겨 널브러져 있을 때 한바탕 웃었다.
아, 그러고 보니 춤도 췄다. 달이 유난히도 밝았던 밤, 온 가족이 모여 강강술래를 했다. 언제 강강술래를 해봤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데, 모두가 강강술래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불러젖히며 빙글빙글 돌았다. 힘들 때마다 그 강강술래가 찾아온다. 빙빙 돌아가기만 하는 회전목마 같은 시간이지만, 또 달려가보자고.
글·사진 김완 <한겨레> 스페셜콘텐츠부 탐사기획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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