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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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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70년의 새로운 ‘고전’

정수복의 10년 노작 ‘한국 사회학의 지성사’ 시리즈
등록 2022-01-13 12:52 수정 2022-01-14 01:56

한국 사회학의 학술사에서 기념비적 이정표가 될 역작이 나왔다. 사회학자 정수복이 해방 이후부터 최근까지 한국 사회학 70년사를 ‘계보학’적 방법으로 서술한 ‘한국 사회학의 지성사’ 시리즈 4권(푸른역사 펴냄)을 한꺼번에 출간했다. 계보학은 특정 분야의 시원과 전개 과정을 정리한 보조 학문으로 탄생했지만, 미셸 푸코가 지식 담론과 권력의 구조적 관계와 작동을 계보학의 틀로 분석하면서 사회과학의 중요한 방법론으로 자리잡았다. 이 책은 다양한 이론 형성의 배경과 계통을 한눈에 보여줄 뿐 아니라 향후 방향과 과제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정 시기, 특정 학자들에 대한 연구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한국 사회학의 역사 전체를 다룬 통사는 이 책이 처음이다. 자료 조사와 집필에 10년이 걸렸다. 원고지 7천 장이 넘는 분량에, 참고 문헌이 2천여 개, 주석은 7200개에 이른다. “한국의 사회학도라면 누구나 읽어야 하는 한국 학자가 쓴 ‘고전’이나 ‘필독서’가 없”을 만큼 “학계가 공유하는 지적 자산이 빈약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했다. 책은 한국 사회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자리한 대표적 학자 11명을 선정해, 이들의 학문과 삶을 함께 서술한 열전 형식으로 쓰였다. 통사라곤 하지만 시대순 연대기가 아니라, 학문적 시각과 연구방법론에 따라 네 권으로 분류했다.

제1권 <한국 사회학과 세계 사회학>은 사회학의 모태가 된 유럽과 미국뿐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등 ‘주변부’ 사회학까지 폭넓게 조망하면서 한국 사회학의 자리와 미래를 탐색했다. 제2권 <아카데믹 사회학의 계보학>은 가치중립성과 실증주의를 중시한 학문적 흐름을 들여다봤다. 제3권 <비판사회학의 계보학>은 기득권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지금과는 다른 사회적 권력관계를 만들기 위한 지식 창출의 역사”를 톺아본다. 제4권 <역사사회학의 계보학>은 “서구 학문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우리 사회의 역사적 경험을 재구성”하는 흐름을 짚었다.

학문 발달사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주체적인 태도로 비판적 분석과 대안을 제시한 점도 돋보인다. 저자는 현재 한국의 주류 사회학이 주로 미국 사회학을 수용해온 풍토를 지적하며 “미국 사회학은 미국이라는 특수한 나라의 역사적 배경에서 형성된 것이므로, 미국 사회학의 역사 연구를 통해 미국 사회학을 ‘지방화’하고 우리다운 사회학의 길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지금껏 대학을 중심으로 한 제도권 강단 사회학에서 비켜나 연구와 저술에 전념해온 ‘비주류’ 학자다. “사회는 주류에 의해 질서가 유지되고 비주류에 의해 변화가 일어난다.”(제3권 서문 중에서) 그는 평소 사회학이 한국 사회의 역동성과 사람들의 구체적 삶의 현실에 조응해야 한다는 뜻에서 ‘응답하는 사회학’을 강조해왔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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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로빈 던바 지음, 안진이 옮김, 어크로스 펴냄, 2만2천원

영국 진화생물학자가 우정의 기원과 진화, 가치에 관한 독창적 이론을 집대성했다. 영장류와 인간의 비교연구를 토대로, 뇌 크기가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사회집단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사회적 뇌’ 가설을 제시한다. 인간의 경우 150명(던바의 수)이 소셜미디어 시대에도 유효하다고 논증한다.

지식의 헌법

조너선 라우시 지음, 조미현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2만1천원

가짜뉴스와 선동가들은 어느 시대나 있었다. 그 때문에 인류와 사회가 자멸하진 않았다. 지은이는 부족중심주의와 편향이라는 인지적 오류를 인간 본성의 일부로 인정한다. 그러나 ‘견해차를 지식으로 변환하는 사회체제’, 즉 지식의 헌법을 통해 인간은 진실과 허구의 판별 시스템을 발전시켜왔다.

반사경: 타자인 여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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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性差) 페미니즘을 주창한 철학자이자 언어학자, 정신분석학자인 지은이의 박사학위 논문(1974)이자 주저의 첫 우리말 번역본. 프로이트에서 시작해 플라톤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서양철학사의 뿌리 깊은 ‘남근 중심주의’와 그에 깃든 여성성의 전유와 은폐를 비판한다.

요망하고 고얀 것들

이후남 지음, 눌와 펴냄, 1만7천원

한국 고전소설에는 <전우치전>의 여우, <옥란기연>의 구미호, 〈삼강명행록〉의 여장부 요괴, 〈이수문전〉의 금돼지 등 ‘요괴’가 등장하는 작품이 꽤 많다. 요괴는 대부분 인격과 행동 동기가 있고 주변 인물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요괴에 투영된 옛사람들의 상상력과 욕망, 시회규범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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