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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들에게 ‘탁월한 정치’를 묻다

플라톤부터 존 롤스까지, 2400년 서양 정치사상 집대성한 노작 <정치철학사>
등록 2021-10-29 00:46 수정 2021-10-29 10:53

“철학자들은 세계를 상이하게 해석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가 <포이어바흐에 대한 11개의 테제>(1845년)에서 선언한 문장이다. ‘세계의 변화’는 마르크스뿐 아니라 동서고금 모든 정치사상가의 관심사였다.

독일 철학자 오트프리트 회페의 <정치철학사>(정대성·노경호 옮김, 길 펴냄)는 정치의 본질과 목적을 갈파하고 공공선과 개인의 조화를 꿈꿨던 사상가들의 사유를 집대성한 책이다. 2015년 독일 튀빙겐대학에서 한 강의를 저본 삼았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아우구스티누스, 마키아벨리, 홉스, 로크, 루소, 칸트, 헤겔, 존 스튜어트 밀, 존 롤스 등 “12명의 위인”이 큰 줄기를 잡는다. 아퀴나스, 단테, 스피노자, 알렉산더 해밀턴, 마르크스, 니체 등 “작은 인물”들도 함께 살폈다.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서양 정치사상사’다. 20여 명의 인물 중 이슬람 학자 1명, 그리고 미국의 연방주의자 3명을 한꺼번에 약술한 것을 빼면 모두가 유럽인이다. 저자는 “비서구 문화에 대한 나의 지식이 너무나 부족해서”라고 밝혔지만, 유럽 중심 서술은 정치적 환경과도 관련이 깊다. 일찍부터 중앙집권 왕정이 보편화한 아시아 여러 나라와 달리 유럽의 대다수 나라는 18세기가 돼서야 통일된 국민국가를 형성했다. 정치체제의 잦은 격변은 활발한 정치적 사유의 토양이 된다.

서양 철학사 2600년의 발원지가 그리스이듯 구체적인 정치사상도 그리스에서 시작한다. 유럽어권에서 ‘정치’(독일어는 폴리티크, Politik)란 단어 자체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폴리스’(Polis)에서 유래했다. 기원전 4세기 플라톤은 <국가>(폴리테이아)에서 정의·절제·용기·지혜의 미덕을 갖추고 ‘탁월함’(Arte, 아르테)을 체현한 인물이 통치하는 이상국가를 꿈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국가(통치 체제)’와 ‘나쁜 국가’의 유형을 구분하고, “최선의 것을 수행할 수 있는 정치적 실천”을 철학적 능력보다 중시했다. 그리스 전통을 이어받은 로마 정치가 키케로는 <공동의 것에 대하여>에서 “정치와 윤리의 합일을 추구”했다. 근대 정치철학의 첫 장은 공화주의자 마키아벨리가 정치의 수단보다 목적을 강조한 <군주론>으로 열렸다. 그런 ‘잠정적 반(反)도덕주의’의 절대적 전제이자 목적이 공동선과 정치적 책임이라는 걸 외면할 때 마키아벨리즘은 폭군의 비술이 된다.

이 지점에서 마키아벨리와 칸트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마키아벨리의 반도덕주의는 “누구도 특정 목적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칸트의 정언명령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 같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군주의 강력한통치권을 강조한 목적이 군주로 하여금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을 선을 추구하게 하는 일종의 도구적 위악이라는 점에서 보면, 마키아벨리야말로 권모술수 지배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마키아벨리즘의 정반대편에 서 있다.

17~18세기 계몽철학자들의 ‘사회계약론’을 거쳐 지은이는 자신의 전공인 칸트를 정치사상가로 호명한다. 도덕철학자이자 세계시민이던 칸트는 후기 저작 <영구평화론>에서, 국가에도 개별 인격자처럼 ‘자기 입법의 보편적 도덕률’을 적용해 평화적 세계공동체를 의무화했다. 지은이도 결론 격인 ‘조망: 세계 법질서’에서 “차이와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인간의 인격체와 사회적 형식의 다양성에 열려 있는 ‘세계공화국’”을 꿈꾼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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