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몃 삐져나오는 온화한 미소, 두 분의 반가사유상은 같이 있으니 더 보기 좋았다. 국보 78호와 83호가 동시에 국립중앙박물관(현 국립고궁박물관 자리)에 전시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2004년. 두 개의 미소가 황윤씨의 박물관 방문 취미를 만들었다. 다른 인상적인 사건도 박물관에서 있었다. 중국 상나라 시대 청동기 전시를 보러 일본의 박물관에 들렀는데, 한 일본인이 수첩에 그림을 옮겨 그리고 있었다. 회사원인데 중국 문자에 관심이 많아 퇴근 뒤 계속 박물관을 방문하고 있다고 했다. 옮겨 그리는 건 갑골문자였다. 갑골문자는 몰라도 한국 고대사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에 두 번은 꼭 국립중앙박물관에 들렀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도자기 관련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박물관 방문 취미는 본업과 연결됐다.
그리하여 <박물관 보는 법>(유유 펴냄)을 내게 됐다. 도시가 박물관인 경북 경주를 방문한 것도 100번까지만 세고 세지 못했다. 많은 이에게 역사 여행의 즐거움을 주는 ‘황윤 역사 여행 에세이’ 시리즈(책읽는고양이 펴냄)가 다섯 권째 됐다. 취미가 직업을 만들었다.
김영준(은공, 인스타그램 @journey.to.modern.seoul)씨는 생활이 취미다. 그는 길을 가다가도 바닥에서 특이한 문양이나 휘장을 발견하면 즉시 되돌아가서 들여다본다. 반포종합상가의 폐쇄된 에스컬레이터에 선명하게 찍힌 금성사 로고, 대치역 승강장의 지금은 없어진 한보그룹 글자가 새겨진 벤치, 신설동의 수도학원 간판 등 서울에 숨겨진 옛날의 흔적을 찾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라는 태그로 검색할 수 있다.
그가 꼽는 가장 소중한 발견은 100년 전 만들어진 경성부 맨홀이다. “지상문명과 지하문명의 접점, 창구이기도 한 맨홀은 지금까지 여타 산업·문화 유산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10년대 후반~1920년대 초반의 흔적이 지금까지 발밑에 남아 있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꼈다.” 그는 2021년 봄 지인들과 함께 서울로7017에서 ‘서울 맨홀: 발밑에 숨은 100년의 역사’라는 전시회를 열었다.
그는 특이한 모양의 창문, 타일, 장식 등을 가진 빌딩을 보면 꼭 사진으로 찍어놓고 나중에 ‘건축물 생애이력 관리시스템’(blcm.go.kr)에 들어가서 건축물대장을 열람한다. 이 시스템은 그의 비유에 따르면 ‘신분증’처럼 작성되는 건축물대장을 편리하게 열람할 수 있게 한다.
국가가 자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구축한 시스템은 ‘빠짐없이 정확하다’. 김원식씨도 국가 시스템을 이용해 아내와 딸을 놀라게 한다. 제주도에 놀러 간 아내와 딸이 한라산 정상에 올랐다고 문자메시지로 소식을 전하자, 국립공원 실시간 영상(
smilesl.tistory.com/m)을 통해 아내와 딸의 모습을 찍어 전송했다. 국립공원 실시간 영상(www.knps.or.kr/portal/main/contents.do?menuNo=8000168)은 한라산을 포함한 산과 바다 국립공원 영상을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설악산에 눈이 온다는 일기예보가 뜨면 김씨는 대청봉의 눈을 보러 간다. 제주도 한라산 윗세오름과 서귀포항의 실시간 영상도 육아에 지친 김씨를 달래준다. 김씨는 노르웨이 철도의 라이브 영상(www.cxtvlive.com/live-camera/train-drivers-view)을 보면서 설원을 달리기도 한다. “원래 기차를 좋아하는데 어느 날 문득 눈 쌓인 언덕길을 달리는 기차가 보고 싶어서 영상을 찾다가 발견”했다. 이후 구글어스와 스트리트뷰로 노르웨이를 찾아가 기차가 달린 곳을 다시 되짚어본다.건축설계회사에서 일하는 신지혜(인스타그램 @kmap_explorer)씨는 건축을 전공했고 집과 건축에 관한 책을 썼고 건축을 좋아한다. 카카오맵 위성지도를 확대해 좌표와 함께 포스팅하고 있다. 길은 형이상학적으로 꼬불꼬불하거나,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는 호돌이가 여전히 웃고 있다. ‘전라남도 목포시 달동 34.757204, 126.351728’에는 누워 있는 세월호 옆에 노란 리본이 선명하다. “지상에서 이동하면서 관찰할 수 없지만, 위성지도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경관이나 도시의 패턴, 의외의 형태를 가진 건축물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자는 마음”으로 포스팅한다. 거북이 모양 간척지나 하트 모양 섬 등 직관적인 이미지에는 반응이 많다. 신씨는 도시의 질서가 충돌하는 이미지를 좋아한다.
김원식씨는 설원을 달리는 취미가 코로나19 영향이라기보다는 생애사의 문제라고 하지만, 김영준씨는 답사가 뜸해지면서 카카오맵 로드뷰나 구글 스트리트뷰(해외)를 자주 보게 됐다. 길거리를 돌아다닐 때 특이한 문양을 발견하는 실력이 구글 스트리트뷰를 볼 때도 발휘된다. 가끔 로드뷰로 오래된 맨홀을 발견한다.
김소혜(가명)씨는 코로나19로 미술관과 관련한 취미가 생겼다. 이전에는 미술관을 자주 가는 편은 아니었다. 지금은 여러 미술관 사이트를 돌아다닌다. 관람객을 받을 수 없게 된 미술관들이 빠르게 인터넷 관람 여건을 마련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는 33분짜리 이건희 컬렉션 안내 영상이 있다. 코로나19가 아니었더라도 하루에 스페인 마드리드의 레이나소피아국립미술관(gigapixel.museoreinasofia.es)과 바르셀로나의 피카소미술관(www.museupicasso.bcn.cat)을 즐기기는 어려웠으리라.
황윤씨는 ‘코시국’에 박물관을 갈 수 없어서 좀이 쑤시니 원고 집필에 열중했지만(그 결과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제주 여행>이 나왔다) 역사 덕후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우리 삶이 함께 쌓여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어려워하지 말고 차근차근 자기가 좋아하는 시대부터 하나씩 다가가면 좋겠습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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