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칼럼 마감이 돌아오는 5주 동안, 나는 하루 세끼씩 총 105끼를 먹었다. 새삼스레 음식을 먹은 횟수를 헤아리게 된 건, ‘배민맛’ 중독기 글을 쓰고 난 뒤 먹는 일을 살피게 됐기 때문이다.
잘 챙겨 먹었을 때도, 대충 먹었을 때도 있었다. 먼저 대충 먹었을 때. 그때의 나는 대체로 밀린 일을 소화해내느라 바빴고, 집 대신 카페에 있었다. ‘커피는 하루에 한 잔만’이라는 원칙을 깨고 두 잔을 마시기 일쑤였다. 끼니는 일을 다 끝내기 전까지는 자리를 뜰 수 없어서 카페에서 파는 디저트로 대신했다. 끼니라기보단 내 몸에 당분을 주입하는 ‘디저트처럼 예쁘게 생긴 링거’를 꽂는 느낌이긴 했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도넛 같은 설탕 범벅보다는 채소와 과일을 넣은 샌드위치를 먹으려고 했다.
하지만 내 전용 작업실, ‘스타벅스’에서는 샌드위치가 먹기 싫었다. ‘스타벅스 맛’이 나서다. 스타벅스의 샌드위치는 그래도 구성이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스타벅스에서 내놓는 샌드위치들은 빵이나 채소, 소스, 그 조합이 엇비슷해 전체적으로 서로 닮은 맛을 냈다. 배민맛을 고민해보고 나니, 단지 질린 탓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제대로 못 끝내고 있다는 압박감과 조급함’이라는 소스가 범벅이 된 탓이 아닐까?
또 일에 치이다보면 다른 걱정거리가 꼬리를 물어, 곧바로 잠들지 못하곤 했다. 그럴 때 ‘불닭볶음면에 맥주 한 캔’이 그렇게 당겼다. 매운맛과 알코올이 내 혀뿐 아니라 스트레스를 마비시켜주니까. 불닭볶음면은 어쩜 그렇게 스트레스 단계에 따라 맞춤 처방을 해주는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면 ‘핵 불닭볶음면’, ‘불닭볶음면 맛’이 질리면 ‘까르보 불닭볶음면’, 그래도 좀 건강을 생각하고 싶으면 ‘라이트 불닭볶음면’을 먹는 식이다. 현재 출시된 불닭볶음면의 맛은 총 12가지.
이제는 잘 챙겨 먹었을 때의 이야기다. 공유형 임대주택에 살면서 친구들과 옥상 텃밭을 가꾸고 있다. 한 친구의 어머니가 초봄에 밭을 일궈두신 덕에 여름 동안 식탁이 온갖 채소로 풍성했다. 가지, 토마토, 양상추, 적상추, 셀러리, 치커리, 고들빼기, 대파, 깻잎은 따로 사지 않아도 됐다. 대신 주기적으로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비바람이 몰아친 다음날에는 쓰러진 작물을 재정비해야 했다. 또 수확한 채소는 부지런히 손질해두고, 요리해서 먹어야 했다. ‘옥상 텃밭 맛’이 좋았던 건 단지 무농약 재료로 다양하게 요리해 먹어서였을까.
지난 칼럼에 한 독자분이 댓글을 남겨주셨다. 배민맛에는 “배달 플랫폼이 4차 산업 혁신이 아니라 배달노동자들의 노동에 기반한 철저히 노동집약적인 구조”도 있다고. 이 댓글을 읽고 든 생각. ‘다른 사람의 노동을 먹어야 하는 일을 멈추면 좋은 맛이 나는 것일지도 몰라.’ 잘 먹는 일에 드는 품이 귀찮다거나,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다시 일궈나가고 싶다.
글·사진 도우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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