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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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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큐레이터] 상처 지지 않아! 고정관념 지지 않아!

등록 2021-05-29 02:32 수정 2021-05-29 11:30
유튜브 ‘동화약품 후시딘’ 광고 갈무리

유튜브 ‘동화약품 후시딘’ 광고 갈무리

상처치료제 후시딘 광고에 나오는 아이들이 달라졌다. 더는 넘어져서 까진 무릎 앞에 어쩔 줄 몰라 울고만 있지 않다. ‘상처엔 후~’가 ‘상처, 지지 않아!’란 단호한 외침으로 바뀌었다. 엄마로 상징되던 보호자가 상처 난 데를 ‘후~’ 불어주지도 않는다. 대신 중요한 일을 앞둔 듯 아이 스스로 ‘후~’ 하고 호흡을 고른다.

심호흡이 끝나면 역동적인 움직임이 시작된다. 고글을 쓴 채 손이 어깨보다 높이 올라오는 오토바이(를 닮은 자전거)를 타고, 긴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축구공을 찬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철봉을 꼭 쥔 채 풀업을 하는 아이도, 헬멧을 쓰고 스케이트보드를 타거나 암벽 등반을 하는 아이도 있다. 동그랗게 뜬 눈과 앙다문 입에선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약함 대신 의지가 느껴진다. 무릎 조금, 팔꿈치 조금 까지더라도 혼자서 해내고 말겠다는 의지.

여자 어린이가 두려움에 지지 않고 운동을 즐기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나온다는 점도 눈에 띈다. 한국에서 여자아이로 산 적 있는 이라면, 상처 없이 매끈하고, 햇볕에 그을린 곳 없이 하얀 피부를 가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보호’란 이름 아래 강요받은 경험이 누구든 있을 거다. 저마다 그런 기억을 가진 누리꾼들은 후시딘이 내놓은 새 광고에 열광했다. “나 어릴 때 이런 광고가 많았으면 좋았을걸. 분명 내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을 텐데.”(유튜브 ID 빡*) “멋진 어린이들아 상처에 지지 말고 당당하게 자라렴.”(유튜브 ID 이드)

작가 이정연(<한겨레> 젠더팀장)은 저서 <근육이 튼튼한 여자가 되고 싶어>에서 “텔레비전 광고 속 여성은 한결같았다. 물렁한 군살이나 단단한 근육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의 다섯 살 조카 어린이는 나와 같은 고민을 하지 않으며 자라길 바랐다. 그래서 어린이가 가장 많이 접하는 매체에서 다양한 몸이 등장하길 바랐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처럼 “그 바람은 아주 느린 속도지만 이뤄져가는 듯싶다”.

정인선 블록체인 전문 미디어 <코인데스크코리아> 기자

관심 분야 기술, 인간,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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