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미래에 사주 보는 젊은이 늘어나.’ 2030 사주 콘텐츠 유행을 다룬 기사들을 읽다가 이 문장이 걸렸다. 미래라는 뜻 자체가 ‘도래하지 않은 시간’이니 ‘불확실한 미래’는 ‘역전 앞’처럼 동어 반복이 아닌가 싶었다. 내 글에서도 같은 표현을 쓴 게 떠올라 얼른 초고를 확인했다. 다시 멈칫했다. ‘미래가 정말 불확실한 거였나?’
먼저 학창 시절 어느 대학을 가느냐는 고민했어도 대학교에 입학할 일은 의심치 않았다. 대학교에 합격했을 때는 이 사실만으로 은행에서 학자금 대출을 승인해줬다. 지금도 나와 내 주변에서 열심히 대출금을 상환 중이니 은행은 미래를 잘 알았던 거다. 청년을 두고 ‘엔(N)포 세대’라고 하지만 정규직인 동창은 결혼 뒤 출산하는 장래를 자연스레 그린다. 또 2년 뒤 계약 만료로 이사를 고민해야 하는 나와, 집이 투기 대상인 사람, 그리고 홈리스(노숙자)의 시간은 달라 보였다. 심지어 우리 사회는 성범죄를 저지른 의대생에게 ‘전도유망’하다며 형량까지 줄여주기도 한다. 앞으로 올 일은 누구에게나 평등하지 않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사주는 희미하게라도 볕 들 날이 온다는 얘기를 해줬다. ‘짱돌’을 던지면 세상이 바뀔 거라는 신념을 대체했다. 또 ‘노오력’을 통해 안정된 미래를 꾸릴 수 있을 거라는 자기계발 담론과 달리 ‘존버’(끝까지 버틴다)만 하면 언젠가 취직하고, 합격하고, 심지어 멀어진 친구와도 다시 친해질 거라는 믿음을 줬다. 게다가 무조건 괜찮다고 위로하는 ‘힐링’ 담론과 달리 내 장단점과 적성까지 일러줬다(나는 겨울에 태어난 태양이라 어두운 곳을 밝히듯 공공의 가치에 기여해야 한단다). 얼마 전 자기소개서 쓸 때 사주 풀이를 활용하라는 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공유됐을 때 고개를 끄덕였던 이유다.
30년 넘게 살아도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부터 물건을 소비하는 일 외에 내가 구체적으로 욕망하는 게 뭔지, 그러니까 내가 누군지에 대한 감각을 갖기 힘들 줄 몰랐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뭘 먹는지를 SNS에 일상적으로 올리면서도 말이다. 폴란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 <액체 세대>에서 이런 감각을 설명해주는 듯한 대목을 만났다. 바우만은 현대인에게 ‘정체성’과 ‘자기 발견’이 중요한 문제가 된 이유를 “공동체를 대체하거나 공동체의 소멸로 인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니까 ‘자신을 아는 일’이 과거에는 공동체 일원이라는 역할을 통해 가능했다면, 소속은 물론 관계와 감정까지 좀체 확신하기 어려운 지금은 개인 몫이 되었다는 것이다. 운세 보기 유행은 앞날과 정체성을 파악하는 다른 방식을 찾기 마땅치 않은 현실 때문이 아닐까.
계약 만료로 백수가 된 2021년 1월1일부터 취업운을 수시로 찾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다음달에는 내 업무운이 길하다고 한다. 근거라고는 생년월일이라는 우연뿐이지만, ‘30대-여성-인문대 졸업’인 스펙에 기대는 것보다 믿음이 간다. 과장 좀 보태서 점점 사주가 미신인지, 그동안 믿었던 현실이 미신인지 헷갈린다. 나도 사주 보는 시간 좀 줄이고 싶다. 기본소득이나 생활임금이 보장되고, 보증금과 월세가 지금의 절반쯤 되면 가능할 것 같다. 아무래도 이 ‘청춘의 겨울’ 칼럼 연재는 운명인가보다. 겨울의 태양처럼(?) 미약하더라도 사회문제를 조명하는 글을 계속 써야겠다.
도우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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