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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민족’은 근대의 발명품이 아니다

전통적 시각 복권 시도하는 <민족>
등록 2020-08-30 22:11 수정 2020-09-01 10:57

‘민족’은 강력한 역사·문화적 동질성을 공유하는 사회집단이다. 민족(주의)의 개념과 기원, 역사를 보는 학계의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민족이 근대에 탄생한 사회역사적 구성물이라는 ‘근대주의’ 견해와, 민족이 근대 이전 시기에 기원을 둔다고 보는 ‘전통주의’ 견해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1983년 출간한 <상상된 공동체>(서지원 옮김, 길 펴냄, 2018)에서, 근대 국민국가의 핵심축인 ‘민족’이 “18세기 후반 무렵 창조된 문화적 인공물”이라고 짚었다. ‘민족’ 개념 자체가 실체가 불분명한 근대의 발명품이란 주장이다. 이런 해석에는 19세기 이후 서구 제국주의나 독재 정권이 정치적 정당성 확보와 대중 동원에 민족주의 정서를 활용한 데 대한 성찰적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이스라엘의 아자 가트(정치학)와 알렉산더 야콥슨(역사학)은 2013년 공저 <민족>(유나영 옮김, 교유서가 펴냄)에서 “근대주의·도구주의 이론가들은 종족·민족 현상의 깊은 뿌리를 보지 못한다”고 정면 반박한다. “그 결과, 인류사에서 가장 강한 힘 중 하나인 그 폭발적 잠재력을 외면”했다는 것이다. 지은이들은 서문의 첫 문장에서부터 “이 책은 현재 민족 및 민족주의 연구가 틀 지어지는 방식에 대한 깊은 불만의 산물”이라고 선언했다. ‘민족’에 대한 전통주의 시각의 새롭고 강력한 재해석과 복권을 시도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 ‘정치적 종족성과 민족주의, 그 오랜 역사와 깊은 뿌리’(부제)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민족이라는 ‘실체적 존재’를 논증하는 방식이다.

지은이들은 장구한 인류사에서 ‘친족과 문화공동체의 진화’를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어, 전근대 세계의 도시국가와 민족국가, 근대 이후 유럽뿐 아니라 남미·아프리카·아시아 등 세계의 대부분 지역에서 인족(姻族·혼인 관계로 맺은 친족공동체), 씨족, 부족, 민족이 확장되는 과정과 국가와의 관계를 두루 살폈다. 그런 끝에 “민족주의와 종족성은 긴밀히 결부돼 있으며(…), 종족성은 국가가 출현하기 이전부터 언제나 고도로 정치적이었다”는 결론을 얻는다. “민족국가는 역사 시대에 국가 형태가 생겨난 시점부터 그 주된 형태의 하나로 영속해왔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공통의 시민권과 정치제도에 의거한 ‘시민적 민족주의’를 (전통적인) ‘종족적 민족주의’와 대비해 구분하는 것도 크게 과장됐다”고 본다.

민족국가가 “인간의 ‘진화적 본성’에 각인된 친족-문화적 친밀감, 연대, 상호협력이라는 원초적 정서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본 것도 흥미롭다. 민족주의에는 자민족의 ‘해방적’ 의지와 타자에 대한 ‘공격적’ 성향이 공존한다. 지은이들은 “전자(해방)를 극대화하고 후자(공격성)를 억제하려면 그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앤더슨의 <상상된 공동체>와 함께 읽으면 좋겠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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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동안의 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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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멈춘 세계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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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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