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사람이 엎드려서 울고 있다
“한 사람이 엎드려서 울고 있다/ 눈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으려고/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받고 있다/ 문득 뒤돌아보는 자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갈 때/ 바닥 모를 슬픔이 눈부셔서 온몸이 허물어질 때/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 눈을 감으면 물에 불은 나무토막 하나가 눈 속을 떠다닌다”(‘눈물의 중력’)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는 한 문장에서 신철규(40) 시인의 시가 시작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문장에서 시인으로서 그의 존재가 두드러졌다. 2016년 12월12일 당시 최고의 시청률과 신뢰도를 자랑하던 JTBC <뉴스룸>에서 앵커 손석희가 박근혜 정부를 평가하면서 이 문장을 인용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이 일에 대해 신 시인은 “담당 작가에게서 동의(를 구하는) 전화가 왔지만, (…)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는 아직 시집도 없었고 그 시가 발표될 당시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했기 때문에도 그랬다. (…) 지인들의 사진이 속속 도착했다. 이 정도까지의 반응을 기대한 것은 아닌데 사람들이 축하해줬다. 그리고 그 구문의 힘을 느끼고 나에게 감사를 표한 사람들도 있었다. (…) 매스컴의 힘을 절감하게 된다”(월간 <쿨투라>)고 말했다.
이 보도 뒤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는 문장은 신 시인보다 더 유명해졌다. 2015년 여름 <창작과비평>에 처음 실린 뒤, 2017년 7월 그의 첫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가 나올 때까지, 그리고 그 뒤로도 신철규의 시 전체를 관통하는 한 문장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대, 세월호 참사, 촛불혁명, 손석희의 앵커 브리핑, 그리고 신 시인의 언어가 만나 그 시대의 슬픔을 상징하는 한 문장을 만들어냈다.
신 시인은 첫 시집의 3부 ‘그때부터 우리는 모두 벽이 되었다’에서 세월호에 대한 여러 편의 시를 썼다. 세월호의 비극과 공포, 고통, 슬픔을 섬뜩한 언어로 표현한 시들이다.
2. 세월호, 강철로 된 검은 허파
“슬픔의 과적 때문에 우리는 가라앉았다/ 슬픔이 한쪽으로 치우쳐 이 세계는 비틀거렸다/ 신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그것이 일반명사인지 고유명사인지 알 수 없어 포기했다/ 기도를 하던 두 손엔 검은 물이 고였다/ (…)/ 해변은 제단이 되었다/ 바다 가운데 강철로 된 검은 허파가 떠 있었다”(‘검은 방’)
“눈을 뜨니 구명정 같은 구름이 떼를 지어 흘러가고 있다/ 나는 햇살의 뼈를 만져본다/ 뼛가루 같은 햇살이 내 손바닥을 데운다/ 죽어가는 물고기의 지느러미처럼 나뭇잎이 떨고 있다/ (…)/ 눈을 감으면 수면을 뚫고 수많은 소금 인형이 걸어나온다/ 데운 조약돌로 눈두덩을 지져도 사라지지 않는”(‘부서진 사월’)
“젖은 영혼들이 물의 계단을 밟고 걸어올라온다/ 어두운 나선의 계단을 딛고 올라오는, 일렁이는 촛불의 빛무리/ 귓속에 검은 물이 들어차고/ 우리는 목소리의 동굴이 되어간다/ (…)/ 우리는 목에 더 무거워진 돌을 매달고 흩어진다/ 다른 말과 다른 낱말을 가지고 다시 여기에 모이기 위해”(‘바벨’)
8월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신 시인에게 물었다.
세월호 사건은 신 시인에게 무엇이었나.
“세월호 사건은 우연과 의도가 겹쳤을 때 나타난 집단적 폭력이었고, 개인들은 피할 수 없었다. 현장에서 절규했고 다른 사람들도 함께 울었지만, 그 소리는 충분히 들리지 않았다. 갇힌 목소리들을 살려내야 했고, 그 목소리들과 함께 싸워야 했다. 내 말(시)이 의미를 가지려면 저 기만과 왜곡에 맞서야 했다. 회피할 수 없었다. 구호가 아니라, 내 문제로 써야 했다.”
3. 역전과 추월이 불가능한 사회
“자동차 앞유리창에 빗방울이 점점이 박힌다/ 꽉 막힌 다리 위에서 우리는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 역전과 추월이 불가능한 세계에서 우리는/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고 앞차의 꽁무니만 바라보고 있다/ 나는 핸들을 놓고 두 팔을 허우적거리다가/ 뒤쪽에서 울리는 경적 소리에 다시 핸들을 꽉, 부여잡는다”(‘다리 위에서’)
그의 시에는 사회상이 그려져 있다. 세월호와 관련된 시가 많지만, 무한 경쟁과 가난에 대한 시들도 있다. ‘다리 위에서’는 ‘역전과 추월이 불가능한’ 한국 사회를 묘사했다. 모두가 남보다 빨리 가기 위해, 남을 앞지르기 위해 차를 몰고 도로로 뛰어들지만 도로에는 이미 남을 이기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경쟁조차 불가능해진 사회에 대해 그는 썼다.
“예를 들어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를 보면서 느끼는 것이 있지만, 그것을 바로 시로 쓸 수는 없다. 시는 그렇게 쓰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가 차들이 꽉 막힌 다리 위에서 그걸 느꼈다.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변화가 불가능한 사회가 된 것이다. 이제는 노력해도 안 되는 시절이다. 그것을 사회가 개인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이런 상황은 좀 나아졌을까? 그는 다소 비관적이었다. “세월호 진상 규명이 좀더 된 것, 의회정치가 회복된 것 정도는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일시에 사회가 나아지지 않는다. 물질과 재산으로 이뤄진 기득권은 바뀌지 않았다.”
“지구 속은 눈물로 가득 차 있다/ 타워팰리스 근처 빈민촌에 사는 아이들의 인터뷰/ 반에서 유일하게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아이는/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타워팰리스 근처를 둘러싸고 있는 낮은 무허가 건물들/ 초대받지 못한 자들의 식탁”(‘슬픔의 자전’)
신 시인은 ‘슬픔의 자전’에 나오는 아이를 2007~2008년쯤 텔레비전의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봤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 이 동네는 없다. 개발돼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신 시인은 “현장의 목소리를 그대로 갖다 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회문제를 이야기하는 시인으로 비치는 걸 부담스러워했다. “나는 현장을 지키는 시인이 아니고, 사회적인 시인도 아니다. 다만 개인적인 슬픔과 사회가 만나는 곳을 드러내고 싶었다.” 이 시의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는 구절은 그의 첫 시집 제목이 됐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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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규의 사전
신철규 시인이 생각하는 이 세상에 대해 몇 가지 물었다.
지구 한번 태어나면 살아서는 벗어날 수 없는 격리시설 같은 곳. 행복보다는 불행이 더 많은 곳. 맨눈으로는 절대 그 전체를 다 볼 수 없는 거대한 공. 가장 어두운 곳에서도 하나의 사랑이 피어나는 이상한 나라.
우주 빛보다는 어둠이 더 많은 곳.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물체 주머니. 소멸과 탄생이 이상한 균형을 이루는 거대한 시소.
사회 모든 인간의 욕망을 충족하기에는 언제나 조금은 더 모자란 재화를 제공하는 체계. 인간은 절대 혼자 살 수 없다는 불행을 가르치는 학교.
역사 야만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야만적인 일을 자행하는 인간들의 기록. 한 인간의 광기로 공동체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 사건들의 집합. 진실을 밝히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사람들의 좌절과 패배가 담긴 백지.
사람 신이 되려다 실패한, 그러나 신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여전히 포기하지 않는 동물. 피와 살을 가진 항온동물. 뜨거울 때는 하나의 목소리로 세계를 변혁하기도 하지만 차가울 때는 다수의 목소리로 한 사람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잔혹함을 가진 이기적인 생명체.
섹스 부분의 만남과 접촉으로 전체를 바꿀 수 있는 행위. 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기 파괴 행위. 두 눈을 마주 보고 몸을 맞대면서 서로를 죽이지 않겠다는 약속된 교환 체계. 하나의 성(性)을 가지고 태어나 같은 성이나 다른 성을 끊임없이 갈망하는 몸부림. 시작할 때는 타인 속에 들어가면서 가장 가까워지지만 끝날 때는 타인에게서 가장 멀어져 자신 속에 침착하는 긴 여행. 두 개의 몸은 절대 하나의 몸이 될 수 없음을 확인하는 슬픔을 배우는 훈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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