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초입, 장마철이 시작되려는지 찌는 듯한 무더위가 숨을 막히게 하는 날이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전화가 한 통 걸려왔습니다.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일으켜 수화기를 집어 들었습니다. 울먹이는 부모님 목소리. 할머니의 부고 소식이었지요. 할머니는 아흔 살 생신을 한 달 앞두고 돌아가셨습니다. 열네 살 어린 소녀는 열일곱 어린 소년과 부부의 연을 맺었고, 시집온 지 스무 해가 지나서야 첫아들인 아빠를 낳았다고 하셨습니다. 그 기다림의 세월이 지난해서였을까요. 할머니는 맏손녀인 제가 결혼하자마자 계속 아이 얘기를 하셨지요. 하지만 그때는 그저 옛 어른의 잔소리쯤으로 듣고 흘려버렸습니다.
결국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증손주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상복을 입고 조문객을 맞이하고 빈소를 지키며 일손을 돕는 중에도 저는 알람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습니다. 염이 끝나고 입관과 발인을 거쳐 할머니 유골을 가족 납골당에 모시고 삼우제를 치르고 탈상할 때까지 계속 제 휴대전화 알람은 일정한 시간이 되면 저를 일깨웠고, 정확한 기계가 무심하게 알려주는 시간마다 사람들 눈을 피해 아무도 없는 빈 공간으로 숨어들었습니다. 그때마다 제 손에는 주사기와 약병과 알코올스와프(알코올솜)가 들려 있었고요.
그건 제게 나쁜 습관이 있거나 병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저는 시험관아기 시술을 시작했기에, 수주간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용량과 순서로 약물을 주사로 주입해야 했습니다. 내내 장맛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그해 7월의 며칠을 떠올리면, 지금도 뭐라 말할 수 없는 묘한 감정에 휩싸이곤 합니다. 내게 유전자를 물려주신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순간에도, 나는 내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 내 몸에 스스로 주사를 꽂아야 했습니다. 그 서글픈 어긋남에 참 많이 서러웠지요.
하나, 최적의 숫자일반적으로 여성은 한 번의 임신에 한 명의 아이를 낳습니다. 인간의 신체 특성상 임신과 출산은 모체에 상당한 부담이 되고 아이 양육에도 품이 많이 들기 때문에, 한 번의 임신에 자손 한 명이 나오는 것이 최적화된 결과입니다.
그래서 여성들은 배란기에도 난자를 한 개만 배란합니다. 그 이상의 난자를 만들어 더 많은 수의 아이를 갖는 것이 개체의 생존과 종의 번성에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기에 굳이 더 많이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임신이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과정에서 벗어나 일종의 ‘의학적 기법’이자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되는 순간, 사람의 존재감은 희미해지고 숫자로 제시되는 확률과 가성비가 전면에 나오게 됩니다.
보통 남녀가 배란기에 관계를 가졌을 때 임신할 확률은 10% 내외로 알려졌습니다. 배란기 성관계가 꼭 수정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고, 수정란이 만들어져도 모두 착상이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죠. 이처럼 수정란은 만들어졌으나 착상에 실패하는 경우를 ‘생화학적 임신’(Biochemical Pregnancy)이라고 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수정란이 착상에 실패하는 비율도 22%에서 많으면 50%에 이르며, 체외에서 수정란을 형성해 이식하는 시험관아기의 경우 착상률은 30% 내외로 알려졌습니다.
여성의 몸은 한 달에 난자 1개를 만드는데, 성공률이 30%라면 임신을 보장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계산은 아주 간단합니다. 1개씩 세 번을 시도하든가, 한 번에 수정란 3개를 만들어 시도하든가. 이때 임신이 목표가 된다면, 여러 번 시도하는 것보다 한 번에 다수를 시도하는 것을 선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여성의 몸은 한 달에 난자 1개만 성숙시켜 배출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나온 개념이 바로 ‘과배란’입니다.
과배란이란 말 그대로 정량보다 많은 난자를 배란하도록 난소를 자극하는 과정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여성의 배란 과정에 대한 이해가 조금 필요합니다.
배란은 저절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여러 호르몬의 정교한 조율로 일어나는 섬세한 과정입니다. 월경주기 시작은 두개골 안쪽에 있는 시상하부에서 분비된 생식샘자극호르몬분비호르몬(GnRH)이 뇌하수체를 자극해 난포자극호르몬(FSH)과 황체형성호르몬(LH)을 분비해 난소를 자극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FSH는 미성숙 난자를 성숙시켜서 배란하게 하는 역할을, LH는 난자를 배란한 뒤 남는 난자 주머니인 난포를 황체로 변형시키는 역할을 하는 호르몬입니다. 실제 배란과 착상에 관련된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 FSH와 LH라면, 이들이 언제 실전에 투입될지 시기를 조율하고 배란을 유도하려면 양이 얼마나 필요한지 조절하는 상위 단계의 호르몬이 GnRH이죠. 난포가 황체로 변형되면 여기서 프로게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이 나옵니다. 프로게스테론은 수정란의 착상을 돕고 임신을 유지하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임신 초기에 태아가 분비하는 임신 호르몬(hCG)의 농도가 낮거나 하혈이 있는 등 임신 상태가 불안정할 때 ‘유산 방지 주사’라고 놓아주는 것이 바로 이 프로게스테론 성분의 약물입니다.
과배란 유도를 위한 다양한 방법이 개발됐지만, 보편적으로 쓰는 방법은 가장 상위의 호르몬인 GnRH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월경이 시작되는 첫날은 모든 호르몬의 수치가 가장 최저로 떨어집니다. 그래서 월경을 시작하고 이틀째부터 합성 GnRH 를 주사합니다. 정상보다 많은 양의 GnRH가 몸에 들어오면 이에 맞춰 FSH와 LH의 자연적인 분비량도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과배란 과정에선 여기에 추가로 합성 FSH와 LH를 주사해 난소 자극을 증대합니다.
이렇게 배란 유도 호르몬들을 과하게 주사하면, 원래는 1개씩만 반응해야 하는 미성숙 난자들이 한꺼번에 여러 개 반응해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과배란 현상이죠. 여기까지가 교과서에 나오는 과배란 과정입니다. 보통 이 과정을 거치면 대부분 10개 내외의 난자가 자라난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시험관아기 시술을 세 번 이상 할 수 있는 양입니다. 이식하고 남은 수정란은 극저온 냉동시켜 보관이 가능하니까요.
분명한 사실 하나문제는 사람의 몸은 저마다 호르몬에 대한 감수성과 민감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교과서에서 권하는 양보다 훨씬 더 많은 호르몬을 투여받았는데도 난자가 거의 자라지 않는 사람이 있는 반면, 권장량의 호르몬만으로도 과민하게 반응해 수십 개 난자가 한꺼번에 배란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단 난임병원을 찾는 사람들, 특히 여성은 절박한 경우가 많기에 어떻게든 난자가 많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곤 합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저는 후자의 경우였습니다), 난자가 많이 나온다는 건 그만큼 제 몸이 망가짐을 의미하더군요. 저는 심각한 난소과자극증후군 후유증으로 결국 난자 채취 이후 수정란 형성까지만 마친 채 착상은 무기한 연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난자 채취를 마치고 부작용으로 입원하며 알부민 링거를 맞고 있을 때, 회진 온 담당의는 저를 보며 말했습니다. 이번엔 잠시 쉬어가야 하겠지만 난자가 많이 나왔으니 잘된 거라고, 어차피 아기 갖는 게 목표였으니 이왕 고생할 거 한 번에 바짝 해치우는 게 낫다고 말이죠. 의사 선생님은 고생하고 낙담해 있는 저를 위로하기 위해 한 말이었겠지만, 정작 저는 그다지 위로처럼 느끼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분명 결과론적으로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 결과를 위해 저라는 존재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어버린 느낌, 마치 제가 한 인간이 아니라, ‘난자 광맥’ 혹은 ‘인간 인큐베이터’가 된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게 참 서글펐습니다. 아기를 가지고 가족을 확장하는 것은 매우 숭고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배웠는데, 그 결과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저라는 존재는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인간 여성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동시에 생물학적 자원 제공자의 역할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방법을 찾는 건 너무나도 어려웠으니까요.
당시 너무도 많이 만들어졌던 수정란은 결국 절반 정도만 냉동됐습니다. 냉동 배아의 양은 8~10회 이식 시도를 할 만큼 많았고, 초반 몇 번의 시도로 세 아이를 얻었기에 나머지 배아들은 해동조차 못한 채 폐기됐습니다. 그러니 적어도 하나만은 분명합니다. 난자는 절대 억지로 많이 캐내야만 하는 광물처럼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 말입니다.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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