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세미인으로 소문난 시빌라에게 아폴론이 소원을 물었습니다. 그대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달콤한 말로 꾀었지요. 시빌라는 양손 가득 모래알을 움켜쥐고 말했습니다. 이 손안의 모래알 수만큼 봄을 맞게 해달라고요. 하지만 시빌라는 끝내 아폴론의 구애를 거절했고, 아폴론은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시빌라의 소원을 이뤄줍니다. 시빌라에게 모래알 수만큼의 수명을 허락했지만, 젊음이 그에게서 빠져나가는 속도는 늦춰주지 않은 거죠. 시빌라는 점점 늙고 쇠약해졌지만 죽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결국 시빌라의 몸은 세월에 닳고 닳아 부서져 먼지가 됐지만 그녀의 목소리만은 계속 남아 귀뚜라미가 됐다고 하지요.
19세기 영국의 수학자 벤저민 곰퍼츠(1779~1865)는 인간집단의 특성을 연구하는 중에 흥미로운 법칙을 깨닫습니다. 인간집단의 사망률은 출생 직후부터 유아기를 거치며 높았다가 10~20대 시절에 낮은 상태로 유지되고, 25살을 기준으로 하여 8년이 지날 때마다 약 2배씩 증가한다는 규칙을 찾았죠. 이 발견은 훗날 영국의 수학자 윌리엄 매슈 메이컴의 이론이 더해져 ‘인간 수명에 대한 곰퍼츠-메이컴의 법칙’(Gompertz–Makeham Law of Mortality·그림)으로 정리됩니다. 이 법칙은 인간 수명의 한계와 연령별 사망률을 추측하는 데 가장 적합한 지표로, 근대적 생명보험 설계의 근간이 됐지요. 왜 나이에 따라 사망할 확률이 기하급수로 느는 것일까요? 그 답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나이 들면 노화가 일어나고 노화된 개체는 죽음에 더 가까워지니, 연령별 사망률의 기하급수적 증가는 노화 탓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의의 사고나 외부의 물리적 충격, 질병 혹은 스스로 생명을 끊는 경우를 제외하고, 노화는 인간에게 죽음을 가져오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자, 원인을 알았으니 이것을 해결해 결과를 극복해봅시다. 죽음의 원인이 노화라면, 노화를 해결한다면 죽음도 훨씬 더 미래의 일로 미뤄질 겁니다. 시빌라 역시 모래알만큼의 삶이 아니라 모래알만큼의 젊음을 빌었다면 그토록 비참하게 살아가지는 않았을 거고요. 하지만 노화를 극복하는 일이 과연 가능한 걸까요?
최근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의 <노화의 종말>(부키, 2020)이라는 책으로 진행된 북토크에 참여했습니다.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노화와 수명연장에 대한 연구를 하는 싱클레어 교수가 주장하는 바는 한마디로 “노화는 일종의 질병”이며 인류는 이번 세기 내에 이 질병을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을 찾아내리라는 겁니다. 솔깃한 이야기입니다.
노화가 질병이라면, 우리가 암이나 당뇨병이나 심장질환에 대해 지금껏 그래왔듯이, 원인을 밝히고 예방법을 찾고 치료법을 찾아낸다면 지금은 비록 죽음이 정복할 수 없는 난치병이지만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에는 고칠 수 있는 질병이 되고, 또 더욱 시간이 지나면 치료 가능한 병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싱클레어 교수는 노화가 질병인 이유가 바로 노화 과정 자체가 일종의 정보 소실로 일어나는 결과이므로 얼마든지 교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 몸은 알려졌듯이, 단 하나의 수정란에서 시작해 200여 종류의 서로 다른 세포 37조 개가 모여서 이루어진 개체입니다. 모든 세포는 처음 수정란이 가지고 있던 유전정보의 복사본을 가지고 있지만, 저마다 자신의 역할과 생존에 필요한 유전자 세트만을 활성화하고 나머지는 스위치를 꺼둔 채 살아갑니다. 쉽게 말하면 세포라면 누구나 독립할 때 2만여 개의 짐상자를 들고 나오지만, 집이 좁아서 모든 짐을 다 풀어놓을 수 없는 상태이고 애초에 모든 것이 다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네가 무엇을 좋아할지 몰라 모두 다 준비했어’ 수준인 거죠. 다행히 세포들에게 주어진 상자 2만여 개에는 각각 번호가 매겨 있고, 자신에게 필요한 물품이 어디에 들었는지 알려주는 설명서도 존재합니다. 그 리스트를 보고 세포는 자신에게 필요한 조합의 상자만 열어서 그 안의 물품을 통해 살아갑니다. 나머지 상자들은 잘 포장해 차곡차곡 쌓아두고요. 비록 꺼내어 쓰는 것은 몇 개의 상자 속 물건뿐일지라도, 나머지 상자들도 다 가지고 있기에 분화가 완벽히 끝난 성체의 세포를 통해서도 체세포 복제나 역분화 줄기세포 생성이 가능해집니다.
세포 마을 주민들이 처음에 꺼냈던 유전자 상자만을 사용하고 그것이 변치 않는다면 세포 상자의 포장은 그대로 유지되겠지요. 하지만 살다보면 집이 망가져서 수리해야 한다든가, 계절이 바뀌어 다른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저장해둔 상자 중 일부를 찾아 열었다가 필요 없어지면 다시 포장해두는 일을 반복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처음 집을 꾸밀 때는 망치가 필요 없어서 상자에 넣어 보관해뒀더라도, 살다보면 망치가 필요한 순간이 오는 법입니다. 이때 망치를 꺼내어 쓴 뒤 다시 잘 보관하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망치질하고 난 뒤 갑자기 급한 전화가 와서 상자에 넣는 것을 깜박 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망치를 밟고 넘어져 크게 다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망치가 필요한데 어디다 뒀는지 기억이 안 나, 이 상자 저 상자를 열어보다가 상자 더미가 우르르 쏟아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집은 점점 혼돈의 장이 돼가겠지요.
싱클레어 교수는 바로 이 과정을 노화의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언제나 집을 깔끔하고 편안하게 유지하려면, 필요한 순간에만 물건을 꺼내어 쓴 뒤 바로바로 되돌려놓고, 상자를 뒤섞지 않고 잘 정리하며, 뚜껑이 제멋대로 열려 물건이 쏟아지지 않도록 테이프를 붙여 잘 밀봉해둬야 합니다. 싱클레어 교수는 세포 내에서 일어나는 이런 조절 작용을 충분히 인간이 개입해 원활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가 주목한 것은 ‘장수 유전자’라고 부르는 유전자들의 집단입니다. 현재까지 장수 유전자는 약 22개가 알려졌는데, 그중 하나인 시르투인(Sirtuin) 유전자를 예로 들어봅시다. 시르투인 유전자는 손상된 디엔에이(DNA)를 수선하는 기능을 합니다. 즉, 잘못 열린 유전자의 뚜껑을 닫아 단단히 테이프로 밀봉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때 유전자 상자가 열리지 않도록 밀봉하는 테이프의 역할을 하는 것이 메틸기입니다. 시르투인 유전자는 메틸기를 적당히 이용해 필요하고 필요 없는 유전자의 스위치를 정확히 켜고 끄는 일을 합니다.
생쥐를 이용한 동물실험 결과 시르투인 유전자의 활성을 높인 생쥐는, DNA 수선이 더 잘돼 세포가 잘 죽지 않고, 암이나 당뇨병 같은 내인성 질환에 걸리는 비율도 낮고, 기억력과 운동 지구력도 좋아지며, 심지어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을 정도로 늘 건강한 몸을 유지합니다. 시르투인 유전자 외에 mTOR, AMPK 등 몇몇 유전자 역시 비슷한 작용을 합니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노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정확히 어떤 상자를 여닫고 정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 소실의 결과이므로, 이를 바로잡는다면 노화는 지연될 것이죠. 물론 유전자는 개인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 방식이 효율적으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개인유전체학 연구가 바탕이 돼야 하겠지만, 적절한 방식으로 조율된다면 인간의 한계수명이 지금의 80살 전후가 아니라 130살까지 늘어나리라고 주장합니다. 더욱 좋은 건, 단지 수명이 늘어날 뿐 아니라 노화 속도 자체를 늦춰주기 때문에 더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주장하지요.
매우 흥미진진하고 과학적으로도 그럴듯한 얘기지만, 싱클레어 교수의 장밋빛 주장에서 그럴싸하게 여겨지는 건 딱 여기까지입니다. 책의 3분의 1 정도 되는 지점이죠. 이후 이야기는 지나치게 나아간 감이 있어 선뜻 동조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이 책의 내용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다수의 장수 유전자를 활성화하는 요인이었습니다. 장수 유전자는 대부분 생명을 위협할 정도는 아닌, 약한 수준의 스트레스성 자극으로 활성화됩니다. 소식과 운동과 절제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장수의 비결로 꼽히는 건, 약간의 칼로리 제한,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근육 부하, 지나친 탐욕의 억제가 몸과 마음에 해롭지 않을 정도로 약간의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입니다.
장수 유전자는 약한 스트레스에 자극된다‘부분은 전체를 반영한다’는 말이 어쩜 이렇게 잘 들어맞는지, 세포나 인간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하루 그날이 그날같이 무료하게 반복되는 생활은 삶의 의미를 사라지게 합니다. 귀찮아도 일부러 몸을 움직여 운동하고, 시간을 내어 무엇을 배우고, 낯섦을 무릅쓰고 새롭게 도전하는 일이 삶에 의미를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 해가 가고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에 한숨짓지 말고, 그 시간에 뭐든 하라고 외치는 것 같습니다. 일이든 공부든 취미든 자신에 대한 통찰이든 말이죠. 적어도 그것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덜 늙게 하리라는 것만은 확실해 보이니까요.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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