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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배운 생물학, 몸으로 겪은 생물학

“엄마, 바이러스는 왜 사람을 괴롭혀요?”

바이러스는 숙주에 달라붙어 복제만 거듭하는 단백질 덩어리일 뿐

제1380호
등록 : 2021-09-10 21:53 수정 : 2021-09-15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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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기원에 대한 세 가지 가설[Viral evolution],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3575434/

엊그제 한바탕 홍역을 치렀습니다. 여름방학이 끝났지만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거리두기 4단계로 인해 계속 온라인수업만 하던 아이들이 처음 등교하는 날이었습니다. 두 달여 만에 학교에 가서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들떴는지 아이들은 깨우지도 않았는데 아침 7시부터 일어나 등교 준비를 하더군요. 그래서 평소보다 여유롭게 아침 시간을 보내고, 간만에 조용해진 집에서 오전의 짧은 여유를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유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려서 전화를 받으니,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와서 아이들을 급히 하교시킨다는 담임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뒤이어 학원과 단체대화방에서 메시지가 연달아 날아왔습니다. 메시지를 조합하니 우리 아이들은 밀접 접촉자는 아니지만 일부 확진자와 동선이 겹치는 곳이 있더군요.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혹시나, 혹시나…. 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만나 차에 태우고 그길로 선별검사소에 달려갔습니다. 우리처럼 연락받고 온 사람이 많아서인지 검사소에는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많이 보이더군요. 접수하고 문진을 받고 검체를 채취하기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저는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쳤지만 혹시나 해서 같이 검사받기로 했습니다.

검체는 목과 코, 이렇게 2회 채취하더군요. 목은 그나마 괜찮았지만, 문제는 코. 검체 채취용 면봉이 콧구멍 깊숙이 파고드는 느낌은 딱 ‘피하거나 소리 지르지 않고 참을 수 있음의 경계’를 건드린다고나 할까요. 같이 검사받은 아이는 “청양고추를 콧구멍에 넣은 듯 매운 느낌”이라고 표현했고요.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묻습니다. “엄마, 코로나바이러스는 왜 생겨나서 사람을 괴롭히는 거예요?”

이은희 제공

바이러스 기원에 관한 3가지 가설
그러게 말입니다. 바이러스는 어디서 나타나서 왜 우리를 괴롭히는 것일까요? 바이러스가 언제 지구상에 등장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뚜렷한 화석적 증거가 남을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이러스의 진화적 기원을 조사하는 학자들은 화석이 아니라, 이들을 구성하는 유전물질을 비교분석하는 방법으로 기원을 유추합니다.

그렇게 해서 학자들이 밝혀낸 바이러스의 기원은 현재 ‘바이러스 우선 가설’(Virus-first Hypothesis), ‘축소 가설’(Reduction Hypothesis), ‘탈출 가설’(Escape Hypothesis)입니다. 세 가설의 전제는 바이러스를 온전한 생명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와 무생물의 중간지대에 두고 살펴본다는 공통점이 있고, 다만 그 중간 형태의 생성 요인을 달리 보는 것입니다. 바이러스를 무생물에서 생물로 진화하는 과정의 중간 단계로 보는지(바이러스 우선 가설), 초기 생명체 형성 과정에서 만들어진 세포의 일부가 퇴화된 형태로 보는지(축소 가설), 세포가 완벽히 진화한 뒤 그 내부 기관 중 일부가 떨어져나온 것으로 보는지(탈출 가설)가 다릅니다.

바이러스가 모든 생명체의 기원이든 생명체에서 떨어져나온 부스러기 생명이든 간에, 바이러스의 존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숙주입니다. 숙주세포에 들어가지 못한 바이러스는 그저 핵산과 단백질로 구성된 유기물질일 뿐이며, 오로지 숙주 속에서만 활성을 가집니다. 그러니 바이러스에게 숙주는 먹이이자 물품 조달자인 동시에, 증폭 기계이며 삶의 터전 그 자체이지요.

학술적으로 바이러스는 핵산과 단백질로 구성되고 오로지 숙주의 세포에 기생해서만 생물학적 활성을 나타내는 감염성 유기체를 말합니다. 바이러스는 사람이건 동물이건 식물이건, 균류이건 세균이건 고세균이건 가리지 않고 모든 종류의 생명체에서 발견됩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바이러스의 종류는 최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종의 수를 더한 것보다 많다고 추정합니다.

숙주 내에서만 살 수 있기에, 바이러스 처지에선 숙주를 인식해 달라붙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리저리 떠돌다가 뭔가에 달라붙었는데 그것이 숙주가 아니라면, 그 표면에 달라붙은 채 그냥 부서질 뿐이니까요. 그래서 바이러스는 숙주 표면에 존재하는 특정한 수용체를 인식하고 결합하는 물질을 표면에 가지고 있습니다. 바이러스는 자신이 침투하는 숙주세포의 자물쇠를 열 수 있는 단백질을 가지도록 진화했습니다. 아니, 그런 열쇠 단백질을 가진 바이러스만이 숙주세포에 침투할 수 있으니 수없이 다양한 존재 가운데 그들만 살아남았다고 볼 수 있겠지요.

모든 세포의 문 여는 ‘만능열쇠’는 없다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바이러스는 헤마글루티닌(HA)이라는 당단백질을 열쇠로 이용해 사람의 호흡기 세포에 존재하는 글리칸 수용체의 일종(α2-6 sialylated glycans)에 달라붙어 숙주 안으로 들어오고, 코로나바이러스는 인간의 코 점막세포가 지닌 ACE2(Angiotensin Converting Enzyme 2)에 스파이크 단백질을 결합해 들어오는 것처럼 말이죠. 생물종마다, 세포마다 각자 표면에 지니는 표지 단백질의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바이러스는 숙주 특이성을 가집니다. 모든 세포의 문을 여는 만능열쇠는 없는 거죠.

구제역바이러스(FMDV·Foot-and-Mouth Disease Virus)는 세포 표면의 인테그린(Integrin) 수용체를 인식해 침투합니다. 구제역은 생물체마다 인테그린의 종류가 다르기에, 바이러스가 결합해 숙주세포 내로 들어갈 수 있는 소나 돼지에게는 아주 고약한 존재이지만, 사람에게는 별다른 해를 끼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상태가 언제까지나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바이러스는 돌연변이율이 매우 높거든요.

보통의 세포가 유전물질을 복제할 때는 전체를 한 줄로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 블록인 뉴클레오티드를 하나하나 일일이 붙여서 복제합니다. 사람을 예로 들면 세포 하나가 분열하는 경우, DNA 전체를 한 번에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DNA를 구성하는 뉴클레오티드 30억 개를 하나하나 붙여서 만듭니다. 사람의 DNA는 이중나선 구조이니 이를 두 번 반복해야 하고요. 그러다보니 복제 과정에서 실수로 꼭 맞는 블록이 아니라 다른 블록이 들어가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이것이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이유입니다. 그저 수많은 블록을 짧은 시간 안에 조립하다보니 실수가 생기는 것이죠.

DNA보다 RNA바이러스 돌연변이율 높아
이런 현상은 살면서 매일같이 우리 몸을 구성하는 수많은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일어나지만 그것이 사는 데 큰 지장을 주지는 않습니다. 애초에 복제 오류는 자체 시스템에 따라 대부분 교정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00% 완벽하게 교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태생적 복제 오류는 생물체가 자잘한 변이를 가진 다양한 존재로 태어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되지요.

바이러스 역시 숙주세포 안에 들어간 이후, 숙주세포의 복제 시스템을 이용해 자신의 유전물질을 복제합니다. 이때 유전물질로 DNA를 가지는 바이러스보다, RNA를 가진 바이러스에서 돌연변이율이 훨씬 더 높습니다. DNA만을 유전물질로 사용하는 숙주세포는 DNA 오류 교정 시스템이 있지만 RNA 교정 시스템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RNA를 유전물질로 하는 바이러스는 돌연변이율이 매우 높아서, 심지어 후천성면역결핍증을 일으키는 HIV의 경우, 각각의 감염자에게서 채취한 HIV의 유전적 유사성을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감염 경로를 추적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연히, 운이 없어서
자, 아이의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안타깝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가 ‘왜’ 생겨났는지에 대한 답을 줄 수 없습니다. 지구라는 생태계에서 바이러스라는 존재는 원래 있었고, 그렇게 다양하게 변이를 거듭해온 것 중 하나가 코로나바이러스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유독 인간을 미워해서 괴롭히는 것도 아닙니다. 바이러스는 애초에 의지나 의도 따위는 전혀 없이, 그저 숙주에 달라붙어 복제만을 거듭하며 존재하는 RNA+단백질 덩어리일 뿐이니까요.

한마디로 결론을 내리자면, 아이의 질문에 대한 답은, 그저 어쩌다보니, 그냥 우연히, 운이 없어서 이런 상황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대상이 미움을 받는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으며 애초에 그런 고차원적 감정을 가질 수 없는 대상이라는 허탈한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좀더 이성적이어야 합니다. 애초에 상황이 바이러스의 생존 방식과 그 숙주가 되는 인류 집단의 대규모 접촉에 따라 발생했기에, 미움과 분노와 혐오를 표출하는 건 상황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사람들과의 직접 접촉을 피하고, 손을 씻고,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건강관리에 유의하고, 백신을 접종하는 것 등 기생체의 침투를 막는 숙주의 행동 강령을 철저히 지키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다행히도 저와 아이들의 코로나19 PCR 검사 결과는 모두 음성이었고 주변에서도 더는 확진자가 생기지 않아서 파장은 진정됐지만, 학교는 방역을 이유로 다시 온라인수업으로 전환됐습니다. 일상의 리듬을 되찾기에는 아직 좀더 시간이 필요한가봅니다.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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