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의 아버지라 불리는 찰스 다윈은 자신의 노트에 ‘위통을 도지게 하는 공작’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다윈은 평생 원인을 알 수 없는 구토와 위경련에 시달렸기에 그에게 ‘위통을 도지게 한다’는 건, 공작이 그에게 큰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뜻입니다. 특히 그를 괴롭힌 것은 숫공작이었습니다. 하늘을 열어놓아도 날지 못하기에 동물원 우리 안에서 산책하다가 화려한 꽁지깃을 펼쳐 보이는 것으로 하루를 채우는 느긋한 숫공작이 왜 그에게 스트레스 요인이었을까요?
다윈 진화론의 골자는 ‘생물체는 다양한 변이를 가지고 태어나며, 이 중에서 생존에 유리한 형질이 자연의 손에 선택된다’는 것입니다. 각 세대 생물체의 변이는 무작위로 일어나지만, 환경에 적응하는 데 좀더 유리한 변이를 가지고 태어난 개체일수록 짝짓기가 가능한 성체까지 무사히 살아남을 확률이 더 크기에, 오랜 세월 여러 세대를 거듭하면 생존에 유리한 형질을 지닌 개체가 살아남아 자손을 낳는 비율이 높아집니다.
이런 현상이 여러 세대 반복되면 특정 생물체가 환경에 꼭 맞는 방향으로 진화를 유도한 것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예를 들어 바삭바삭한 나뭇잎을 닮은 잎벌레나 화려한 꽃무늬를 지닌 꽃사마귀는 그들이 사는 곳이 나뭇잎 더미나 꽃잎 위이므로 주변의 색이나 모양을 인식해 그렇게 닮도록 진화한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매 세대, 좀더 주변과 닮아서 덜 눈에 뜨이는 개체가 번식에 더 많이 성공한 결과가 쌓여 지금 모습을 만들었을 뿐이죠. 다윈은 이 사실을 최초로 깨달은 인물입니다. 무작위적 변이와 적응한 개체가 살아남는다는 가혹한 환경의 협업이 진화의 가장 큰 원동력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 공작은, 특히 숫공작은 다윈의 자연선택 원리를 정면으로 배반하는 듯 보입니다. 숫공작의 화려한 꽁지는 적의 눈에 잘 띄고 무겁고 거추장스러워, 생존에 방해될 뿐 절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렇게 크고 화려한 꽁지를 만들기 위해, 숫공작은 섭취한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꽁지에 투자해야 합니다. 적에게서 달아날 수 있는 튼튼한 다리근육이나 날개근육이 아닌, 적을 공격하거나 먹잇감을 사냥하는 그 어떤 기관도 아닌, 그저 눈에 잘 띄고 화려할 뿐인 꽁지에 말이죠. 숫공작은 자연선택 조건에서 완벽하게 벗어난 삶의 전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멸종하지 않고 버젓이 화려한 꽁지를 펼치며 다윈 이론을 비웃듯 멀쩡히 살아 있으니, 다윈이 위통이 도지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성선택, 남녀의 본질을 특징짓다?다윈은 답을 찾아냅니다. 생물 진화의 또 다른 압력 요인인 성선택을 찾아냈죠. 숫공작의 크고 화려한 꽁지는 분명 자기 생존에는 불리합니다. 하지만 꽁지가 크고 화려할수록 암컷의 눈길을 더 많이 끌 수 있기에 짝짓기와 번식에는 유리합니다. 숫공작이 무사히 자라 성체가 되더라도 암컷과 짝짓기하지 못하면 유전자를 후대에 남길 수 없어 그들의 형질이 후대로 물려지지 않을 것입니다.
성선택이란, 생물체의 특정 변이가 이성의 선호에 부합하는 경우, 그 변이가 설사 생존에 불리해도 그 불리함을 상회할 만큼 짝짓기에 유리한 경우, 그 형질이 진화의 압력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화려한 꽁지깃을 자랑하는 공작,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크고 복잡하게 가지 친 뿔을 가진 사슴, 먹는 데 방해될 정도로 길게 뻗은 상아를 지닌 코끼리가 대표적으로 성선택의 진화적 압력을 받은 존재입니다.
이들은 성적으로 성숙하기 전까지는 암수가 서로 비슷하지만, 번식이 가능한 수준까지 성장하면 주로 수컷에게 특정한 2차 성징이 나타나면서 암수가 극명하게 달라집니다. 암컷은 자연선택 원리에 맞춰 생존에 유리한 조건을 간직하지만, 수컷은 암컷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한 두드러진 2차 성징을 보이며, 때로 그 특성은 수컷의 생존에는 도움이 되지 않거나 방해되기도 하지만, 이성의 눈길을 끌어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기에는 더 유리하기에 각각 두드러진 형질로 발현되곤 하지요. 같은 종 내에서도 다 자란 암수의 모습이 특징적으로 다르다면, 그들은 자연선택뿐 아니라 성선택의 압력도 강하게 받은 존재라 볼 수 있습니다.
남매 쌍둥이를 키우는 제 입장에서 종종 성선택의 진화적 결과가 이들의 본성에 아로새겨진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동시에 낳아 같이 키우는데도, 아이들 각자가 보이는 행동이나 특성이 반대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아들만 키우는 부모들은 말합니다. 딸이 있어서 좋겠다고, 딸은 상냥하니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럽겠냐고 말이죠. 동시에 딸을 키우는 부모들은 하소연합니다. 딸들은 감정적으로 예민하고 잘 토라져서 기분 맞춰주기가 어렵고 말 한마디에 울어서 당황스럽다고요.
딸만 키우는 부모들은 말합니다. 아들은 무던하고 씩씩해서 든든하고 시원시원한 맛이 있으니 좋겠다고 말이죠. 동시에 아들을 키우는 부모들은 투덜댑니다. 뭘 물어도 단답형으로 대답하고 사소한 것을 자주 잊어버려서 답답하고 분통 터지는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말이죠.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동시에 키우는 제 입장에선 둘 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상황입니다. 저 역시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면 딸을 찾습니다. 아들에게 물어봤자 예/아니요 수준만의 대답이 나오기 일쑤인데다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하지만 딸은 오늘 있었던 일에 얽힌 사람과 상황과 감정을 꽤 자세하게 기억하고 대답하거든요. 반면 아이와 무언가를 놓고 갈등 상황에 놓일 때는 아들 쪽이 수월합니다. 아들은 결과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만 관철되면 중간 과정에 대해서는 별 불만이 없지만, 딸은 말 한마디에 토라져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이렇게 남자애라서 혹은 여자애라서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듯 보이는 특징의 기원을, 학자들은 성선택으로 접근하기도 합니다.
인류는 처음 지구상에 나타난 이후, 구석기 시절에 진화적 시간의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다른 생물체와 마찬가지로 생존과 번식만을 추구하는 유전자의 은밀한 압력 속에 일종의 생존기계로 살아왔다는 거죠. 그리고 인류만의 독특한 신체구조와 생활습성-직립보행과 위험한 출산 과정, 생존능력이 떨어지는 미숙한 아기, 다소 긴 유년 시절 등-은 여성이 임신·출산·수유·육아를 맡고 남성이 무리의 생존을 책임지는 상호보완적 역할 분담을 하는 특성을 가지도록 진화적 압력을 받았고 이것이 오랜 세월을 거쳐 ‘본성’으로 남녀에게 뿌리 깊이 아로새겨졌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냥꾼 남성과 채집자 여성, 투쟁경쟁적 남성과 관계친화적 여성의 본성에 대한 유전학적 설명이 여기서 비롯됐습니다.
구석기 시절 생존기계로 살아온 인류그래서 남녀의 본성 차이에 따른 수많은 통념이 생겨났습니다. 남자는 바람둥이고 여자는 질투의 화신이라든가, 남자는 목적지향적이지만 여자는 관계지향적이며, 남자는 경쟁을 즐기지만 여자는 친목을 도모한다는 것 등 남녀에 대한 잘 알려진 통념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기나긴 구석기 시절에 겪은 진화적 압력의 결과라는 거죠.
그 사이의 골은 상당히 깊어 남녀는 서로 화성과 금성에서 온 우주인만큼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 다르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남녀는 뇌 구조 자체가 다르며, 남성에게서는 바람둥이 유전자를, 여성에게서는 모성애 유전자를 찾았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습니다. 다소 아이러니합니다. 현대사회의 교육과정에선 남녀 사이에 차이는 없다, 남녀는 모두 동등하고 평등하다고 말하는 것이 사회적·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주장하는데, 정작 과학적 연구 결과가 이를 부정하며 남녀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는 모양새이니까요.
남자답게/여자답게라는 말이 사회적으로는 부당해도, 생물학적/진화심리학적으로는 결국 그게 답이라는 뜻일까요? 여기에 쉽게 수긍되지 않습니다. 제 경험만 돌이켜봐도 그러니까요. 전 어린 시절, 흔히 여자아이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관습에 수긍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많았습니다. 보통 여자아이들처럼 인형놀이를 하는 것도 좋아했지만, 여자아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과학자를 꿈꿨고 추리소설과 과학책을 섭렵했습니다. 요리를 좋아했지만 화학실험도 그 못지않게 좋아했고, 감정을 못 읽지는 않지만 감정을 배제한 인과적 사고가 훨씬 더 편안하게 느껴졌으니까요.
제 어린 시절의 상당 부분은, ‘여자애는…’이란 말에 대한 순응과 반항이 뒤섞여 있었고, 굳이 말하자면 후자 쪽에 더 가까웠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그런 말이 상당히 듣기 싫었는데, 제가 남녀 차이 없이 가치중립적이라 여겨왔던 과학조차 남녀를 달리 바라본다는 건, 사실로 받아들여야 함에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중적 감정이 발생하면서 골치가 아팠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저만은 아니어서 두 아들을 키우는 싱글맘이자 철학자이고 신경학자인 코델리아 파인은 저서 <테스토스테론 렉스>에서 투덜댑니다. 사춘기에 들어선 이후 알 수 없는 외계인처럼 느껴지는 두 아들과 부대끼며, 진화론적 성선택이 말하는 인간 혹은 남녀의 본성이 어디까지 개인의 특성을 설명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접근한 거죠. 특히 그는 테스토스테론으로 대표되는 성호르몬의 차이가, 성별에 따른 차이에 얼마나 큰 책임이 있는지 접근합니다. 수많은 논문과 데이터를 뒤진 끝에 내린 결론은, 테스토스테론은, 남녀 간 성별 차이는 개인을 규정하는 수많은 특성 중 하나일 수는 있어도 결코 대부분이거나 전부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파인은 남녀가 차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특정 성이 다른 성보다 더 우수하거나 열등하다고도 주장하지 않습니다.
파인이 말하려는 건, 우리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입니다. 개인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성별 외에 인종, 국적, 삶의 경험, 사회적 지위, 교육 차이, 부모의 양육 태도, 주변인과의 관계 등 매우 다양합니다. 인간 역시 어린 시절에는 남녀 차이가 크지 않다가, 사춘기에 호르몬의 영향으로 남녀의 몸에서 서로 다른 2차 성징이 확연해지기에 그 역시 개인의 본질에 영향을 미치는 한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남자라서/여자라서 그럴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나, 남자라서/여자라서 전부 그래야 하는 건 아니죠.
게다가 제 아이들은 사춘기에 들어서지도 않은 어린아이들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보이는 태도의 차이는 그들이 전적으로 남자라서 혹은 여자라서 그런 게 아니라, 남녀 차이에 개인의 차이가 더해져 나타난 복합적 결과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거죠. 다윈의 위통이 성선택으로 조금이나마 덜해졌다면, 제 두통은 개인의 개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좀더 나아질 건가봅니다.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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