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산책은 소리가 함께합니다. 선선한 공기가 아직은 기분 좋은 아침, 맴맴 우는 매미 소리가 귀청을 따갑게 울립니다. 한낮의 열기가 남은 여름밤에는 개구리들의 합창이 귓전에 맴돕니다. 한꺼번에 여러 마리가 울어대니 도무지 어디서 소리가 나는지조차 모르겠습니다.
매미와 개구리의 합창은 한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소리입니다. 이들의 울음은 제법 시끄럽지만 다행히 그리 길게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이들이 그토록 큰 소리로 울어대는 이유는 단순하지만 간절합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길지 않은 삶 속에서, 어서 짝을 찾아 후손을 남기라는 유전자의 명령에 충실한 결과일 뿐이죠. 그래서 주로 울어대는 쪽은 수컷입니다.
자연계의 기본 번식 전략은 경제성입니다. 투자를 더 많이 하는 쪽이 더 신중한 편이죠. 이성의 상대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거나 자신의 매력을 보이려고 기를 쓰는 쪽이 대개 수컷 쪽인 이유는 그들이 번식 자체에 투여하는 에너지가 더 적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유성생식을 하는 개체군에서 암컷과 수컷을 구분하는 기준은, 더 크고 영양분을 많이 포함한 생식세포(난자 혹은 알)를 만드느냐, 작고 유전물질만 포함된 생식세포(정자)를 만드느냐에 달린 일입니다.
난자(알)를 만드는 쪽이 암컷, 정자를 만드는 쪽이 수컷입니다. 포유류처럼 암컷이 임신과 출산과 수유를 책임지는 생물종뿐만 아니라, 어류나 곤충처럼 그저 만나서 생식세포만 체외수정하고 떠나버리는 종에서도 수컷이 구애에 더 적극적인 경우가 많은 것은 이 때문입니다. 애초에 난자(알)가 정자보다 더 크고 더 많은 영양분이 필요하기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한 쪽이 번식에서 선택의 우선권을 가지는 거죠. 투자한 게 많으면 실패할 때 잃을 것이 많아지니 좀더 신중해지는 건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는 성별에 따른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투입 자원의 상대적 비율에 대한 것이어서, 번식 과정에서 암컷이 만든 커다란 난자(알)에 들어가는 자원보다 수컷이 투자한 전체적인 자원이 더 크다면, 번식에서 선택의 권리는 수컷에게 돌아갑니다.
2010년 브라질의 건조한 동굴에서 발견된 작은 곤충인 네오트로글라(Neotrogla curvata)는 매우 특이한 번식 습성으로 발견자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지노솜(Gynosome)이라 이름 붙은 네오트로글라 암컷의 성기는 얼핏 수컷의 페니스를 닮았으며, 실제 기능도 이와 비슷합니다. 번식기에 들어선 암컷은 수컷을 발견하면 그들의 몸에 올라타 구멍을 뚫고 지노솜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짝짓기를 시도하거든요. 이들의 짝짓기는 이틀에서 사흘 정도 길게 이어지는데, 이 기간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암컷의 지노솜은 미늘 구조로 수컷의 몸에 단단히 결합합니다. 이 결합이 어찌나 단단한지 연구자들이 짝짓기 중인 네오트로글라를 억지로 분리하려 했더니 수컷의 몸이 두 동강 나버릴 정도였다고 합니다(불쌍한 수컷 네오트로글라!).
수컷의 목숨 건 어필, 해결책은 ‘함께 울기’네오트로글라가 이렇게 성별이 반전된 짝짓기를 하는 이유는, 먹이와 물이 부족한 척박한 동굴 환경 속에서 암컷이 알을 만들기 위한 영양분을 얻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바로 수컷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수컷은 정자를 만들어 영양분이 풍부한 정액 주머니에 넣어 보관합니다. 암컷은 수컷의 몸에 달라붙어 생식기를 삽입하고는 수컷의 정자와 농축된 영양액을 함께 빨아들입니다. 영양액은 알을 완성하는 데 중요한 자원으로 사용되지요. 즉, 암컷은 정자에 비해 커다란 알을 만들기는 하지만, 이 알을 만드는 자원의 상당 부분을 수컷에게서 얻습니다. 정자와 영양액을 만들기 위해 투입된 수컷의 자원은 암컷이 알을 만드는 데 쓰는 자원보다 더 큽니다. 그래서 네오트로글라는 번식기에 더 적극적으로 경쟁하는 쪽이 암컷이며, 더 수동적으로 까다롭게 구는 쪽이 수컷입니다. 자연계에서 암수는 매우 훌륭한 경제론자죠.
다시 여름밤 합창의 주인공인 개구리로 돌아와봅시다. 번식에 따른 투자 규칙에 의해 개구리의 짝짓기 선택권은 암컷에게 있습니다. 암컷이 더 큰 알을 낳기에 적극적으로 구애 공세를 펼치는 쪽은 수컷입니다. 수컷 처지에서는 딜레마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언제 울기를 시작해야 하느냐는 거죠. 보통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개구리처럼 피식자 그룹에 속한 종은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일을 피하곤 합니다. 천적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마당에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일은 그야말로 날 잡아먹으라는 광고와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짝짓기 철이 되면 상황이 복잡해집니다. 가만히 숨어만 있으면 천적이 날 찾기 힘들겠지만 암컷 역시 자신을 돌아봐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전자의 명령은 개체의 생존과 후손의 번식이라는 이중 과제를 모두 수행하도록 요구하기에, 수컷은 딜레마에 빠집니다. 개굴개굴 큰 소리로 힘차게 울어대면 암컷에게 자신의 매력을 과시하는 데 좋겠지만, 그럼 연못가 어딘가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을 천적에게도 자기 위치를 노출하는 격이 될 테니까요. 짝짓기도 목숨이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이니 여간 난처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수컷 개구리는 포식자의 눈길을 피하면서 이성에게는 어필하는 전략을 발전시켰습니다. 그 방법은? 바로 모두 다 한꺼번에 우는 것입니다. 홍난파 작곡의 동요 <개구리>에는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손자며느리 다 모여서”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아들손자 가릴 것 없이 수컷들이 일제히 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개구리라고 해서 텔레파시가 통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제일 처음 나서서 ‘시작!’을 외쳐주는 존재가 필요합니다. 이 ‘최초의 개구리’가 울음을 시작하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여기저기서 개구리들이 울음을 보태 순식간에 연못 주변은 개구리 울음소리로 꽉 찬 듯 느껴집니다.
이렇게 개구리들이 한꺼번에 우는 건 ‘선행음 효과’를 노린 것입니다. 여러 소리가 한꺼번에 뒤섞이는 경우, 이들의 소리를 듣는 제3자 처지에서는 처음 들린 소리에만 집중하고 이후 소리는 무시하는 선행음 효과가 나타납니다. 거리에서 우연히 좋아하는 노래가 들려오면 순간 그 노래에만 신경이 집중돼 나머지 배경 소리가 희미해지는 경험을 해보셨을 겁니다. 그래서 울려면 한꺼번에 울어야 합니다. 물론 가장 먼저 울기 시작한 개구리는 자기 위치가 노출돼 위험하지만, 나머지 개구리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해서 마음 놓고 한꺼번에 합창할 수 있으니까요.
암컷도 가장 먼저 울음을 시작한 수컷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이것만이라면 수컷은 다소 위험하더라도 먼저 나서서 울기 위해 경쟁할 것입니다. 암컷은 좀더 생각할 게 있습니다. 암컷에게도 선행음 효과가 적용될 테니 가장 먼저 울음을 시작한 수컷의 소리가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올 겁니다. 하지만 그 소리를 따라가면 수컷뿐 아니라 천적을 만날 확률도 높습니다. 그러니 암컷은 선택해야 합니다. 가장 매력적인 소리를 따라 위험을 감수할 것이냐, 다른 소리에 한 번 더 귀 기울여볼 것이냐. 생태학자들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암컷은 후자의 전략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행음 효과가 암컷에게는 절대적이지 않은 거죠.
이 과정에서 가장 억울한 것은? 바로 맨 처음 울기 시작한 수컷 개구리입니다. 기껏 위험을 무릅쓰고 먼저 시작했는데, 암컷조차 자신을 반드시 선택해주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 수컷 개구리들 사이에는 짝짓기 철이 되면 눈치싸움이 벌어집니다. 누군가 먼저 울어야 맘 편하게 울 텐데 선뜻 나서기가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지나치게 눈치만 보면 암컷이 이 연못에는 수컷이 살지 않는 줄 알고 다른 곳으로 떠나버릴 테니 기껏 기다린 보람이 사라지게 됩니다. 결국 가장 성질 급한- 혹은 아차 실수한?- 개구리의 첫 울음을 시작으로 개구리는 일제히 여름밤의 합창을 시작합니다.
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젠더 갈등이 점점 더 극심해지는 모습이 보입니다. 한 여성 운동선수의 머리 길이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의미 없는 설전이 그토록 빠른 시간 동안 극심하게 증폭되는 과정을 보면서 처음에는 어이없다가 차츰 분노했다가 종국에는 슬퍼졌습니다. 그때 문득 짝짓기를 둘러싼 자연의 보편적인 현상이 떠올랐습니다.
필요한 것은 선임자의 배려심인간은 개구리처럼 번식하지도, 네오트로글라처럼 접근하지도 않습니다. 여전히 생물학적 번식의 부담은 여성의 몸에 국한됐지만, 인간이 구성하는 사회 속에서 자식을 부양하는 경제적·물질적 자원의 부담은 남성에게 더 지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 사회에서 반려를 만난다는 건 매우 복합적인 결합입니다. 문제는 전자는 그대로인데 후자의 부담은 사회의 변화 과정에서 점차 그 기울기가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부담을 더 지는 만큼 결정권을 가지는 단순한 경제적 전략이 더 이상 간단하지 않게 된 거죠.
남녀는 서로가 더 손해를 본다고 생각합니다. 생물학적 부담이 지나치게 편향적이라고 생각하는 여성은 여기서 더 이상의 부담을 짊어지는 것을 거부하고 더 많은 선택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동안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부담(대표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징병제가 되겠지요)을 전적으로 짊어졌다고 생각하던 남성은 여전히 부담은 그대로인데 선택권도 줄었다고 불평합니다. 내가 훨씬 더 손해 보니 너는 권리가 없다는 주장이 부딪치는 셈이니 격화되는 건 당연하죠.
여기서 잠시 숨고르기를 해봅시다. 이 문제를 현명하게 조율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내가 지금껏 이만큼 손해 봤으니 너도 이만큼 당해봐야 한다는 함무라비식 복수심이 아니라, 내가 겪어보니 이만큼 힘들더라 그러니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이를 굳이 겪지 않을 방법이 없을지 살펴보자는 선임자의 배려심입니다. 내 다리가 부러져서 아프니 네 다리도 부러뜨려야겠다고 덤벼서 좋을 게 뭐가 있겠어요. 결국 둘 다 자리에 주저앉아 같이 지쳐서 굶어 죽어갈 뿐이죠. 내 다리가 부러지면 많이 아프고 힘들다는 걸 이미 겪었으니, 다음에는 나도 너도 이다음 사람들 모두도 다리를 다치지 않게 대책을 강구해보는 게 인간이라면 당연히 선택해야 할 길이겠지요. 우리는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이니까요.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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