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전쟁’이 벌어졌다. 2018년 7월, 중국 베이징 펑타이구의 고급 신축 아파트촌 앞에서 한 무리의 성난 군중이 망치와 해머 등을 들고 담장을 허물기 시작했다. 담장 허물기에 나선 사람들은 고급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 지은, ‘바오장팡’이라고 부르는 중국식 임대아파트 입주민이다. 베이징시 정부는 부동산개발회사에 입지 조건이 좋은 장소에 상업용 아파트 건축 허가를 해주는 조건으로, 그 근처에 서민들을 위한 저렴한 ‘임대아파트’도 병행해서 짓는 정책을 펴고 있다.
그 고급 아파트를 분양할 때, 부동산개발회사는 예비 입주자에게 ‘호화 주택의 품격’을 지켜준다고 약속했다. ‘절대로 임대아파트 주민이 당신들의 공간을 침범할 일은 없을 것이다. 높은 담장을 쌓아서, 그들과 확실히 차단하는 장벽을 만들 것이니 안심하시라’.
<font size="4"><font color="#008ABD">2018년 여름 ‘담장 전쟁’</font></font>그러나 실제로 두 아파트 사이에 높은 ‘베를린장벽’이 생기자 반대편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분노했다. 두 아파트가 공동으로 써야 하는 녹지 공간과 다양한 입주민 편의시설을 임대아파트 주민이 쓰지 못하도록 담장으로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담장을 강제로 부쉈다. 시 당국에서 성난 주민들을 달래기 위해 ‘담장 건설은 위법’이라고 개입하면서 그해 여름 ‘담장 전쟁’은 잠시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대편 고급 아파트 입주민들이 들고일어났다. “두 아파트 가격이 거의 5배 이상 차이 나고 관리비도 3배 가까이 차이 나는데 어떻게 이들과 한 공간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이게 무슨 애초 약속했던 호화 아파트의 품격이란 말인가!” 그들은 당장 입주 거부를 선언하며 부동산개발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했다.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재미있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그중 압권은 이른바 ‘일등석 침범론’이다. “이 사건은 비행기 이코노미석에 탄 승객이 일등석 입구에 쳐놓은 가림막을 찢은 행위와 같다. 그들이 맘대로 일등석으로 가는 걸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토대가 상부 구조를 결정한다.-카를 마르크스” 베이징 집 근처에 있는 고급 빌라촌 담장 한 면에 큼지막하게 새겨진 문구다. 사방이 붉은 벽돌 담장으로 에워싸인 빌라는 이름도 고급스럽게 ‘클래스’(Class)다. 물론 거기 사는 사람들도 상당한 ‘계급’의 부자다. 그들은 왜 마르크스의 가장 유명한 ‘명언’을 자신이 사는 집 담장에 새겨놓았을까. ‘돈이 계급을 결정한다’고 까놓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러기엔 너무 격이 떨어지니 ‘마르크스 선생’의 철학적 표현을 이용한 것이리라. ‘계급의 품격’을 위해서 말이다.
영국 런던 하이게이트 묘지에 잠든 마르크스가 이 광경을 봤다면 기분이 어땠을까? 생전 성질대로라면 단골 술집에서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다가 수염을 부들부들 떨면서 ‘내가 이러려고 과 을 쓴 줄 알아!’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분노했을 듯하다. 담장에 새긴 문구와 ‘클래스’라는 빌라의 이름만 들으면, 마치 문화혁명 시절 계급투쟁을 선도하는 홍위병의 집단 거주지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빌라와 담장의 색도 온통 붉은색이다. 기묘한 부조화 같지만 ‘상층계급’과 ‘붉은 담장’의 조화는 베이징에서 가장 흔하고 익숙한 풍경이다.
“모든 집에는 정원을 둘러싼 높은 담이 세워졌고, 대문은 굳게 잠겨 있다. 설령 대문이 열려 있다 해도 안마당이 녹색의 영벽(影壁)으로 가려져 있어 바깥에서 집 안을 들여다볼 수 없다.” -린위탕 중
베이징은 담장의 도시다. 유난히 많은 담장이 만리장성처럼 병풍을 이루고 있다. 특히 시진핑 국가주석 등 당정 고위 간부들이 사는 중난하이 주변은 온통 붉은 담장의 세계다. 담장 너머 세계는 보고 싶어도 보이지 않고, 볼 수도 없는 ‘비밀’의 세계다. 베이징에는 첸하이, 중하이, 난하이, 베이하이라는 네 개의 바다 같은 호수가 있다. 베이징에 수도를 세운 원나라 몽골족이 호수를 바다로 불렀기에, 원래는 호수이지만 이름은 ‘바다’가 되었다. 네 ‘바다’ 중 첸하이와 베이하이만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중하이와 난하이를 합친 ‘중난하이’는 높은 담장 안에 꼭꼭 숨겨 있다. 그곳은 중국에서 가장 높은 ‘지배 계급’이 살고 있다.
1978년 개혁·개방 이전 중국은 흔히 ‘죽의 장막’으로 인식됐다. 개혁·개방과 함께 거대한 장막이 걷히고 중국은 외부 세계에 대문을 열었다. 그 안에 숨어 있던 비밀이 하나둘 공개됐다. 하지만 유일하게 남아 있는 마지막 ‘죽의 장막’은 지금도 붉은 담장 안에 가려진 중난하이다.
“중국인들은 담장 쌓기를 좋아한다. 성을 쌓아놓고 성안에 있는 사람을 국인(國人), 성 밖에 사는 사람을 야인(野人)이라 하여 자신들과 담장 밖에 있는 타자를 구별했다. 담장 안은 문명의 세계이고 담장 밖은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야만의 세계라는 것이다.”(이은상, 중)
북방민족의 잦은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만리장성도 ‘오랑캐’로 불린 야만민족에게서 자신들의 문명 세계를 지키려는 일종의 거대한 담장이었다. ‘담장 밖’ 야만인에 대한 방어가 오늘날 인터넷 세계로 확장됐다. 중국은 ‘만리방화벽’이라는 인터넷 감시·검열 방화벽을 만들어 ‘야만인들’의 정보를 차단하고 있다. 그 ‘야만인들’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가상사설망(VPN)을 설치해 ‘판창’(翻墙·담장을 뛰어넘는다)을 해야 한다. 중국 공산당이 가장 염려하는 일은, 수많은 인민이 만리방화벽을 뛰어넘어 야만인들의 세계와 접속하는 것이다. 야만인들의 세계와 접속하면 차츰차츰 담장이 허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붉은 담장’으로 상징되는 튼튼한 체제 방호벽을 세우는 일은 지금 중국 공산당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일반인은 절대 들여다볼 수 없는, 붉은 담장 너머에는 ‘자오씨네 사람들’(趙家人)이 살고 있다. ‘자오씨네 사람들’은 중국 사회에서 부와 권력을 독점한 특권계층을 이르는 유행어다. 2015년 12월 말 중국 최대 부동산 그룹 완커와 바오넝 간에 인수·합병 전쟁이 터졌을 때, 완커그룹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이던 왕스가 한 말이 널리 회자하면서 유행어로 자리매김됐다. 그는 “문 앞에는 야만인이 있고 그 배후에는 자오씨네 사람들이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완커를 적대적으로 인수·합병하려는 기업, 바오넝이라는 ‘야만인’ 뒤에는 그들을 돌봐주는 ‘자오씨’로 상징되는 권력이 있다는 뜻이다.
특권계층을 뜻하는 ‘자오씨네 사람들’은 원래 루쉰의 소설 와 에서 유래했다. “자오씨네 개가 다시 짖기 시작했다” “네가 무슨 자오씨냐! 네가 어디 감히 자오씨 성에 어울릴 만한 인물이냐!”라는 표현이 와 (자기의 어리석음과 약함을 모르고 잘난 체하는 아큐가 신해혁명 때 들뜬 기분에 날뛰다가 폭도로 잡혀 혼자 총살된다는 내용으로, 당시 중국의 농촌 생활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작품)에 나온다. ‘자오씨’는 소설 속 마을에 사는 부자이자 특권계층 집안이다. 오늘날 ‘자오씨’들은 ‘훙얼다이’(공산당 고위 간부 2세)나 ‘태자당’(시진핑 등 중국 최고위급 원로 간부들의 후세대)으로 불리는 특권계층과, 이들과 유착해서 부를 쌓은 각 분야 상류층이다. ‘자오씨네 사람들’의 공통점은, 밖에서는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는 그들만의 붉은 담장 안에 산다는 것이다.
“중국인은 취안쯔(圈子·패거리, 파벌)를 형성하고 취안쯔 내부에서 사람들은 기이하고 독특한 관계를 형성하는데… 취안쯔의 규칙은 중국인들의 독특한 권모술수 문화를 만들었다.”(쑨룽지, 중) ‘자오씨네 사람들’은 한편으로 그들만의 취안쯔를 형성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어울리는 취안쯔가 (자신의) 계층을 결정하고, 계층은 품위를 결정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속어로 ‘끼리끼리 논다’는 뜻이다. 취안쯔를 잘 선택해 ‘줄을 잘 서야지만’ 여러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취안쯔 문화는 중국 정치·사회·경제·학계 등 모든 분야에 만연한 사회현상으로, 정치적으로는 ‘상하이방’이니 ‘태자당 그룹’이니 하는 ‘파벌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취안쯔 문화 역시 크게 보면 사회관계의 담장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들만의 담장 관계를 형성하면서 다른 취안쯔에 속한 무리를 차단하는 구실을 한다.
2014년 제18기 중앙기율검사위원회 3차 전체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은 간부들 사이에 유행하는 취안쯔 문화를 비판했다. “일부 간부가 각자의 파벌을 만드는 취안쯔 문화를 신봉하고 있다. 종일 여기저기 관시(관계)를 만들고, 뒷문을 찾고, 누구는 어떤 사람이고 누가 뽑은 사람이며, 누구와 관시를 맺어야 하며….”
<font size="4"><font color="#008ABD">담장길을 걸을 때는 눈을 내리깔고</font></font>“선거철이 되면 온 나라가 떠들썩해지는 서방세계와 달리, 중국은 굉장히 고요한 분위기에서 새 지도자를 결정한다. 이때 당은 마치 해자와 경비병으로 둘러싸인 성채와도 같다. 성 밖에 있는 사람들은 성을 드나드는 방문객만 이따금 볼 수 있을 뿐, 성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결코 알 수 없다.”(리처드 맥그레거, 중)
중국에서 가장 높은 붉은 담장은 ‘중국 공산당’이다. 중국을 통치하는 가장 힘센 ‘자오씨네’도 바로 그들이다. 그들이 사는 중난하이의 붉은 담장은 쉽게 부술 수 있는 허술한 담장이 아니다. 견고한 담장의 세계는 그들의 완력과 무력으로만 지탱되는 게 아니다. ‘자오씨네’ 밑에서 그 덕을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자기도 성이 ‘자오씨’인 줄 착각하거나 ‘자오씨네’를 흉내 내며 살아가는 수많은 ‘아큐’가 담장 밖을 지켜주고 있다. 여전히 아큐식 ‘정신승리법’으로 살아가는 중국인들이 아큐의 거짓 자아에서 깨어나, 망치와 해머를 들고 부숴야만 무너질 수 있는 담장이다.
하지만 자금성과 중난하이로 이어지는 아득한 붉은 담장길을 걷노라면 그 ‘너머 세계’를 상상하는 일조차 두렵고 떨린다. 두 눈을 치켜떠 담장 안을 들여다보는 순간, 사방에서 ‘자오씨네’ 호위병이 총알처럼 달려 나와 바로 사살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담장길을 걸을 때는 습관처럼 항상 눈을 내리깔게 된다. 담장 주변에는 감시병과 무장경찰이 득실득실하다.
베이징=<font color="#008ABD">글·사진</font> 박현숙 자유기고가<font size="2">
*북경만보는 베이징에 거주하는 박현숙씨가 ‘장소’를 통해 중국의 숨은 또는 드러나지 않은 기억과 사고를 읽는 연재입니다.</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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